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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에서 시조시인으로, 김운송 작가 (1)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 후, 미국의 위스콘신 대학에서 분자 생물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 한 후 미시간 대학에서, NASA의 화성 조사 프로젝트 팀에서, 독일 튀빙겐에 있는 막스 프랑켄 연구소에서, 연세 대학교등 과학자와 교수로 일해오셨던 분이 60세가 되던 해에 문학가로 삶의 전환을 하였다면 어떤 위대한 문학의 힘이 이 분의 삶에 영향을 끼친 것일까?

명성 있는 과학자에서 시조시인으로 삶의 터닝 포인트를 한 이 후 수 많은 중국의 한시들과 시조들을 영어와 한글로 번역하고 또한 자신의 영 시조집을 미국 내에서 최초로 출간하며 후세 양성과 시조 보급에 제 2의 인생을 멋지게 살다 가신 고김운송 문학박사. 이분을 접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지만 특별하게 행복한 일이었다. 나의 칼럼이었던 "현원영과 소세끼"를 읽고 독자 분이 보내주셨던 김운송 시조작가님의 자작시집과 번역 시조집은 노자의 도덕경부터 모택동의 한시집, 중국 교포들의 시조등 우리가 흔히 접해보기 힘든 귀한 책들이었다., 특히 중국 한시와 전통 우리 시조를 영어와 한글로 번역한 책들은 그 범위가 방대하고 깊이가 있어 그 글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게 매우 놀랍고도 신선한 기쁨을 안겨주었다.

모국어 외에는 영어, 그리고 신문에 나오는 한문을 어느 정도 겨우 이해할 줄 아는 내게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독어, 그리고 러시아어등 다중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시는 이 분의 정신적인 삶의 풍요로움이 참으로 부럽기만 했다. 특히 톨스토이니 토스토예프스키등의 작품 등을 원어로 읽어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인지를 일단 뒤로 하고 그 벅찬 기쁨을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린 나이였던 5세에 이미 천자문(千字文)을 터득했던 똑똑한 소년이었지만 집안이 가난하여 학교를 제대로 다니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워낙 천재적인 머리를 가졌던 그는 경쟁이 심했던 일제치하 시대의 정부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졸업한 후 경복 고등학교에서 선생으로 재직하다 미국에 유학을 왔다.

그는 1954년에 위스콘신 대학에 입학 한 후 노벨 수상을 받은 조슈아 레더버그(Joshua Lederberg) 의 지도아래 1958년 분자 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성과를 올린다

미시간 대학에서 교수를 하다 그는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자리를 잡고 나사(NASA)에서 화성탐사 화성 프로젝트의 과학자로 일을 한 후 독일 튀빙겐에 있는 막스 프랑켄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도 재직을 한다. 그는 연구기간 동안 과학지 및 생물학지인 Science and Molecular Biology지에 중요한 논문을 발표하며 과학자로서의 성공적이고 확실한 그의 입지를 다진다. 그 후 그의 친구가 총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연세대에서 교수로서 재직하며 제자 양성의 삶을 살아갔지만 그는 은퇴를 결심한 후 문학가로서의 제 2의 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옛날부터 60세를 인생의 경륜이 쌓이고 삶에 대한 판단과 사려심이 최고로 성숙하여지고 귀가 순해진다 하여 이순(耳順)이라 한다는데 그 이순의 나이에 이 분의 인생 터닝 포인트는 이미 예고되어 있었던 것이었으리라. 생활과 가족을 위해 문학보다는 과학자로서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가 10살이었던 일제 치하 당시 총독부에서 주최했던 글쓰기 경연대회에서 <세금고지서>라는 글로 대상을 받았을 때의 떨림과 벅찬 환희를 간직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그러한 가슴 떨림은 문학이라는 또 하나의 꿈이라는 씨앗을 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 꿈을 어느 땐가 가슴에서 꼭 끄집어내었어야 했을 것이다.

아주 세밀한 분자 수준에서 우주와 연결된 생명의 현상을 원리를 알아내어 과학을 통한 인류의 행복을 향한 이상과, 그리고 끊임없이 진리를 파고드는 과학자로서의 탐구정신은 결국 문학과 통해있지 않았을까? 과학이 결여된 문학 혹은 문학이 결여된 과학이란 완전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 분이 이루어낸 일은 참으로 많다. 중국의 한시를 번역하고 향가를 번역하였으며 모택동의 한시를 번역하기도 하고 도덕경 및,, 영어로 쓴 자작시집등 이루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하셨는데 무엇보다도 한 영어로 된 시조집을 최초로 출간하신 분이시기도 하시고 우리나라 고유의 시조등을 미국 주류사회에 알리신 지대한 공을 세우신 분이시다. .

특히 중국및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중국 어를 한국어 및 영어로 사재를 털어 많은 책들로 번역출간하기도 하였다. 이분의 노력으로 시조를 알게 된 캐나다의 Elizabeth St. Jacques여사도 김운송 작가의 영향을 받아 영어 시조 쓰기 안내서를 “Poetry in the Light”에 소개시키기도 하는 등 김운송 작가님 역시 웹사이트의 “Sijo in the Light” 섹션에 올려 놓고, 번역된 시조, 창작한 시조들을 올려 시조를 소개 하고 있는 등 미국내에 시조를 알리시는 데 많은 노력을 하였다.

"시조란 일본의 하이쿠나 중동의 허잘보다 더욱 서정적이고 시조의 마지막 줄에 표현 되는 극적인 변화로 종말 짓는것이 시조 만이 갖는 독특한 형태로 꼽고 있기에 시조 쓰는 것을 fascinating challenge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The Wordshop” 의 발행인인Larry Gross박사의 말처럼 김운송작가의 시조사랑은 현재 활발히 활동 하시는 현원영 시조시인으로 대를 이어가면서 현원영, 최연무 시조시인을 중심으로 이곳에서도 <삼연회>라는 시조 모임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북방의 작은 나비의 날개짓이 맨허턴에 큰 폭풍을 불어오게 할 수 있는 <나비의 효과>처럼 언젠가 전 세계의 사람들이 우리 고유의 시조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하고 더 많이 쓰고 읽게 될 초석을 감사하게도 고김운송 작가님이 다지셨음이 분명하다. 다음에는 기회가 된다면 이 분의 시조등을 소개 하여야겠다.(elkimso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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