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 속에서도

엘리자베스 김 (좋은나무숲 문학회장)


높고 화려했던 등대는 착각이었을까.

가고 싶은 항구는 찬비에 젖어서 지고

아직 믿기지는 않지만

망망한 바다에도 길이 있다는구나.

같이 늙어 가는 사람아,

들리냐.

바닷바람을 속살같이 부드럽고

물살들 서로 만나 인사 나눌

물안개 덮인 집이 불을 낮추고

검푸른 바깥이 천천히 밝아왔다.

같이 저녁을 맞는 사람아,

들리냐.

우리들도 처음에는 모두 새로웠다.

놀라운 처음의 새로움을 기억하느냐,

끊어질 듯, 가늘고 가쁜 숨소리 따라

흘리던 만조의 바다가 신선해졌다.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몰랐다.

거기 누군가 귀를 세우고 듣는다.

멀리까지 마중 나온 바다의 열리고

이승을 건너서, 집 없는 추위를 지나서

같은 걸어가는 사람아,

들리냐(마종기)

며칠 전에 앤서니 홉킨스가 주연으로 나와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The Father”란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왜 마종기 시인의 “길”이란 시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가 쓴 시 해설 중에 “들리냐? 내가 부르는 목소리가 혹 들리기도 하냐? 이 스산한 풍경 안에서 귀 기울여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혹 당신인가.” 하는 문장 때문일까?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 진실로 나의 아픔을 공감해 주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 것인가? 내가 너무 힘들었을 때, 친구의 죽음으로 내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누구에겐가 나의 슬픔을 정말 원 없이 말하고 위로받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은 없었듯이(그건 어쩌면 세상이 그런 거지 누구의 잘못도 아닐 것이다) 말이다. 그래서 영화 속의 노인이 Dementia(치매)에 걸려 고통받고 있을 때 나라도 그 슬픔을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본 영화였다. 2020년 작품으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를 다룬, 어찌 보면 흔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이미 연기력을 입증받은 앤서니의 연기는 숨이 막힐 정도로 명연기였다.

내 주위에는 Dementia환자들이 없어서 직접 그들이 겪는 깊은 고통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환자와 가족의 슬픔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상하게도 슬픔이란 단어는 내게 무척이나 친숙하기 때문이다. 견딜 수 없는 슬픔의 끝은 어디일까? 인간의 과학 문명은 이미 우주의 신비까지 밝히고 있는 단계에 다다랐는데 어찌해서 기억을 잃어버리는 뇌 신경에는 속수무책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2년 전에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남편이 갑자기 창밖을 보며 울타리에 어떤 여자가 서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그럴 리가 있냐며 밖을 내다보며 살피어도 여자는 커녕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계속해서 우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넝쿨의 모습이 여자 같기도 하여 잘 못 본 것이라고 말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자꾸 환상을 보며 화장실에 사람이 앉아 있다니, 고양이가 등 뒤에 있다고 하여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신장이 갑자기 나빠지면 그런 혼미한 정신상태, 몽상을 꾸게 된다는 의사의 말이었다. 3주 입원후 다시 멀쩡한 상태로 되돌아왔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남편을 바라보며 가슴이 저미었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눈물을 보이며 뒤돌아 앉아 있던 모습이 무척 슬퍼 보였는데 그때는 자신의 건강을 제대로 챙기지 못해 그 지경까지 만들었던 남편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허나 지금 생각하니 인권 변호사로 정의를 위해 경찰봉과 맞서며 강하게 살아왔던 한 남자가 눈물을 보일 땐 얼마나 자신에게 절망의 슬픔을 느꼈을지 이해가 되곤 한다. 나는 유달리 눈물이 흔한 편이다. 조금만 슬픈 이야기를 듣거나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주체를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편이다. 영화 속에 치매로 인해 요양원에서 살면서 간호원에게 “Who exactly am I? 하고 물으며 우는 주인공의 모습은 어쩌면 미래의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가슴이 먹먹해 온다. 열심히 우리는 살아왔는데, 어느 날 문득 자신이 누구인지 모를 때, 자신의 자긍심이 병으로 인해 구겨질 때, 자신의 의지대로 삶이 사라지지 않을 때 그래서 외롭고 슬픈 사람들. 너무 아파도 아무도 위로해 주는 사람들이 없는, 고독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없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씨가 터서 작은 싹이 되고 나무가 되고 거목이 되어 수많은 잎으로 그늘을 만들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아름다웠던 나무들도 겨울이 오면 잎들을 떨구고 자연으로 제 몸의 일부가 돌아간다. 그렇듯이 우리 인간들도 그러한 과정들을 겪으며 반짝이는 삶을 살다 가는 것이리라. 늘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너무나 외롭고 슬픈 일을 혼자 겪는 인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영화 속에서 간호원이 영감님을 꼭 안아 주었듯이 말이다. (elkimsociet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