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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야기

김동옥 | 코암대표

Maestro Designer Andre Kim 이야기 (1)


어제 동아 TV에서 2003년도 앙드레 김 패션쑈가 방영되었다. 이를 보면서 남다른 감회가 생기는 것은 그가 75세에 세상을 떠난지 만 10년이 되기 때문이다. 1980년도 초 우연하게 그를 소개 받아 약 30여년간 친분을 쌓았다. 당시는 신문사 지사장 시절이라 일년에 2-3번 한국을 방문하면 늘 반갑게 만나 식사도 하고 속있는 이야기도 나누었다. 특히 3차에 걸쳐 그의 패션쇼를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했다.

그리고 그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한국까지 와서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의 아뜨리에는 늘 긴장감이 감돌았다. 성격이 급하고 완벽주의자 이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새로운 지식과 음악에 심취되고 ,그의 아파트에는 여러대의 TV가 켜져 있어 각방송국의 연예프로를 모두 섭렵했다.

앙드레김이 한국을 대표하는 의상 디자이너가 된 이유는 그의 열정 때문이다. 패션쇼를 해서 의상을 파는 것이 아니라 의상을 팔아 패션쇼를 했다. 또한 그는 끊임 없는 노력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와 브랜드를 지키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우리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예술가 였다. 10년이 지나도 그가 생각나는 이유다.(계속)

"Maestro Designer Andre Kim 이야기 (2)"

앙드레 김은 섬세하고 다정 다감 했다. 그러나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절대 수용 하지 못한다. 내가 한국에 오면 핑크색 장미 100송이가담긴 화환을 호텔로 보내주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는 좀더 자유롭게 일을 하기 위함이며 항간에 동성연애자라는소문에 대해서도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다.

소위 본명이 김봉남으로 알려진 옷 로비사건 때 샌프란시스코 공연이 예정되었으나 참고인으로 출국이 정지되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시 정부와 외교통상부의 협력으로 어렵게 공연이 성사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앞과,몽고 울란바트 시청 공연 등은 당사국의 전통을 함께 하면서 자신의 진수를 유감없이 보여준 멋진 공연이였다.이처럼 타국의 문화도 잘 이해 했다.

앙드레김의 미국공연은 정말 힘든 작업이다. 미국 모델 선발부터 40여개나 되는 의상이 들은 대형 가방의 통관과 모델들의 뒷치닥거리를 해야할 8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모집과운영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시는 앙드레김의 날을 제정해 그를 기념 했다. 앙드레김이 세상을 떠난후 아직까지 누구도 전세계를 감동 주는 해외패션쑈는 하지 못했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계의 거장임에 틀림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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