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이태리 “백신 특허 해제보다 원료-기술 공유가 시급” 미국 압박


EU, 美에 수출규제 우선 완화 요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지식재산권(지재권)이 유예되더라도 세계 각국은 수년 동안 우리 백신을 계속 살 것이다. 제약사들은 (복제) 백신을 만드는 데 심각한 장애물을 마주할 것이다.”

mRNA 방식의 백신을 개발한 미국 제약사 모더나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의 지재권 포기 지지 의사를 밝힌 다음 날(6일) 내놓은 논평이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재권이 유예돼도) 백신 제조 비법을 다른 기업에 전수하도록 강제하는 메커니즘은 없다”면서 “상황이 달라질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평은 백신 지재권 유예에 찬성하는 유럽연합(EU) 정상들마저 미국의 백신 수출 규제 중단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리책(cook book)’으로 불리는 구체적인 백신 제조 방법과 공정은 특허 정보에도 담겨 있지 않다.

지재권을 바탕으로 실제 백신을 생산하기까지 시일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다. 모더나의 스테판 방셀 최고경영자(CEO)는 자사 실적발표회에서 “(백신 특허가 보호되지 않아도) 임상시험과 자료 수집, 보건당국의 승인, 생산 확대는 6∼18개월 안에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역시 7, 8일 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열린 EU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제조 방법도 모르고, 당장 생산할 수도 없는데 지재권을 유예해 준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라고 물었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도 “특허권을 푼다고 해도 (제조) 과정이 대단히 복잡하기에 백신의 공급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지재권 유예에 반대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만약 특허권을 제공해도 품질이 통제되지 않는다면 위험성이 더 클 것”이라고 했다.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지재권 유예가 지금 작동하는 글로벌 백신 (원료) 공급망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EU 정상들은 대신 미국이 당장 백신과 원료의 수출부터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7일 “백신의 공유, 수출 (규제 해제), 제조 능력 증대 투자가 시급하다”며 “유럽에서 생산된 백신은 절반가량이 ‘코백스 퍼실리티’ 등을 통해 약 90개국에 수출되고 있다”고 미국을 압박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미국이 백신과 재료의 수출을 막아 백신이 돌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미국은 국방물자생산법을 발동해 백신 제조에 필수적인 재료를 엄격히 통제하며 미국 내 생산에 우선 공급하도록 해 왔다.

세계적으로 관련 물자가 부족한 상황에서 이는 수출 금지나 마찬가지 효과를 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그 여파로 ‘세계의 백신 공장’으로 불렸던 인도가 백신 생산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접종 속도가 더뎌지며 제조된 백신 역시 남아돌고 있다. 그러나 수출은 이달 들어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와 캐나다에 처음으로 일부 허용했다.

미국이 백신을 대량으로 해외에 공급하라는 국내외 여론의 압박을 피하면서 시간을 벌기 위해 지재권 포기 지지를 들고나왔다는 분석도 나온다.

백신 지재권 유예를 위해서는 세계무역기구(WTO) 164개 회원국 중 반대하는 곳이 없어야 하기에 결정에는 짧으면 수개월에서 길면 수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결정이 지연되는 가운데 제약사들이 백신의 생산 물량을 확대하면 유예 논의가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7일 “미국의 지재권 포기 지지 방침은 정치적 술책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지난해에는 백신 지재권 유예에 반대했으며, 5일 바이든 대통령이 포기 지지를 표명했다. <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