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


<기고문>

봉투에는 100불짜리 신권 2만불이

비지니스를 시작한 지 몇달 안되어 난항을 겪게 되자 난 그 당시 산호세에서 부동산업에 종사하는 지인에게 연락해 가게 처분을 도와달라 청했다. 월세가 연체되고 유틸리티도 내지 못할 상황에 처해지자 두려움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극단의 선택을 할 수도 있었던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 때 지인과 텅 빈 가게에서 한 시간쯤 이야기를 나누었다. 파산은 나라가 개인에게 회생의 기회를 주는 것이니 너무 힘들면 한번 고려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카드빚 몇천불이 고작인지라 파산선고할 이유도 없었지만 설령 불가피하게 한다할지라도 지인들에게 진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하자 그 분도 더 이상 파산권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상담 이후로 나를 짓누르고 있던 거대한 바윗돌이 마치 굴러내려간 것처럼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는 사실이었다. 빚도 그대로요, 달라진 것은 없었지만 누군가가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단 자체만으로도 더 이상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 한 시간이 불러온 극적인 변화로 인해 절망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어느새 유턴을 그리고 있었다.

그 무렵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요즘 무척 어렵다면서요? 우리가 2만불 정도 빌려준다면 급한 불은 끌 수 있겠어요?” 순간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몬트레이 지역에는 교포들 사이에서 돈문제로 인해 불신이 팽배해있던 터라 몇천불은 고사하고 단돈 5백불 빌리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듬 해 4월까지 갚을 수 있다면 빌려줄테니 급한 불을 끄라는 말에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하지만 내가 그 기한 내에 갚을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Yes!라는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이삼일만 말미를 얻어 전전긍긍하며 군 은퇴연금을 포함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고려해 겨우 상환계획을 세웠다. 두 달만 더 연기해주면 6월까지 갚을 수 있다하자 지인도 그러겠다 약속했다. 그 동안 몇차례 돈을 구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아 깊은 좌절감에 쌓여있었는데 거액을 빌릴 수 있단 사실에 과연 이루어질까 반신반의할 수 밖에 없었다. 드디어 약속장소에서 지인을 만나 두툼한 봉투를 전해받았다. 두근대며 열어보니 그 안에는 놀랍게도 은행신권 100불짜리 2만불이 빼곡히 들어있었다. 그 순간 울컥 치밀어오르던 복합적인 감정들로 소용돌이가 일었다. 내가 미리 서명한 차용증을 건네주자 지인은 한사코 말리며 받지 않았다. 솔직히 입장바꿔 생각해도 난 지금도 그렇게까지 할 용기가 없다. 거액의 현찰을 빌려주며 차용증마저도 거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말이다. 그 돈은 단순히 2만불의 가치를 떠나서 죽음의 기로에서 서성이던 저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했다. 그 지인은 분명히 내게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월급생활하면서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해본 적이 없던 내가 노후자금까지 되찾아가며 쏟아부은 비지니스로 인해 빚더미에 앉았다는 현실, 민폐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에다 남에게 돈을 빌려달란 말을 죽기보다 싫어했던 내 자신이 그 때처럼 초라하게 보인 적은 없었다. 아직도 간혹 경험도 없이 왜 덤벼들었냐는 지인의 우스겟소릴 듣기도 한다. 그럴 때면 씁쓸하게 웃어넘겨 버린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간혹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며 마음 속 억울하고 응어리진 것을 몰래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지금도 느낀다. 세상에는 입으로 하나님을 외치는 자는 많으나 행동으로 옮기는 자는 많지 않다. 사마리아인으로부터 돈 2만불을 건네받으며 하늘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돈만큼은 반드시 제 날짜에 상환하리라 재차 다짐했다. 주변에선 20년 군 제대했으니 먹고 살만하지 않느냐 묻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궁즉통(窮則通).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 무렵 까맣게 잊은 채 놓쳤던 서류를 작성해서 군 해당부서로 보내자 몇달 후 정산이 이뤄졌다. 비록 2만불을 갚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지만 그 일부는 채워진 셈이다. 연금을 쪼개고 쪼개어 한달을 버티고 지인에게 갚을 돈을 따로 떼어놓는 긴축경제가 이어졌다. 약속 당일, 부족한 금액은 사전에 알아둔 대로 차 타이틀과 내 연금을 담보로 약속당일에 고리대금 사무실을 찾았고 우여곡절 끝에 부족한 현금을 채운 후에야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했다. 지인은 내가 돈을 못갚을 줄로 알고 반절망 상태로 나왔다며 내미는 봉투를 보더니 의아한 표정이었다. 내 처지가 너무 안좋다는 말을 전해들었기 때문이었다. 약속을 지켰다는 안도 때문인지 자리에 앉자 온몸에서 땀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신뢰가 깨어지지 않음에 마음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어느 톡쇼를 보니 북한에는 ‘3대 머저리’가 있다한다.

남에게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머저리요, 그 빌린 돈을 갚는 사람은 더 머저리이며 그보다 더한 머저리는 결혼하는 것이라며 깔깔대던 젊은 탈북여성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 몇년 전 준비해두었던 자필 유언장을 떠올렸다. 생명보험을 수령하면 맨 먼저 해야할 일을 딸 아이 앞으로 남긴 적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빚더미에 앉고난 후에는 새로운 리스트가 추가되었다. 최우선 순위가 내가 빚을 갚아야할 사람의 명단과 액수였다. 오는 데에 순서있으나 가는 데엔 순서가 없는 법. 내가 갑자기 떠나게 될지라도 빚쟁이로 남길 원치 않음이며 나로 인해 금전적 손해를 봤다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금은 다행히도 그 명단의 대부분은 삭제되었고 빚은 30%만 남은 상태로 아직도 꾸준히 상환 중이다.

작년에 구입한 밴도 1차 신용교정이 끝나자 마자 구입하면서 이자를 원래보다 5% 낮춰주었건만 지난 6월까지 지불한 이자를 계산해보니 무려 1만 5백불에 달했다. 허리띠를 좀 더 졸라매자는 각오로 결국 여전히 원금 그대로인 차 대금을 보름 전에 일시불로 납부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난 여전히 내 할일을 하면서 부족하나마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신용교정 세일즈 에이전트로 살고 있다. 빈손이었던 내게 작게는 300불, 많게는 2만불을 빌려준 여러 선한 사마리아인들과 하나님의 자녀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대부분 나를 알게된 지 불과 몇개월 밖에 안된 상황에서 받은 도움이고 보니 그 의미가 새삼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제는 몬트레이 국방외국어대학을 은퇴하신 모 교수님께도 건강을 기원하며 감사의 마음을 다시 한번 전해드린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으니 지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이 글이 미력하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Soon it shall also come to p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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