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루디


요즈음 한국에서는 강남 지하철역에서 벌어진 묻지마 범죄에 대해 전국이 떠들썩하고, 또 미국 올란도에서 일어난 게이 바 총격문제로 온 나라가 공포스럽다. 문제는 특별한 원한 없이 여성혐오증 혹은 사람 혐오증에 사람을 죽였거나 게이 혐오증에 의해 범죄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꼭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미국이나 어떤 나라에서도 그런 묻지마 식의 범죄가 더 심해진다는 것이다. 사회학자들은 살벌한 현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친절한 무관심"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즉 남의 일에 지나친 관심을 가져서도 아니되지만 그렇다고 배척하거나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하여도 그 자체가 위험하다는 이야기 일것이다. 즉 타인을 대할 때 친절함과 더불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라 하는 것이다. 소설가 박민규는 <루디>라는 단편 소설을 통해 이러한 <묻지마 식>의 범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피 엔딩의 소설이나 영화에 익숙해져 있는, 아니 그래야만 될 것 같은 기대감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을 삶,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진짜 현실의 삶이란 그렇지 못하다고 박민규는 그의 단편 <루디>를 통해 강하게 말한다. 문명이 발달하고 복잡해 질수록 인간의 심리는 더욱 다면화가 되어 선한 인간, 악한 인간 이렇게 양분화 하기가 어려워진다. 악마 성이 들어있는 천사들이 인간의 마음속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악마 성이란 선천적이기 보다는 복잡한 사회성, 인간 관계 혹은 문명 속에서 나름대로 오다쿠적 인간(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한 가지 일에 깊게 빠져 다른 인간관계 형성이 잘 안되는 형으로도 해석이 가능함)이 생성이 되는 후천적 기질이 더욱 강하며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 하도록 갖가지 폭력과 살인 등으로 표출이 되어지기도 한다. 빈부의 격차는 점점 심해져서 2퍼센트의 부자가 98퍼센트의 사람들을 지배하며, 지배 당하는 사람들의 삶의 비참함은 거의 바뀌어 지지 않도록 세계는 돌아가고 있다.. 그러함에 있어 세상은 허무주의가 팽배해지고 폭력성이 난무하며 무작정 살인이 일어나곤 하는 것이 이제는 해피 앤딩이란, 소설 속에서 조차 일어나지 않게끔 일상화된 사회, 사회의 모순적 구조가 바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사회임을 실감케 하는 끔찍한 소설이기도 하다. 더구나 2퍼센트의 우월한 사람들 역시 그들의 몸 속에는 똥(욕심)이 가득 차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소설은 빗대어 이야기한다

단편 <루디>는 워터스 루디라는 인간과 보그먼이란 일인칭 화자를 통해서 현대 사회의 단절된 모순과 권태를 강하게 끌어내려고 애쓰고 있다 주인공 보그먼은 풀장이 딸린 정원이 있는 집과 두 딸을 가진 평범하지만 성공한 측에 속하는 재정회사의 이혼 남 부사장이다. 그는 일상의 반복적인 패턴에서 삶의 무료함을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택한 것이 여비서로부터 즉흥적인 제안을 받고 앨라스카 여행을 떠날 정도로 자기 소신이 부족하고 권태로운 삶의 한 대변인이다. 이 소설은 무료한 여행 중에 있는 화자의 삶 속에 울린 총성 한 발이 권태로운 삶을 한 순간 뒤집어 버리는 듯 하지만 무섭고 잔인한 살인과 폭력의 긴박한 순간 속에서도 박민규는 여전히 이 소설을 권태를 바닥에 깔아둔 채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비유된 현대인의 욕심과 물질 만능주의는 아무리 버려도 또 다시 차오르고, 정말 몰랐다고 쉽게 인정해버리는 안이함도 산재해 있다. 현대 자본주의가 부의 월권적이고도 부당적인 축적을 보면서도 이렇다 할 공평의 기회를 잃어가는 대다수의 비 수혜자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고 소설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살인마 루디 역시 어떤 목적이나 이념 아래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보그먼이 하필 그 자리에 루디의 눈 앞에 나타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리고 자동차 휘발유와, 생수를 얻기 위해 이전까지 항상 그래 왔듯이 폭력과 살인으로 그것들을 쟁취하는 이른바 무정부주의의 암연한 분출이다.

보그먼과 루디는 결국 절벽 아래로 차가 굴러 떨어져 죽음을 맞이 함으로 이 이야기는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원한 끝은 없어보인다. 둘은 사라져도 권태의 시간성은 존재하는 듯 하다..

마지막 순간에 보그먼이 본 대낮의 오로라, 그리고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죽여도 죽지 않는 그와 죽고 싶지 않아도 죽는 나는 결국은 함께요, 러닝 메이트라는 것, 있는 자 없는 자 모두 이 사회를 구성하며 떼어 놓을 수 없는 불가분적 관계라는 것…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그 상황에서도 우리는 영원히 함께 라고 하는 것은 소속감의 부재에서 오는 그 단절을 한 순간에 뛰어넘으려는 절박한 외침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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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게 괴롭혔으니 평등하게 미워한다.’ 는 루디의 자조 섞인 경고 또한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현대 사회의 부당함을 경고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읽을수록 온 몸에 전율이 흐르고 삶의 허무성에 깊이 빠져들게 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그냥 무작정이라도 인적없는 바닷가 Point Reyes에 다녀와야 할 듯 싶다.흔들리는 들풀과한가로이 풀을 뜯는 엘크라도 보고 와야 이런 소설을 쓴,글 잘 쓰는 박민규가 밉지 않을 것 같다.(elkimsociet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