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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이 존중되길


미국은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인데 미국 대륙에 먼저 온 백인들의 텃세가 가혹하리 만큼 대단하다. 1800년대 중국인 근로자들이 대거 미국에 왔다. 동서 미대륙 횡단 철도 건설업자들이 생각해낸 노동력이 중국인을 데려 오는 것이였다.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일본인 근로자를 채용하려했는데 대우가 나쁘면 파업을 한다는 이유로 멀리 태평양건너 중국인을 데려오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미국인과 생면부지인 중국인을 데려오면 거의 노예 수준으로 부려 먹을 수 있고, 파업도 할 수 없다는 일거양득을 노린 것이다. 그들의 계산은 적중했다. 미국에 온 중국인은 저임금에,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중국인들의 창의적인 설계와 노력으로 시에라 산맥을 넘는 난공사도 해냈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동부에서 출발한 철도와 서부 샌프란시스코 인근에서 출발한 서부철도가 네브라스카 오마하에서 만나 횡단기념 준공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오늘의 미국을 산업국가로 만들 가장 획기적인 일로 대륙횡단 철도공사를 꼽는다. 당시 중국 철도 노동자들은 기대와 흥분속에서 준공식을 기다렸는데 동부에서온 백인 노동자들만 참석하고 서부 중국 노동자들은 준공식 날짜도 감추고 다른 공사장으로 빼돌렸다.

결국 미대륙횡단의 역사적인 준공식 사진에는 중국인이 완전히 빠진 백인들만의 힘으로 완공된 것으로 남겼다. 후일 중국근로자들은 백인이 나쁜 마음으로 자신들의 노고를 훔쳐갔다고 통탄 했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후였다.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이렇게 서부시대부터 시작된 것이다. 젊은이의 좌절 미국내 인종 차별은 매우 다양하다.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차별을 찾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부모들사이에선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제도적이고 의식적인 차별행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대학입학에서 공부를 잘하는 소수계를 탈락시키기 위한 새로운 제도가 계속 등장하고 있다. 이유도 갖가지로 차별이 역차별을 낳고, 역차별이 다시 차별을 낳는 요지경이 미국 대학입시 제도의 현실이다. 교육 기회 차별과 취업 기회 박탈이 오늘날 벌어진 인종차별의 시작이다. 이번 경찰에 의한 조지 플로이드 살인사건이 초기 평화시위에서 폭력시위로 급변한 이유에는 좌절한 젊은이들이 대거 참가했기 때문이다. 백인 학생에 비해 교육의 기회가 불공정했다고 생각하는 소수계는 교육제도가 공정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입학과 졸업 그리고 취업에 이르기까지 제도적으로 차별을 당한 흑인계와 소수계 학생이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흑인계 젊은이들이 느끼는 차별은 사회적인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다. 특별히 흑인 젊은이들의 실업율은 통계가 힘들 정도로 높아 시한폭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 미네소타에서 시작된 시위에 참가한 시위자들 가운데 일부에선 백인 젊은이들도 많이 참여 했다는 주장이다. 이 기성 사회가 소수계 젊은이들에게 남긴 것은 차별과 죄절뿐이었다. 이번에 그들의 분노가 폭발적으로 터졌다는 것이 일부 교육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인종간 차별 미국처럼 다양한 인종이 사는 나라도 지구상에 흔하지 않다. 얼굴 색갈로 보면 백인, 흑인, 라티노, 아시안 등으로 크게 구분된다.

인종차별이라면 백인에 의한 차별로 치부될 수 있지만 흑인들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도 장난이 아니다.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와 자기동네에 와서 돈을 벌어간다는 질시에서 나온다. 아시안이 미국에서 영어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흑인촌에서 비즈니스하는 것도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흑인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이유에서 그들이 하지 못한 것을 대신하는 것이다. 특별히 무시당할 이유도 없는데 자신들과 경쟁 상태로 생각해 싹을 짜르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반면에 아시안들의 흑인 기피현상도 심각하다.

아시안은 무조건 흑인들과 교류를 하려고 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피부색갈에 의거한 선입관으로 생각된다. 오늘의 소수계가 미국에 자리 잡도록 희생한 사람들이 아시안이 아니라 흑인이다. 그들 홀로 백인들의 차별과 압박에 민권운동으로 대항했다. 마틴 루터 킹 같은 특출한 지도자의 희생과 헌신이 없었으면 우리가 누리는 행복과 기회가 지금보다 늦었을 수도 있다. 흑인들의 피와 눈물로 이 정도까지 끌어 올렸다. 미국의 민권역사를 보면 우리는 결코 그들을 외면하고 차별할 수 없다. 우리는 미래를 책임질 흑인 청소년 학생들을 이해하고 사랑의 손길을 내 밀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할아버지들이 흘린 희생을 보상받는데 부족함이 없다. 흑인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우리가 진 빚을 갚고, 교육을 통해 흑인사회의 불평과 불만을 해소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흑인과 한인이 소수계의 미래를 함께 화합하는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의 미래는 더욱 밝아지고 인종간 평화에 기여 할 것이다. 미네소타 경찰관의 흑인 남성의 목을 누른 ‘9분’은 분노와 고통을 상징하는 참회의 시간으로 되어 퍼지고 있다. 이번 흑인 남성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 사회가 다양성과 관용을 존중하고 구성원들간 갈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있는 세상으로 변하고 있다. 어느 인종이냐에 관계없이 자신을 진지하게 성찰하고 차별없는 화합의 공동체를 만드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길 바랄뿐이다. 앞으로 한인사회 안에 타인종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분명한 변화가 있어야 이번 사건이 남긴 진정한 교훈이 될 수 있다. hdnewsusa@gmail.com


<미주 주간현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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