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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귀가 먹었나 앞을 못 보는 장님인가”


아름다운 도시 S.F에 반드시 위안부 소녀상 세워야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 S.F시 공청회 참석

올해로 88세인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사진)가 15일 성치 않은 노구를 이끌고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추진 중인 위안부 소녀상 건립에 도움을 주고 진실을 증언하기 위해서 찾게 된 것이다.

현재 중국 커뮤니티가 추진하고 있는 위안부 소녀상 건립은 15일과 17일 샌프란시스코 시티 홀에서 공청회가 열리게 된다.

15일 공청회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의 피맺힌 진실 증언으로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이스트베이 한미노인 봉사회(회장 김옥련) 회관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1928년 12월 3일 칠흑 같은 밤에 일본군과 다른 여자에 의해 납치당해 평북 안주를 거쳐 중국 대련에서 배를 타 대만 신죽으로 끌려 갔다고 증언했다.

고향인 경상북도 대구에서 6남매 가운데 외동딸로 태어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찬찬히 그리고 북박치는 억울함을 짓 누리면서 또렷또렷하게 당시의 운명적 상황을 담담히 전했다. 당시 신죽에는 일본군 자폭대 가미가제가 주둔하던 곳으로 이용수 할머니는 당시 15살이었다.

신죽에 가보니 국적을 알 수 없는 10여명의 다른 여성이 있었는데 함께 납치당한 한국인 5명을 포함해 총 15명이 당시 일본군 위안소에 머물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나는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다. 일본군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지난 23년 동안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진심이 담긴 사과와 법적 보상을 요구했다.

일본은 귀가 먹었는가, 아니면 눈을 못 보는 장님인가.

나의 소리를 듣는 다면 귀가 뚫렸을 것이고 눈을 떴을 것이다.

지금도 위안부가 아닌 이용수이다”라고 일본의 만행을 규탄했다.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는 이제 단순한 일본군의 희생자의 절망을 넘어 여성 인권가로 또한 인권 투사로 활동하게 되었다고도 전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끝으로 “우리 후손을 생각하면 일본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며 “그에 앞서 일본은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법적 보상을 한다면 그들을 용서하겠다”는 속마음을 보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17일 S.F공청회를 끝으로 LA로 내려가 일본군 위안부를 돕는 일본인 단체와 연대 행사 및 마이크 혼다 의원과 만남도 예정 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강승구 미주상공회의소총연 총회장은 “이용수 할머니가 고령이고 건강이 나빠서 상당히 염려했는데 이번 샌프란시스코 시 공청회에 꼭 참석해 관광객이 많이 찾는 이곳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지는데 일조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너무나 감사하고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 커뮤니티에서 추진 중인 위안부 소녀상을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과 미국 언론의 높은 관심과 여성인권과 맞물려 진보와 평등의 아이콘으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에 건립될 것으로 기대 된다.

이날 행사에는 김진덕 정경식 재단의 김한일 대표 김순란 이사장이 참석해 이용수 할머니를 따뜻하게 위로했다.

사진: 15일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할머니의 참담한 증언이 이스트베이 노인 봉사회관에서 열렸다. 앞줄 중앙 김한일 대표, 이용수 할머니, 김순란 이사장, 김옥련 회장, 이제남 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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