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나고 울화가 치솟고

이계숙의 일상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 침대를 정돈하는 일이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정돈해 놓고 나간다. 심한 감기에 걸려 침대에 그냥 머물러있어야하는 경우 빼놓고는 한 번도 이 일을 걸러 본 적이 없다. 침대를 반듯하게 해놓아야만 마음도 정리되는 것 같고 하루가 상쾌하게 시작되는 것 같아서. 지난 며칠 이 일을 안 했다. 전혀 내키지가 않아서. 친하게 지내던 할배가 지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도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는데 이까짓 침대정리가 무슨 대수랴 싶은 거다. 그동안 크게 가치를 두고 의미를 부여했던 일들이 죽음 앞에서는 다 시시하고 부질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하는 거다. 한 지인한테 이런 마음을 하소연했다. 그녀가 대답했다. 난 전기장판을 깔고 거실바닥에서 자기때문에 침대정리를 할 필요가 없지. 겨울에는 세게, 여름에는 약하게 틀고 자니까 허리 아픈 데도 좋고 이불도 보송보송한 게 너무 좋아... 작은 위로라도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던 내가 잘못이다. 늘 본론과 동떨어진 대답을 하는 지인. 울화가 치민다. 지금 전기장판 얘기가 아니잖아! 관두자, 관둬! 어찌 그리 말귀를 못 알아 듣노?! 안 만난지 몇 달째. 얼굴 잊어버리겠다고 모두 난리다.

코로나로 죽나 외로워서 죽나 죽는 건 마찬가지이니 일단 얼굴이라도 한 번 보자는데 의기투합했다. 우리집 뒷뜰에서. 지인이 밥을 하겠단다. 모두들 기대를 가지고 모였다. 마스크를 쓴 채 뚝뚝 떨어져 앉아서 밥이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늦게 도착한 한 지인이 큰 박스 하나를 연다. 박스 안에는 시루떡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시루떡을 한 개씩 돌리기 시작한다. 어른 손바닥만큼 크고 두터운 떡을. 사람들은 배고픈김에 덥썩 받아 먹기 시작한다. 지인이 내게도 떡 담긴 접시를 내민다. 안 먹어요! 하고 나는 인상을 쓰면서 빽, 소리를 질렀다.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있는 사람들한테 떡이라니, 도대체 생각이 없는 사람같다. 아니나 다를까. 떡으로 배를 채운 사람들이 떡국을 먹지 못 한다. 반 이상을 남긴다. 이 지인은 항상 이랬다,

예전에도. 밥 기다리고 있는데 피자를 사와서 돌린다든지 아니면 찹쌀떡을 가지고와서 돌린다든지. 그런 행태를 보면서도 그동안은 아뭇소리 안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는지. 대형 텔레비젼을 샀다. 집에 가지고 와 보니 기존의 텔레비젼 스탠드와 새로 산 텔레비젼의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가까운 가구점에 가서 새 스탠드를 샀다. 그때가 일요일. 가구점에서 말했다. 다음 수요일 오후 2시에서 4시 사이에 배달해 주겠다고. 돈은 좀 썼지만 새 스탠드를 집에 들일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뭐든지 ‘새 것'을 사면 행복하다. 비록 잠깐 동안이긴하지만.

수요일. 아침부터 기다렸다. 그런데 3시 30분이 넘어가는데 배달차가 오는 기척이 없다. 바깥을 열 두번도 더 내다보면서 4시를 넘겼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가구점에 전화했더니 사정이 생겨서 토요일에나 배달이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내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면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느냐. 기다리는 사람은 염두에 두지 않았단 말이냐. 우리가 재택근무를 하기에 망정이지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집에서 배달트럭 오기만 기다리는 사람이었다면 어쩔 뻔 했느냐... 한바탕하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혼자 가구점 욕을 들입다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렇게 펄펄 뛸 일이 아니다 싶었다. 주인이 잘못한 것도 있지만 나 또한 그렇게 화낼 필요도 없었다. 며칠 늦는다고 큰일나는 것도 아닌데.

요즘은 자주 화가 벌컥벌컥 난다. 그 화나는 일이란 게 위에 예를 든 것처럼 아주 작고 사소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냥 부아가 치민다. 짜증이 난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 죽일 놈의, 이 망할 놈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불안하고 답답하고 갑갑하고 막막하다. 출구없는 동굴에 갇힌 것 같다. 그래서 목구멍까지 화가 차 있어서 바늘로 톡, 건드리기만해도 팡, 터진다. 삶이 피폐해지면서 성격도 괴팍해진다.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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