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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박물관 건립


<베이포럼>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손’이 끝났다. 근래 보기 드문 인기 드라마로 아직까지 촬영장 에피소드가 이어지고 있다. 드라마의 소재가 딱딱한 군인과 여의사의 사랑을 그렸는데 의외로 쿨하게 연결 돼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왜 한국드라마 이렇게 성공하는지 그 이유를 찾으려는 노력도 있었다. 가무를 좋아하는 민족이라 예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독특한 창작행위가 나오게 되었다는 진단도 있지만 뚜렷하지는 않다. 기자는 우리 드라마가 이렇게 성공을 거두기까지 우리 예술가들의 우수성을 논하기 전에 역사를 아끼는 민족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우리의 역사는 약 5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의 현장

우리 민족의 역사는 한마디로 질곡의 역사였다. 외세의 침략에 시달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크고 작은 침략과 전쟁에 시달렸다.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사람들이 절단나지만 그 속에서 새로운 창조가 일어났던 것이다. 전쟁이후 파탄 속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또다른 역사와 문화를 창조하고 그 맥을 이어갔던 것이다. 역사의 아픔은 되풀이 하지만 그런 역사 속에서 조상의 흔적을 승계하고 보존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이어 왔다. 한국에 가보면 대도시를 비롯하여 소도시까지 다양한 형태의 박물관 또는 역사관을 볼 수 있다.기자는 지난 3월 충남 덕산에 갔었다.

덕산은 한국에서 온천장으로 유명하다. 인근에 수덕사가 있으며 또한 애국지사 매헌 윤봉길 의사를 모시고 있는 사당과 기념관이 있다. 윤봉길의사는 1908년에 태어난 1932년 돌아 가셨으니 25년의 생을 마친 것이다. 19살 나이에 농촌계몽에 들어갔다. 그의 농촌계몽운동은 단순히 계몽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민족 얼의 부흥을 목적으로 했던 것이다. 1930년 그는 중국으로가 백범선생을 만나고 조선독립을 위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던 중 스스로 조국 독립의 제단에 몸을 던질 결심하게 되었다. 마침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일본군의 상해사변 전승 축하식과 합동으로 상해 홍구공원에서 거행할 예정이라는 신문을 보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윤의사는 거사일 아침 백범 선생과 마지막 조반을 들고서 홍구공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축하식 중 일본 국가 연주가 거의 끝날 무렵 의사는 수통형 폭탄의 덮개를 벗겨 안전핀을 빼었고, 앞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단상 위로 폭탄을 투척하였다. 폭탄은 그대로 노무라와 시라카와의 면전에서 폭발,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을 내고 식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 의거로 시라카와 대장과 카와바다 거류민 단장은 사망하고 노무라 중장은 실명, 우에다 중장은 다리를 절단하는 중상을, 시게미츠 공사는 절름발이가 되었고, 무라이 총영사와 토모노(友野) 거류민단 서기장도 중상을 입었다. 윤의사의 이 쾌거는 곧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조선의 독립운동이 알려진 것이다. 현장에서 붙들린 의사는 일본으로 압송되고 형식적인 군사재판을 거친 후 1932년 일본군 병창장에서 25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처형된 것이다. 기자는 기념관에서 크게 그려진 윤봉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역사는 기록으로 보존 되고 그 것을 보관하는 장소가 중요하다는 것을 재삼 깨닳게 했다. 시골 한가한 길거리에 세워진 매헌 윤봉길의 의사의 기념관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가 민족을 위해선 한 업적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심지어 그의 이름을 잊어 버렸을 것이다. 지난 한국 방문에서 돌아 온 뒤 기자에게 남는 것은 맛있는 음식도 아니요 물건을 산 기억도 아니다. 꼭 그곳에 가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그곳에 그런 기념관이 존재해 질곡의 역사 현장을 보는 체험을 한 기억만 남았다.

이민박물관 건립

미주 한인의 역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우리의 산조들이 1905년 제물포를 떠나 사탕수수 밭에 온 것이 이민 역사의 시작이었지만 실제 이민역사는 하와이 수탕수수 밭에서 떠나온 이후였다. 그들은 노예생활 같은 하와이를 떠나 당시 서부지역 최대 항구였던 샌프란시스코에 오게 되었다. 그들은 곧바로 중가주 지역으로 이동해 농업 종사하게 되었다. 당시 그곳에는 ‘김스농장’이 세워지고 그곳에서 일하던 선조들이 돈을 모아 이승만 박사에게 독립금을 거두어 주었다.이후 도산 안창호 선생도 이곳에서 활동했고 이대의 목사와 교회를 세우고 한인신문을 시작했다. 후일 장인환 전면운 의사의 일제 외무성 고문 스티븐슨을 총살하려 했던 사건이 발생해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의 실체가 들어 났던 것이다. 이런 역사가 후손들에게 알려지고 계승되기 위해선 역사를 보관하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한인 박물관 건립 추진위는 이미 2년여 전에 시작 되었지만 동포들로 부터 아직까지 전폭적인 후원은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한국전 참전비 건립에 동포들의 지원이 집중 되어 한인박물관 건립이 슬로우 하게 진행 되었지만 올해부터는 동포들로 부터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예상 된다. 더우기 그 어려운 비영리단체 허가가 떨어졌다는 낭보까지 있어 세금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금 모금에 탄력이 붙게 되었다. 한인박물관 건립은 이민자의 역사적 책임이고 소명이다. 역사를 외면하면 우리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인박물관 건립에 한인들의 관심과 후원은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나. 가정의 달 5월에 열리는 한인박물관 추진행사에 동포들의 관심과 사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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