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갈까

주대식 칼럼

팬데믹 사태 이후로 여행이 금지되고 집 밖 출입을 제한받게 되니 처음에는 그 심각성을 별로 몰랐는데 요즈음은 때때로 내가 손발이 묶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인간은 행동의 제약을 받다 보면 슬슬 부아가 나기 시작하기 마련이다.

어디고 마음대로 여행계획 을 세울 수 없다면 이게 감옥생활이 아니고 무엇인가.

누구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제일 행복하다고는 하지만 억압하면 할수록 무턱대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솟아오른다.

엊그제는 책꽂이 앞에서 서성이다가 유흥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눈에 뜨여 뽑아 들었다.

사실 나는 그의 정치 성향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문화유산 답사기는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은 1994년에 대학 후배가 샌프란시스코에 왔을 때 며칠 동안 먹여주고 재워 준 댓가(?)로 받은 선물이었다.

대충 따져 보니까 지금은 기억도 가물가물한 27년 전이다.

그 책은 한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소개하는 내용이라서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된다.

책을 반쯤 구부린 상태에서 화르르 페이지를 흘리다가 멈췄더니 소쇄원 이야기가 나온다.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쇄원이 소개되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관리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후손의 항의성 불만을 토로했다는 에피소드가 떠 올랐다.

그러나 나는 그 보다는 이 소쇄원이 지난 정초에 서울의 친구 C가 보내준 김영택 화백의 펜화집에도 올라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 펜화집도 꺼냈다.

같은 소쇄원을 두고 유 교수의 글과 김 화백의 시선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해서였다.

우선 유 교수의 안목을 보자

그는 소쇄원을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라고 말했다.

그는 '누정의 미학' '원림의 미학' 등으로 한국의 정원 문화에 대한 끝도 없는 찬사를 나열한 다음 '소쇄원의 조영 내력' '소쇄원의 뜻과 정신' 등으로 소쇄원의 팩트를 정리한 후 그 아름다움을 고경민의 유서석록(遊瑞石錄)의 일부를 인용하여 대신한다.

그 중 일부를 보면 '계곡의 물이 집 동쪽으로부터 와서 문과 담을 통해 뜰 아래로 흘러간다.- - - - -이것이 쏟아져서 작은 폭포가 되니 영롱함이 마치 가야금 거문고 소리 같다.- - - - 조그만 폭포 서쪽에는 작은 집이 있는데 완연히 그림으로 꾸민 배 모양이다.- - - - - 어느 구석을 보아도 수려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 - - -' (이상은 고경명의 안목에서 인용)

유 교수는 이어 '자연과 인공의 행복한 조화'라는 소제목 아래 '- - - 그 모두가 인공의 정성과 공교로움을 다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손길들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자연을 경영한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연 속에 행복하게 파묻히고자 하는 온정을 심어 놓은 모습 - - - -'이라고 단언한다.

이어서 '담장의 북쪽 편은 계곡을 가로지르게 되어 있는데 마치 돌다리를 놓듯이 받침돌이 담장을 고이고 있어서 담장 밑으로 냇물이 자연 그대로 흐르게 - - - -'라며 극찬한다.

꼭 한 번 가 보고 싶다는 궁금증이 솟구친다.

이 정원을 조성한 양상보는 건축가는 아니었지만 섬세한 디자인과 탁월한 구상으로 완성했다는 것이며 이것을 조선 시대 사대부 문화의 위대한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반면에 김영택 화백은 소쇄원의 광풍각을 그리면서 '소쇄원의 상징이자 중심인 광풍각은 소쇄원 건물 중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데- - - -광풍각을 지을 때 축대의 높이를 여러 번 고쳐가며 폭포 소리가 잘 들리게 했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결국 소쇄원은 그의 필치만큼이나 섬세한 감성으로 이루어진 정원이라는 말이다.

김 화백의 감상의 안목은 필설로 다 할 수 없으니 그의 펜화로 대신하고자 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항구 도시를 옆에 두고 살고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인 상태에서 어딘가 먼 데를 자꾸 바라보게 된다.

만약 조만간에 이 통제가 풀린다면 어디라도 떠나야겠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전라남도의 담양 소쇄원을 찾아가야 할까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