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창문으로

Updated: Dec 4, 2020

이계숙의 일상 (자유기고가)


먼 친척언니가 있다. 불우한 성장배경을 가진. 아버지가 정신지체다. 엄마가 인물도 빼어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정신지체를 가진 남자에게 시집 왔을까. 가난한 친정을 살리려고 억지 결혼을 했다는 것 같지만 확실한 건 모른다. 어쨌든 열심히 살았는데 막내아들까지 정신지체. 정신지체 남편도 힘든데 아들 마저도. 어느날 언니의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엄마의 짐을 대신 지게 된 큰딸. 곧이어 큰딸도 어머니의 뒤를 따른다. 정신지체를 가진 사람이 둘이나 되는 집에서, 또한 둘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집에서 맨정신으로 사는 게 이상하지, 꽤 똑똑해서 주위의 기대를 한몸에 받던 언니는 비구니가 되고 싶다면서 속세를 떠난다. 그 후 몇 년, 바람결에 들었다. 한 남자와 불같은 사랑에 빠져 하산했다고. 그리고 나는 미국에 왔고 그 언니에 대한 소식은 끊어졌다. 한국에 갈 때마다 우리 부모를 비롯, 친척 어른들에게 언니의 소식을 물어봤지만 결혼해서 아이 둘을 낳았다는 이야기만 전해줄 뿐 자세하게 근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국 나갔을 때, 우연히 시골에서 작은 찻집을 하고 있는 그녀를 만났다. 이혼했단다. 자녀를 출가시킨 후 혼자 살면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 그녀의 작품에는 비탄과 외로움의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참 가슴이 아프다. 어둡고 기구한 가족사를 지닌채 살아가야하는 그녀가 가엾다. 매일매일 그녀를 짓누르는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까. 자상하고 이해심 많은 남자라도 있으면 사는 게 좀 수월할 텐데. 그러다가 내가 생각하는만큼 그 언니가 자신의 삶을 비애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자성을 했다. 언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만족과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을 수도 있었다. 내 잣대로 그녀의 인생을 함부로 매도하고 동정한 것은 아닐까. 건방지고 외람되게 말이지. 단편 영화 한 편을 보고난 후 든 생각이었다. ‘이웃집 창문'이라는 영화. ‘The Neighbors' Window'. Marshall Curry이라는 감독의 단편영화로,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단편영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주인공 앨리는 어린 남매를 둔 삼십대 중후반의 여성. 배가 나오고 머리가 슬슬 벗겨져 남자로서의 매력을 잃어가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셋째를 임신 중. 늘 단조롭고 심심한 나날을 보내는 그녀. 반면 반대편 건물, 큰 창문을 통해 보이는 아이 없는 젊은 부부의 일상은 매일 매일이 ‘신나는 달밤'같다. 산해진미와 가넷빛 포도주가 놓인 식탁에서 친구들과 파안대소를 하고 춤 춘다. 밤이 되면 젊은 부부는 열정적으로 섹스를 한다. 커튼을 닫지 않은 채. 반대편 건물에서 내부가 훤히 보이는 걸 알면서도 완전 나체로 거리낌 없이 섹스를 하는 강심장이 놀라울 따름. 앨리는 젊은 부부의 열정과 자유와 활기가 부럽다. 매일매일 육아와 집안일에 치여야하는 자신의 삶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마침내 망원경까지 동원해서 반대편 집안을 훔쳐보는 앨리. 어느날 반대편 집안 남자의 머리가 빡빡 깎여있는 걸 발견하게 되고 그후부터는 침대에만 계속 누워있는 걸 보게 된다.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의 앨리. 두어달 후, 여느때와 같이 망원경으로 옆집을 살피던 중 갑자기 응급대원들이 들이닥치는 모습을 목격하는 앨리. 곧 하얀 시트에 덮여 집 밖으로 실려나가는 남자. 앨리는 불에 덴 듯 벌떡 일어선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뛰어나간다. 응급차에 실리는 남편의 주검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아내에게 주춤주춤 다가가는데 그녀가 먼저 앨리를 알아 본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 우리집 건너편 건물에 사는 사람이군요. 당신은 참으로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을 가졌더군요. 그 모습을 창문 너머로 훔쳐보면서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예전에 내가 늘 부러워하던 한 여성이 있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돌아볼 만한 미모를 가진 여성. 잘 생기고 멋진 남편과 예쁘고 똑똑한 아들과 딸을 둔. 그야말로 바늘끝 만큼의 부족함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는 저렇듯 축복받은 여성도 있구나, 그녀를 선망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부러워하던 것 만큼 썩 행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녀가 말했다. 남편의 사랑을 갈구하는 결혼생활이었다고. 자기가 사랑하는 만큼 남편의 사랑이 부족한 것 같아서 항상 결핍을 느꼈었다고. 아주 이상적으로 보이는 가정에도 남 모르는 아픔이 있고 기구하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의 인생에도 웃음과 평안이 있을 수도 있다. 가끔씩 창문으로 들여다 보는 남의 집 사정을 우리가 어떻게 속속들이 다 알겠나. SNS로 남의 집 상황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현대사회에서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단다. 다 나랑 남을 비교하면서 야기되는 문제다. 나만 빼놓고는 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아보이니까.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데. 보이는 것으로 남의 삶을 멋대로 판단하지말고 오늘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면 사는 일이 참 쉬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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