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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한 우리 엄마


밤이 늦은 시간인데, 전화 벨이 울린다. “내다” 오랜만에 걸려 온 어머니의 전화다. 한동안 안부전화를 드리지 못했음에 죄스러움이 앞선다. “응, 엄마, 별일 없었제” 칠십이 문턱인 나이인데도 철없던 때 그대로 아직도 엄마 라고 부르고있다. 사는게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다는 변명을 늘상 해 왔던 나다. 어머니는 나와 약 50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혼자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친구따라 장에간다고 했듯이, 오래동안 사귀어 온 친구들이 좋아서 내가 사는곳으로 이사를 꺼리시는 것이다. 편하게 속마음을 들어 내놓고 이야기 할 수있는 친구가 좋다는 것이다. 사십도 안된 젊은 나이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먼저 보내시고, 4남1녀를 키워 오신 씩씩한 어머니다. 35년간의 여학교 선생님을 끝내고, 작은 아들을 따라서 이민의 삶을 살아 온지 30년을 훌쩍 넘기셨다. 혹시나 아프기라도 하신건가? “엄마, 무슨 일 있나” 나의 걱정 가득한 안부다. “아이다, 니 신문에 수필 발표 한거 봤다. 잘 썼네” “아, 봤나, 별로제” “노인회 친구들이 칭찬 많이 했다” 아들의 이름이 지역언론에 보도 될 때 마다, 친구들로부터 인사 받기에 익숙한 어머니시다. 그런데 아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글로 세상에 내놓았으니, 신이 나신듯하다. 어머니는 선생님이 되고자 사범대학을 졸업한, 콧대가 높은 서울 토박이 예쁜 신여성이셨다. 그런분이 경상도 두메산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청년과 사랑에 빠져 버렸던 것이다. 무뚝뚝하고, 구수한 사투리에다, 장래가 밝아보이는 믿음직스러운 경상도 청년에게 마음을 열고 말았던 것이다. 깨소금 맛 같은 고소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을, 6.25라는 동족상쟁의 한국전쟁이 깨뜨려 버리고 말았다. 어린 아들을 등에 없고 남편을따라 나섰던 피난살이는, 산골, 시골학교의 선생님으로 내 몰고 말았던 것이다. 5남매의 가정과 학교을 오고 가며, 정치가의 길을 고집하는 남편의 뒷바라지까지 감당해야 했던, 부지런하고 씩씩한 어머니다. 어렵고, 외롭고, 힘이들어도 오늘이 있음에 감사하며 살아 온 90평생이다. 그러나 고향산천을 떠나 이국만리 먼나먼 곳에서 살아 온 긴 세월은, 외로움과 고통의 연속이였다. 1989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바로 눈앞에서 보고 겪으며, 생사의 불안과 공포를 경험하기도 했다. 할머니가 되어버린 60년 세월의, 모든것을 빼앗아 갈듯, 유방암이라는 절망의 신호탄이 또 날아 들었다. 죽고 사는것은 하늘의 뜻이라고 굳게 믿으며, 젊은이도 감당하기 힘든 수술과 투병으로 승리의 놀라움을 보여주었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노년에 오는 무릎 관절의 마모로 외출을 할수없게 되었다. 오랜세월을 학교 교단에서 보낸 탓으로 생각하셨다. 또 한번의 싸움을 결심하고, 용감하게 두 무릎을 수술대에 맡긴 것이다. 정말 큰 수술이었다. 아무리 세계최고의 의술이라고 하지만, 고령의 나이에 이겨낼 수 있을까 였다. 6개월이란 긴 시간을 피와 땀을 흘린 재활훈련으로 당당하게 일어 선것이다. 믿음과 자신감이 이루어낸 또다른 기록이 되었다. 나에게 맡겨진, 크고 작은 환경에 만족하며 살아오신 결과라고 감사 하신다. 음력 정월 27일은 91세를 맞이하시는 생신날 이다. 용감하고 씩씩한 우리 엄마, 감사합니다. 100세 까지 화이팅! 불효자는 간절하게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한맥문학 수필 신인상

*실리콘밸리한인회장 역임

*(사)한국문협미주지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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