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진정되면 선상 투어 계획”

레드 오우크 빅토리호에 한국 전쟁 기념 박물관 추진

리치몬드 항구에 정박

왼쪽부터 김동열 기자. 스티브 길포드 리치몬드 박물관 이사


흥남 철수 작전에 사용된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 호(SS Meredith Victory)의 Sister ship 레드 오우크 빅토리호(SS Red Oak Victory) 안에 한국전쟁 기념 박물관을 추진하려는 노력이 태동해 관심이 커지고 있다.


기적의 배 (Ship of Miracle) 1950년 12월 흥남 부두는 장진호 전투에서 큰 손실을 입고 철수하려는 국군과 유엔군, 그리고 피난민들이 한데 모여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이때, 흥남철수작전을 총지휘했던 미국 육군 10군단 민사부 고문 통역관인 현봉학 선생은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인 레너드 라루 선장에게 피난민들을 태울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현봉학 선생은 “나는 저 불쌍한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에드워드 알몬드 장군과 레너드 라루 선장은 고심 끝에 운반하려던 무기를 포기하고 14,000여 명의 피난민을 태웠다. 흥남 부두에서 출발한 빅토리호는 12월 23일 부산 항구를 거쳐 이틀 후 12월 25일, 2박 3일의 항해 끝에 거제까지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이 기간 동안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기도 했다. 레너드 라루 선장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때때로 그 항해에 대해서 생각한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가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그 해 크리스마스에 황량하고 차가운 한국의 바다 위에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는 명확하고 틀림없는 메시지가 내게 와 있었다” 한편, 빅토리호의 일등항해사 제임스 로버트 러니는 라루 선장을 도와 안전한 항해를 책임졌던 인물이다.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철수 당시의 진정한 영웅은 선원이라기보다 죽음의 극한 공포 속에서 굳건한 용기와 신념을 보여준 피난민이었다”고 말했다. 겨우 1만 톤의 배에 14,000명의 피난민을 아무 사고 없이 거제까지 온 것 자체가 기적이라는 뜻에서 아직도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미라클 배(Miracles hip)라고 부른다. 1960년 제19대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auer) 대통령은 “인류 역사에 가장 위대한 구조(the greatest rescue in the historyof mankind”라고 말했다.


리치몬드 박물관 자원봉사자들(오른쪽 끝 박성진 목사)


레드 오우크 빅토리호 (SS Red Oak Victory Ship)

캘리포니아주 리치몬드 항구에 정박인 레드 오우크 빅토리호는 SS Meredeth Victory호와 같은 시기에 카이저-리치몬드(Kaiser-Richmond) 조선소에서 건조된 1,495척 가운데 하나로 제2차 세계대전부터 퇴역까지 화물선으로 사용되었다. 455' 길이의 빅토리호는 1944년 11월 9일 포트 시카고에서 탄약을 싣고 하와이 진주만으로 첫 항해를 했다. 2월 오키나와 상륙작전에 참가했으며, 1950년부터 1952년까지 한국과 미 서부지역 을 왕래하면서 탄약과 군수품을 운송했다. 빅토리호는 1966년 월남전에도 참가했으며 1998년 9월 제2차 대전에 참전한 모든 빅토리호들이 퇴역함정으로 변경됨으로 자신이 탄생한 리치몬드 항구로 돌아왔다. 2018년 리치몬드시는 빅토리아호를 전쟁 기념 박물관 겸 행사장으로 사용해 매주 일요일 일반에 공개 되었는데 현재 코로나 패데믹으로 인해 폐쇄되어 있다. 미국이 전쟁 중 건조한 534척의 빅토리 호 중에 겨우 3척만 남아 있는데 한국과의 인연에 상당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구조 받은 한국인들이 “We ever thank for American Assistance /미국의 구조에 영원히 감사하자”라고 적었다. 미국에선 전쟁 중에 건조한 배들의 이름에는 승리라는 이름 빅토리(Victory)를 붙였다. 카이저 조선소에서 진수한 빅토리호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다.


SS레드 오우크 빅토리호 (SS Red Oak Victory Ship) 전경 헨리 카이저와 조선소 북가주 지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역사적인 인물 겸 사업가로 헨리 카이저를 손꼽을 수 있다. 헨리 카이저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리치몬드와 워싱턴 주에 조선소를 소유하고 있었는데 총 1,495척을 진수했다. 제2차 대전 중 리치몬드 조선소에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5~6백여 명이 용접공 등으로 고용되었는데 그 당시 여성 근로자들을 위한 조선소내 보건소 같은 의료 기관을 운영하었다. 1945년 10월 1일 의료기관이 오늘날 카이저 병원(Kaiser Permanente Medical)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카이저 병원이 리치몬드 조선소에서 시작된 것이다. 1947년 4월 1일 250개 침상을 구비한 발레호 커뮤니티 병원이 후일 Kaiser Permanent's Vallejo Medical Center로 변명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헨리 카이저는 전쟁 중 많은 배를 건조해 미 해군의 전력 증강에 큰 기여를 했다. 지난 4월 22일 기자를 안내한 스티브 길포드 (Steve Gilford)씨는 예일대학을 졸업했으며 현재 리치몬드 역사 박물관 이사 겸 역사가 또한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봉사하고 있다. 스티브 씨는 “지금 공중보건 의료 기관인 Kaiser Permanent Medical이 리치몬드 조선소에서 탄생했다”면서 “헨리 카이저는 사업 수완뿐만 아니라 미국과 미국인을 위하여 큰 업적을 남긴 역사적인 큰 인물”이라고 평가 했다. 전쟁 역사가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조’를 한 배,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선원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류애를 보여 주었다”며 “전쟁 중 무기 대신 사람을 선택한 것은 대단한 인류애로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치몬드 박물관에서는 빅토리호를 가능하면 전쟁 기념 박물관으로 활용해 교육과 친선을 위해 사용되기를 바라고 있다. 스티브 이사는 “북가주 지역에 10만여 한국인이 살고 있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한인 공동체에서 한국전쟁 기념박물관 건립을 후원 해주면 한국인의 의지를 기리는 ‘삶의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인들이 관심을 보여 주면 선상 투어도 주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리치몬드 항구에 정박해 있는 레드 오우크 빅토리호를 보면 흥남 철수에 참가한 미레네 빅토리호의 Sister ship으로 한국인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하고 있다. 빅토리호를 전쟁 기념관으로 활용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접한 일부 전·현직 한인 단체장들은 환영의 의사를 밝히면서 코로나 팬데믹이 수그러들면 한번 투어 기회를 마련해 실물에 접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리치몬드 레크 오우크 빅토리호 박물관은 매주 주말 금토일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오픈하며 입장료는 10불이다. 아직 코로나 감염증으로 인해 선상에 한해서만 오픈되고 있으며 가이드가 서비스하는 ship below deck tour(선내 투어 / 10불)는 아직 보류되고 있다. 주소: 1337 Canal Boulevard, Richmond, CA 94804 <김동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