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야기

이준석을 생각해 본다

국민의 힘 당 대표자에 도전하고 있는 이준석 후보가 대단한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36세의 나이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2회 낙선했는데도 여론조사에서 30%대로 타 후보를 제치고 1위를 했기 때문이다. 종합편성 TV에 나와서 대담하는 모습도 수준 이상이다. 특히 이준석은 영재들이 입학하는 과학고를 조기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에 진학했다.

미국 하버드대학은 1636년 개교한 미국 최고의 명문대학이다. 재미교포 자녀가 하버드대학에 입학하면 물어볼 것도 없이 가문의 영광이고, 최고의 인재로 인정된다. 그리고 하버드대 출신은 앞으로 사회생활에서 장래가 보장된다. 그리고 미국에서 하버드대학 출신 대통령이 8명이며, 수많은 억만장자를 배출했다. 그런데 이준석은 세계 최고의 명문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지만 이를 크게 내세우지는 않는다.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명문대학을 너무 내세우면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준석에 대해 뛰어난 머리와 대단한 실력을 갖춘 인재임에 대해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만일 이번 당 대표 선거에서 이준석이 성공한다면 한국 정계에 하버드대학 출신의 새로운 정치인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된다. 이준석 돌풍이 쉽게 사그라지지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

명동의 몰락

지난주 모처럼 동창과 함께 명동을 들러 보았다. 공식적인 통계도 상점의 60%가 문을 닫았다고 하는 데 정말 썰렁했다. 그렇게 분주하던 거리가 한산하고 적막감까지 들었다. 명동은 많은 변천의 역사를 갖고 있다. 일제시대에는 현 신세계 백화점 자리가 일본 미쓰고시 백화점이 위치였다. 그래서 당시 경성의 최고 멋쟁이들이 들르는 곳이었다.

그러나 명동은 6.25전쟁 이후 문인과 예술가들이 북적이는 낭만의 거리가 되었다. 박인환이 명동에서 즉흥적으로 지은시 “세월이 가면"을 이진섭이 작곡하고 임만섭이 열창해서 유명 곡이 되었다. 그 후 박인희가 불러 더욱 유명해졌다. 1960년대 대학생들은 갈 곳이라고는 명동밖에 없었다. 특히 성탄절에는 밤새도록 명동을 쏘다녔다.

그러나 명동은 그 후 중국 일본 관광객의 명소가 되면서 K패션, K뷰티의 중심지로 뒤바뀌었다. 그 후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진 상업지대가 되었다. 그러나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명동은 몰락했다. 상가들은 장사가 안되고 임대료만 비싸니 모두 빠져나간 것이다. 앞으로 명동의 새로운 모습을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낭만도 있으면서 사업도 잘되는 그런 이상향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