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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을 나들이의 여담


나는 황혼의 막다른 길목에 서 있는 탓인지 한국의 가을이 유난히 그리워진다. 아마도 젊은 날 거의 모두를 사계절이 없는 열대지방에서 지낸 탓인지 모른다. 그런 것이 아니면 가을에 태어난 것이 그 원인일 것이다. 그 그리움을 해소하려고 나는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단풍계절에 맞추어 한국산천을 돌아보는 여행을 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북에서 빈손으로 월남하여 9년간 의지할 곳 없이 막막하게 지내던 남한의 곳곳들을 찾아, 옛 모습들이 그간 얼마나 변화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을 것이다. 때 마침 월남전쟁의 유공자인 해병대출신 사촌이 제수씨와 함께 우리의 가을 나들이 길잡이를 해 주겠다고 자청해 왔다.

우리의 여행은 내가 난민생활을 했던 강원도의 항구도시 속초에서 시작했다. 아침 햇빛에 반사된 설악산을 감싸고 있는 푸른 하늘, 묵묵히 외곬만을 바라보는 절벽 같은 크고 작은 바위들, 그 틈에서 가을을 장식하려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초목들이 제2의 고향이라고 찾아온 나를 반겨 주웠다. 그 아기자기하고도 섬세한 풍경은 후진국의 낯선 땅을 전전하면서 때 묻고 얼룩진 나의 두 눈으로는 감히 똑바로 쳐다볼 수 없도록 장엄했다. 골짝마다 다정하게 조화를 이룬 산천초목, 생긴 모양과 존재의 목적은 각기 다르지만 한 어버이의 후손들처럼 같은 마음으로 긴 여름동안 가을이란 짧은 한 계절을 위해 나름대로 준비한 것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북위 38도의 북쪽에 위치한 속초는 1953년 7월27일에 체결된‘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의해 비무장지대(DMZ)가 설치됨으로서 잃었다 되찾은 수복(收復)지역으로, 한때는 육군 제1군단이 관장하는 군정지역이었다. 나의 고향은 이곳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자동차로 1-2시간의 거리에 있지만 누구도 가 불수 가 없다. 휴전선에 가까운 탓으로 속초에는 한때 정전협정으로 발목이 묶여, 고향에 돌아갈 희망을 잃은 실향민들이 우거(寓居)하던

곳이 기도하다. 1950년 늦은 겨울 함께 원산에서 포항까지 도보로 월남한 나의 숙부님 두 분 그리고 사촌형도 이곳에서 통일이라는 희망에 속으면서 사시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1954년 이른 봄 대학진학을 위해 속초를 떠나올 때 나는 육군부대가 운행하는 국방색 군인트럭으로 강릉에 와서 하루 밤을 지내고, 다음날 새벽 버스로 대관령을 힘들게 넘어 해질 무렵에야 겨우 서울에 도착했었다. 그렇게 멀었던 길이 터널과 포장도로 탓으로, 속초는 더 이상 통일을 기다리는 실향민들의 요새도 바다에만 의존하는 항구도시는 더욱 아닌 듯싶다. 언제부터인가 동해바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북적거리는 관광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어둠을 깨고 웃음으로 솟아나는 동해의 아침 해와 설악산의 듬직한 혼기(魂氣)에 매혹되어, 우리는 속초의 해변과 설악의 계곡들을 오가며 한 주간을 지냈다.

낙산사를 떠나 동해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차머리를 돌린 우리들의 여행은 지피에스의 도움으로 거미줄처럼 짜인 도로망을 헤치고 찾아간 남해의 보리암(菩提庵)을 두 번째로, 내장산(內藏山), 춘향의 고향 남원, 변산반도, 대둔산(大芚山)과 마지막으로 산정호수(山井湖水)에서 끝을 맺었다. 조상들이 오래전에 이름 지어 가꾸며 보존해주신 이들 명소들은 각기 개성을 품은 풍취(風趣)를 지니고 있는가 하면 한국적인 독특한 경관들이 숨어 있었다.

한국적이란 암벽으로 된 높고 험한 산들이 지나가는 구름들을 머물게 하여 얻어진 빗물로 그 많은 초목들을 하나같이 생육 번성케 하며 또 시내와 계곡을 만들어, 함께 조화를 이루며 공존 공생하는 신비스러운 모습이라 하겠다. 산세가 험한 탓으로 골짜기마다 하나의 시내가 만들어 졌고, 높은 곳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언덕을 허물며 바위를 만나 모래를 만들면서 범람 하여 유역에다 비옥한 평야를 만들어서 우리 민족을 번성케 했다. 그 물길들은 내가 본 아프리카대륙의 강들과는 그 길이는 비교가 안 되지만 계곡의 구절양장(九折羊腸)의 굽이를 이르는 한국만의 독특한 풍치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조화된 산천이 있기에 역사적으로 설음 많은 민족이지만 오늘과 같은 대한민국으로 번창하게 되였다고 생각하니, 낯선 나라에서 반세기가 지나도록 살아오는 우리 부부에게는 그렇게도 특별할 수가 없었다. 모진 비바람과 햇빛을 맞아가며 참고 기다리다가, 불꽃처럼 물들어진 나뭇잎들의 그 갸륵한 색감(色感)을 어찌 잠시 눈에 비쳐지는 그림만으로 그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개성을 지닌 산천초목들이 서로가 배려하며 공생하는 신비의 풍채(風采)를 마음 깊은 곳에 새겨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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