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기념비


월요일 아침 부터 부산했다. 오전 10시까지 한국전쟁 기념비 제막식이 열리는 샌프란시스코까지 가야하니 이것 저것 준비도 해야하고 가는 길에 노인회장님도 모시고 가기로 약속해 더 조급했다. 모처럼 베이브릿지 아침 출근 시간에 지나가려 하니 예나 지금이나, 다리값이 오르기 전이나 후에나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Jam Freeway 라는 말이 있는데 거대한 파킹장 같은 베이브릿지를 두고 생긴 말 같다. 오클랜드에선 여름에 여간해서 긴 샤츠를 입지 않는데 샌프란시스코에 가야 하니 긴 샤츠를 꺼내 입고 스마트폰 GPS에 모든 것을 맡기고 행사장으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 행사장에 파킹하니 이미 좌석은 만원이었다. 겨우 사진 찍기에 편한 자리를 차지하고 주위를 살펴 보니 6.25참전 노병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참전용사들은 이미 팔순을 넘긴 고령자에 속했다. 한국전쟁이 1950년에 터졌으니 올해로 66주년을 맞이한다. 15살 군에 갔다고 해도 팔순이 지난 것이다.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의 노병사가 설레이는 마음으로 한국전쟁 기념비 제막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기자의 마음도 쿵쿵 거렸다. 누구를 기다리나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는 원래 미육군 군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다. 한국전 당시 프리시디오는 서부지역에서 한국으로 파병 되는 군인들을 총괄하던 곳이었고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수송함들이 군인을 한국으로 실어 날랐다. 요즘처럼 비행기가 많지 않았던 시대이니 배가 유일한 파병운송 수단이었다. 장병을 가득 실은 수송함들이 금문교를 거쳐 태평양으로 향했던 것이다. 이날 행사장에서 기도를 맡은 군목이 살아서 금문교를 떠난 장병 가운데 시신으로 돌아온 용사들이 많았고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실종 용사들도 있다며 슬품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과 샌프란시스코는 참 인연이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전후를 종결 짓는 강화회담이 열렸다. 여기서 엄하게 일본에 대한 응징을 했어야 하고,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책임과 영토 구분이 깔끔하게 정리 되었어야 하는데 애매모호한 문구로 아직까지 남북분단과 한일간 독도 문제로 티격태격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국민들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주최국 미국이 당시 소련의 능란한 술수에 놀아나 6.25전쟁의 빌미를 제공했고 한일간의 불화 가능성이 예견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샌프란시스코에 세워진 한국전쟁 기념비의 위치는 너무나 좋다. 북쪽으로는 알카트라스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금문교 다리가 한눈에 들어 온다.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에는 한국전쟁에서 유일하게 북한군의 포로가 되었던 윌리암 딘 소장의 묘소가 있어6.25한국참전용사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가운데 하나인 금문교는 오늘도 짙은 안개 속에서 아직도 돌아 오지 못한 용사들을 기다리고 있다. 돌아오지 못한 용사여! 그대들은 아는가. 우리가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으니 돌아오라. 빨리 돌아오라. 빚지면 못사는 국민 한국전쟁 기념비는 일부 뜻 있는 6.25한국 참전용사들로부터 알려지기 시작했다. 미 서부지역의 관문인 샌프란시스코에 기념비를 세운다는 것은 해볼만한 사업으로 준비위가 구성되었던 것이다. 당시 기념비에는 한미 양국 전사자를 추모하는 뜻으로 추진 되었으나 크게 어필 하지 못했다. 6.25전쟁 당시 산화한 한국전사자들의 희생도 미군 전사자와 함께 알려져야 한다는 뜻이 강했다. 그러나 땅을 제공하는 것이 미국이니 한국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계속 주장하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참전용사들에 의하여 진행 되었다. 특별히 미해병대 참전용사들이 가장 열성적으로 준비재단을 설립하고 모금운동을 전개했다. 그들도 자신들의 힘으로만 건립 기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한인사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오늘날 한국의 번영과 발전이 있기까지 미국의 경제적 도움과 안보협력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은 대부분의 한인들이 인정하고 아직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동포사회 분위기에서 기금모금은 순조롭게 진행 되었다. 명분이 좋았고 당시 총영사가 이일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모금운동에 직접 나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오늘 참전비를 보면서 거의 3백만달러 이상이 들어간 이곳이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전쟁을 기억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도 있다. 또한 한미동맹이 한미혈맹으로 불리는 현장이 되었으면 한다. 기념비는 동포사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인은 보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남에게 진 빚은 꼭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너무 나약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불러 일으키지만 국민성이 그렇게 순한 것을 어떻게 바꾸겠나. 자랑스러운 한인들 6.25한국전쟁에 참가한 프랑스 군인이 한국정부의 초청을 받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는 프랑스가 미국으로부터 제2차세계 전쟁 당시 많은 도움을 받았고 노르만디 상륙작전 성공으로 독일 나치를 프랑스 땅에서 몰아내는 전과를 올렸지만 지금 어느 프랑스인이 그런 미국에 감사하겠냐고 말했다. 이미 잊어 버린지 오래고 전쟁은 참가국의 이익에 따르는 것이니 어떤 보은이 꼭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회견 말미에 한국 국민은 매우 독특한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자기가 좋아한다면서 마쳤다. 오래전 이 글을 읽으면서 정말 한국 국민들 보다 정(情) 이 많은 민족이 있을까 생각했었다. 우리가 별종이면 별종일 것이다. 이런 별종이니까 이런 큰 일을 뚝딱뚝딱 만든 것 아니겠나. 그리고 이번 기념비 모금에 참가한 해외나 타지역에 사는 한국 국민도 샌프란시스코 한인들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충분하고 또 감사하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해냈다. 앞으로 한국의날도 잘 치를 것이고 EB문화회관 건립과 SF한인박물관도 세울 것이다. <hdnewsusa@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