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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워드 거주 윤혜석 주부 신인상 수상


2015년 한미문단 문학상 수필 부문

(사)한국문인협회 미주지회(지회장 강정실)가 주최한 2015년도 한미문단 문학상 수필부문 신인상에 헤이워드에 거주하고 있는 윤혜석 주부가 영예의 수상 상패를 받았다.

지난 20일 LA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미주지역 문학인 등 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문단 문학상 시상식이 열였다. 한상렬 심사위원은 심사평에서, 윤혜석 주부의 수필 ‘추억하기 위하여’ 는 “회고적인 담론을 소재로 하여,화자의 미적 정서를 잘 표현 한 작품으로 신인상에 선정되었다” 고 말했다.

신인상을 수상한 윤 씨는 “글쓰기의 새로운 길을 열어주어 감사하며,글을 다듬어며 산다면 다행한 삶일 것이다” 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윤혜석 주부는 1996년 ‘공간문학’의 시부문으로 등단 한 시인이기도 하다.

상패를 받은 윤혜석 주부 (왼쪽)

추억하기 위하여

바람은 살랑이고 고즈넉히 햇살 내려앉은 주말에 천상의 목소리라는 이름을 가진 어린이 합창단의 공연을 보고 왔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한인 어린이들의 합창단이다. 곱디고운 목소리, 맑고 환한 얼굴로 노래하는 아이들의 공연은 자리를 가득 메운 이들을 같이 노래하게 할 만큼 마음을 움직이는 공연이었다. 아이들의 타고난 천진스러움이 청중들로 가득찬 공간을 매우고 가슴까지 채워서 삶에 이리저리 부대낀 어른들의 굳은 감성을 녹여주었다. 그 감동을 고스란히 가지고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아들과 마주 앉았는데 불현듯 생각나는 일이 있었다.

예전에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 어린이 합창단에 가입시키려 오디션을 봤던 기억이었다. 한 20년 전 아들도 그런 노래를 하려 했던 적이 있었다는 기억이 토막토막 떠올랐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리고 어떻게 되었니? 이것저것 생각들의 연결이 자꾸 어긋나기에 그 날의 일들을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아들은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다그치듯 캐묻는 나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고 단호히 말을 잘랐다. 아니야, 잘 기억해봐. 그 때 부른 노래가 산이라는 노래 아니었니? 네 목소리가 우렁찼는데... 점점 둥그레지던 아들의 눈이 차츰 근심이 서려지는 얄궂은 빛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 내 머리 속의 생각들이 갑자기 엉키어들면서 그림들이 서로 엇갈려 날라 다니기 시작했다. 아뿔싸!

필름이 리와인드되면서 뭔가 다른 그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20년이라는 공간을 건너뛴 옛 기억들이 헛갈려들고 있었다. 아들이 아니라 막내 남동생을 오디션 뵈려 언니와 같이 했던 그날의 일들이 하나하나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시간에 늦어 헐레벌떡 거리며 올랐던 남산 KBS 가는 길, 마지막 순서였던 동생의 오디션 그리고 동생의 힘찬 목소리로 울려 퍼지던 산이라는 제목의 노래... 남동생과 아들, 그 둘의 나이 차가 거의 20년이나마 되거늘 그 마만큼의 시공간을 넘어선 둘의 기억이 이렇게 헛갈려들다니 갑자기 하늘빛이 노랗게 변해버렸다.

얼마 전, 친구의 집에서의 일이다.

잘 정돈 된 부엌 쪽 높은 선반 위에서 탐스럽게 자란 화분 두개가 양옆으로 싱싱한 잎을 드리우며 푸른 기운을 온 집안으로 뿜어내고 있었다. ‘화분을 잘 키우는구나. 참 보기 좋아. 기분이 산뜻해지는게 이것보다 더 나은 인테리어가 없다.”며 한참을 칭찬 겸 소감을 늘어놓았다. 그 때 어이없이 큰 소리로 터질듯 친구가 웃었다. “그거 네가 우리 이사할 때 사다준 것 아니니! 두개 가져다주면서 양쪽으로 올려놓고 정답게 잘 키워보라더니...”

친구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내 머리 속에는 그 기억이 전혀 없었다.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지고 화분과 나를 연결시켜주는 어떤 그림도 어떤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불과 1,2년이 지난 일일 뿐인데 말이다.

아직도 나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잊혀지지 않아서 그 기억들이 한번씩 마음을 휘젖어놓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 막아서는 바람에 잊고자 기를 쓰고 있다고 여겨왔었다. 내 안에 더께로 차곡히 앉은 지난날들의 아픈 기억을 다 비워버리고 구름처럼 가볍게 흐르듯 앞으로 나아가기를 갈망하던 나였다.

잊어야 할 것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이것들이 내가 그려놓은 궤도대로 제대로 돌지 못하고 서로 엇갈린 길을 찾아든 것인지 잊고 싶은 기억은 늘 내 곁을 빙빙 돌며 떠나지 않는데 기억하고 싶은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은 금세 잊혀지고 있다.

어린 시절 다정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하나씩 지워지고 그들과 웃으며 떠들고 놀던 골목길이 정감은 헐리고 뜯겨진 폐허가 되어버렸다.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떠오르지 않는 이름과 그 세월은 가슴을 뚫고 휘돌아나가는 한 줄기 바람되어 내게서 멀어지고 만다. 작지만 귀했던 옛 추억의 편린들을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바라만 보아야 하는 안타까움 뿐 아니라 그리 오래지 않은 날들의 따뜻했던 사연들도 기억에서 앗아가고 있다.

옛날 앨범을 들추어보면서 그 날로 돌아가 가물거리는 이야기를 기어이 되살려내려는 시도를 해 보지만 그것 또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무지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는 이름과 장소는 물론이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으며 미소를 날리던 화사한 순간은 그저 그림이고 기록일 뿐 그날의 감동을 기억하지 못한다. 까맣게 잊혀져 뇌리에서 사라졌던 것들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가슴은 서늘해지면서 막막해진다.

기억하는 것들과 잊혀지는 것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수많은 조각의 퍼즐을 맞추듯 정성과 시간을 들여 그림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요 신묘한 명약이 있어 기억을 되살리거나 오래토록 간직하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머릿속의 기억이 조금씩 비워져 기억할 수 있는 지난 일들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방도를 나는 찾지 못한다. 하루에도 수차례 깜빡거리며 머릿속에서 민첩하게 튀어나오지 않는 생각이나 기억으로 저지르는 실수들과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속수무책의 건망증까지 곁들인 나이이고 보면 부질없는 희망으로 마음만 내려앉게 될 것이다. 나이가 느는 만큼 잊히는 것들이 늘어나는 건 자랑할 일도 아니지만 아파할 일도 아니라고 스스로 위안할 뿐이다.

유리처럼 투명한 아이들의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온 저녁 시간, 그 아이들만큼 어렸던 나의 시절을 떠올리고자 했던 자리에서 엉클어진 기억으로 나는 이리저리 길을 헤매다 낯선 곳에 주저앉은 몽유의 환자가 되어버린다.

머릿속 쫌쫌한 주름 속 깊이, 너무 깊어서 배어나오지 못하는 기억들을 무엇으로 파내어 그날의 일들을 되살릴 수 있을까? 마음을 어루만지는 위안의 아름다운 노래 가락처럼 시시때때로 흘러들게 하여 아름다운 날들의 기억을 항상 내 곁에 머물게 할 수는 없을까?

내 마음의 소원은 흩어지는 외침이 되고 흩어진 외침은 한 조각의 기억으로 다시 되돌아오기를 소원하며 오늘도 나는 지난날의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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