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며 느끼며 겪으며 생각하다


여행을 갔다왔다. 6월 말에 떠나서 7월 첫 토요일에 집으로 왔다. 서너달 전에 큰딸이 하는 말이 " 어머니날 선물로 뉴욕에 있는 작은딸에게 가는 것은 어떤가요? "하고 물었다. 평소에 여행을 잘 하지않는 터라 뉴욕으로 가자니 자주 보지 못하는 와싱톤 디쉬에 사는 언니가 맘에 걸렸다. 그래서 큰딸에게 한 말이 "그러면 먼저 이틀은 이모에게 갔다가 그곳에서 버스로 뉴욕으로 가는 것은 어떨까 ?" 하고 물었다. 큰딸은 뉴욕에 있는 작은딸과 의논을 하더니 가는 비행기표는 와싱톤 디쉬을 먼저 가는 것으로 하고 오는 것은 뉴욕에서 집으로 오는 것으로 예약을 했다.

그렇게해서 시작 된 여행은 오랜만에 작은언니를 보게 되어서 반가웠다. 나이들어가는 언니는 옛날처럼 집을 깨끗하게 하느라 예민해 있지 않아 좋았다. 다 큰 아이들 때문인지 마음을 내려놓아서 인지 언니는 편하게 느껴졌다. 멀리서 온 동생을 데리고 맛있다는 음식을 사주고 샤핑도 하고 찜질방도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 서로의 등을 밀어주다보니 옛날에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혼자 뚝 떨어져 사는 언니가 마음에 짠했다. 내가 살고있는 곳에는 큰언니도 큰오빠도 있는데 사실은 작은언니가 오빠도 언니도 다 미국으로 데려왔는데 아무도 이언니 사는 곳에 살고 있지 않다. 이들가족을 초청해서 올 당시에는 작은언니가 외국에 나가 있어서 모두 내가 있는 쪽으로 오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민자의 삶이 뿌리를 내리다보니 중간에 어디로 다시 움직이는 것이 쉽지는 않아서 더 그렇게 되었다.

이틀간 언니와 반가운 해후를 하고 다음 목적지인 뉴욕으로 버스를 타기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언니는 함께 있는 동안 하는 말이 " 이제는 애들만 생각하지 말고 너를 위해서도 살아라 여행도 다니면서 " 했다. 언니는 떠나는 나를 짠하게 보고 나는 나이 들어가며 형제없이 혼자있는 언니가 짠 한 순간이었다.

버스로 네시간 반을 걸려 뉴욕으로 오니 작은딸이 마중을 나와 만났다. 그길로 가지고 온 무거운 가방을 딸이 사는 곳으로 가서 내려놓고 딸이 계획한 박물관 여행이 시작이 되었다. 첫번째가 911 기념박물관이었다. 정말 마음 아픈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을 기념하기위해 얼마나 고심하며 지었는지가 느껴지는 곳이었다. 고도로 발단된 컴퓨터 기술력을 잘 활용해서 지어져 있었다. 아픈역사지만 잊지말아야 한다는 것을 많은 것으로 가르쳐 준 박물관이었다.

다음으로 간 곳은 뉴욕 보타니칼 정원이었다. 얼마나 장소가 큰지 구간 마다 같은 종류의 나무를 잘 구성해 놓아서 보기가 좋았다. 특히 장미화원은 만발해 있어서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었다. 안에는 긴 오픈 된 버스가 다닐 만큼 하루에 다 보기가 힘들었다. 좁은땅 뉴욕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넓게 차지한 정원 박물관을 보니 새로웠다.

다음날 간 곳은 매트 라는 박물관을 갔다. 도심에 위치했는데 밖에서 보는 건물부터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런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곳이라 그런지 선 줄이 길었다.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내가 보기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책에서나 보았던 오래된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이 많았다. 예술이라고 표현 할 수있는 많은 작품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각국나라의 작품까지 모아져 있었다. 이곳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문화적인 혜택이 부러웠다.

그다음날에도 모마라는 박물관에서 특색있는 작품들을 보았다. 그리고 휘티니 라는 박물관에서는 바다근처에 위치해서 조형물도 있었고 건축물과 디자인이 돋보이는 박물관이었다.

화요일 도착해서 토요일 올 때까지 무려 여섯군데에 박물관을 다녔다. 어떤날은 두군데 박물관을 갔고 중간에 센츄럴공원도 들렀고 비취도 가서 피쉬 타코도 먹고 그리고 롱아일랜드시티도 갔다. 작은딸은 엄마의 휴가를 알뜰하게 많은 박물관을 보게 계획을 세워 매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몸에 배러리가 나갈 때 집에 돌아오기를 사흘을 그렇게 강행군을 했다. 집으로 가기위해 딸과 비행장에서 작별을 할 때 " 아 이제는 작은딸이 뉴욕에서 학교와 직장생활을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이제 조금씩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구나 " 하는 생각과 함께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한가지 도움을 주던 자리에서 딸에게 도움을 받는 내자리가 바뀐 것을 느꼈다. 딸이 고마웠다.

그것까지는 다 여행이 좋았는데 집으로 오는 비행기에서 같은 비행기가 LA, 롱비취에서 한시간 반 넘어 있다가 다시 새크라멘토 목적지로 오는 것인데 착각을 해서 모두 내리는데 같이 내리는 바람에 나갔다 다시 검색을 하고 돌아와서 타기까지 식은 땀이 나는 소동을 겪었다.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안내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거기다 방향감각이 없다보니 완전히 다른 비행장임에도 불구하고 알아차리지 못했다. 어이없는 실수로 남편과 아이들에게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엄마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러나 당한 나는 가슴이 철렁한 일이었다. 웃지못할 사연 하나 끝에 남긴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