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가 세상 떠난 후

이계숙의 일상

시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화장해 납골당에 모셨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하는 게 참 간단했다. 돈으로 다 해결되었으니까.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문제는 시어머니가 평생 살았던 집안의 물건들 정리였다. 평생 자기만을 위하면서 산 사람답게, 물건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사람답게 그녀가 남긴 것들은 어마어마했다. 상표도 안 뗀 물건들, 박스에서 꺼내지도 않은 물건들. 찬장을 옷장을 열 때마다 쏟아지는 물건들, 물건들, 물건들. 정말로 기가 질리게 많았다.레코드판, 책, 인형들. 세 방 옷장에 가득가득 들어차 있는 옷, 두 개의 보석함에 넘칠 정도로 많은 장신구(진짜도 있고 모조품도 있고)들. 뭐하러 침대 시트들과 타올들은 그렇게 많이 사 재었는지. 사진이 꽉꽉 들어찬 열 개가 넘는 앨범, 남편 유치원 때부터의 가정통신문, 평생 버리지 않고 모은 것 같은 카드와 편지들. 각종 댄스대회의 포스터, 배지, 트로피들. 별로 작지 않은 부엌 찬장에도 모자라 옷장 구석구석에 박스로 쌓여있는 그릇들, 세 박스나 되는 은제 포크 세트, 크리스털 꽃병들과 장식품들.참 이상도 하지. 외며느리인 내 차지인 물건들인데도 욕심이 전혀 나지 않았다. 간결하고 현대적인 쪽을 선호하는 나와 클래식한 스타일의 시어머니의 취향이 상반되기는 했지만 하나도 갖고 싶다는 생각이 없는 거다. 가면 갈수록 물욕이 없어진다. 지금 있는 것만으로도 죽을 때까지 쓰고 남을 텐데 여기서 뭘 더 보태나 싶은 생각이 드는 거다. 시어머니랑 체구가 같아서 딴 건 몰라도 스웨터나 청바지 등은 얼마든지 가져다 입을 수 있는데. 그런데도 내가 고른 건 냄비 몇 개, 목도리 한 개와 양말들이었다. 시어머니를 돌봐주었던 간병인들에게 좀 나누어주고 나머지는 야드 세일로 팔았다. 모두 비싼 것들이라 인터넷으로 팔면 제값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남편이나 나나 성의도, 부지런함도 없었다. 그저 하루빨리 처분하고 싶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모델 하우스냐, 수녀님 방이냐 하는 말을 들을 정도로 간결하고 단순하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나는 가득가득 쌓여있는 물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고 가슴이 답답했으니까. 얼른 물건들의 정글에서 헤어나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거의 한 달에 걸쳐 시어머니의 살림살이들을 정리하고 팔아치우면서 생각이 참 많았다. 이렇게 헐값에 팔려나가는 것들을, 쓰레기로 전락하고 마는 것들을 행여나 깨질까 부서질까, 애지중지 했구나 하며 살았던 시어머니. 살림에 대한 그녀의 애착은 남달랐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비싸고 좋은 것이니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겠지만, 흠집이라도 조금 나면 하늘이 무너진 듯 난리가 났다. 원통해 하고 아쉬워하고 아까워하면서 흠집 낸 사람을 비난해 마지않았다. 오죽하면 남편이 자기는 ‘thing’보다 인간의 감정을 우선 헤아리는 사람이 되겠다고 결심을 했을까. 남편의 그 결심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다. 어제 산 새 차를 우그러뜨리고 들어와도 남편은 절대 나를 나무라지 않는다. 물건보다는 사람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면서. 시어머니는 굉장히 인색한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한테는 펑펑 쓰면서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다. 결혼 후, 계획에도 없는 집을 샀을 때의 일. 지갑 밑에 깔린 페니까지 탈탈 털어 다운페이먼트에 보탠 후라 냉장고를 살 돈이 없다. 때는 여름, 냉장고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지라 남편이 시어머니께 부탁했다. 집 산 기념으로 냉장고를 선물해 달라고. 시어머니의 대답은 '노'.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부탁인데도. 남한테 단 한 푼의 적선이나 관용(자기 자식한테도)을 베풀지 않았던 시어머니. 친정 부모로부터 받은 몇백만 불의 유산을 은행 Certificate of Deposit 몇 개에 묶어놓고 직장 일 한 번 안 하고 호의호식하며 살았다. 이자율이 점점 떨어지자 아예 CD를 하나하나 헐어 써서 세상을 떠날 때쯤에는 거의 남은 게 없을 정도.주위에서는 말한다. 세상 떠날 때까지 국가와 자식에게 폐 끼치지 않고 산 것만 해도 어디냐고. 맞는 말이다. 노후대책 제대로 해놓지 않고 늙어서 나라에, 자식에 기대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러나 이웃을 위해 한 푼 나누는 법 없이 나 혼자만 잘 먹고 잘살면서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물건들에만 온 에너지를 쏟아붓고 산 시어머니의 삶이 과연 가치 있다고 말 할 수 있을까. 가치 있는 삶은 어떤 삶일까. 여러가지 상념으로 참 마음이 복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