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가슴 채우는 대화


찾아오는 이도 거의 없는 텅 빈 집안에서 쓸쓸한 노년의 인생을 보내고 있던 그녀에게 걸려오기 시작한 이상한 전화.

"여보세요".. 대답이 없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누구세요". 알 수 없는 전화에 노인은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전화는 계속되고 처음에는 아무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지만 전화가 반복되면서 또렷하지는 않지만 익숙한듯한 목소리가 낮게 들려오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아주 오래 전에 자동차 사고로 죽은 그녀의 약혼자임이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죽은 그가 전화를 걸어 올 리가 없지 않는가.. 노인은 전화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국 사람을 부른다. 전화국 사람은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전화선을 따라 가 보는데.. 놀랍게도 그 전화선은 이미 수 십 년 전에 죽은 약혼자의 무덤에 꽂혀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미 죽어 저 세상 사람이 된 그가 그녀를 잊지 못해, 아니 사랑했던 그녀가 고독한 노년을 보내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대화라도 해주고 싶어서 매일 전화를 걸어준 것인가? 그러나 전화선을 무덤에서 빼버린 노인한테 죽은 약혼자로부터의 전화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울리지 않는 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그녀에게는 무덤에서 전화선을 빼버린 것에 대한 후회만 가득하고 폐부를 찌르는 듯한 외로움만 깊게 남았다. 침묵을 지키는 전화통을 쳐다보며 흐느끼는 고독한 노인. 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 것만 같다.

내가 즐겨 보는 Rod Sering의 Twilight Zone 시리즈 중 하나의 스토리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마나 외로운지 젊은 너희들은 잘 모른다" 라고 가끔 이야기 하셨던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엄마가 66세이시던 해, 아버지께서 68세의 연세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는 그렇게 혼자 19년을 사시다가 85세에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리 즐겨 하시지 않으셨기에 혼자라도 씩씩하게 외로움도 안 타시고 아버지 없이 잘 견디시나 보다 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를 자주 드리지 못하면 엄마가 먼저 전화를 하셨다. "엄마 무슨 일로 했어?" 하고 물어볼라치면 "그냥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 했지" 그게 다였다. 어쩌면 엄마는 아버지와의 연애담을, 처녀시절의 이야기를, 아니 어쩌면 어제 저녁은 곰탕을 먹었는데 맛이 어떻더라 하고 그냥 그런 소소한 이야기라도 늘상 하고 싶어하셨을 것이다. 평생을 아버지와 소곤소곤 수 많은 대화를 나누시며 친구처럼 사셨는데 한 사람이 먼저 떠나고 대화의 상대가 없으니 심적으로도 얼마나 외롭고 힘드셨을지 미처 깨우치지 못한 불효를 한 것이다. 부모에게 드리는 가장 큰 효도는 용돈을 넉넉히 드리거나 좋은 물건을 사드리는 것보다는 외롭지 않게 대화를 많이 나누어 드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미안해.. 엄마 살아계실 때 조금 더 이야기도 많이 나누면서 엄마 마음 외롭지 않게 할 걸....

남편의 가장 절친한 친구가 얼마 전에 병에 걸려 이 세상을 떠나더니 나의 가장 둘도 없는 친구도 사고사로 몇 개월 전에 이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남편과 남편의 친구인 John은 22년 이상 라파엣의 같은 식당에서 매주 화요일만 되면 만나서 남자들의 수다를 떤 사이었다. 식당 주인도 화요일은 둘이 앉는 테이블을 다른 사람들한테 주지 않고 기다려주곤 했다. 사교성이 없고 원래 과묵한 남편이지만 이 친구만 만나면 농담까지 섞어가며 정치이야기부터 노동자들의 인권, 그리고 여행이야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그렇게 22년 이상을 만나던 John이 죽자 남편은 눈물을 보였다. 나 역시 나의 친구와는 모든 소소한 삶의 이야기부터 문학과 미술, 음악등 수 많은 대화를 가장 진지하게 나누던 사이였기에 갑작스런 친구의 죽음 앞에 그야말로 망연자실해졌다. 슬픈 마음 추스리지 못해 우왕좌왕 할 때 한 번도 진지한 대화를 나누어볼 기회가 없었던 문우 한 분은 "좋은 음악 시디(C.D) 한 장 만들어 주세요. 하면서 멀리서 찾아왔다.

"어떻게 지내세요? 그렇게 가까웠던 친구분이 이 세상을 뜬 이후.. 많이 힘드시죠?" 하고 조심스레 물어오자 벌써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거리며 목소리가 갈라진다.

"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요,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이죠´ 누가 이제 저하고 절망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메마른 사막의 생명에 대해서, 바위가 만들어 내는 석화(돌이끼)에 대해 감탄하고 그러한 감동에 대해, 서로의 예술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겠어요. 사려 깊은 이 문우님은 세상이 나를 등지었다고 생각이 들 때 느끼는 무기력함을 내게서 눈치 채고 C.D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해주었는지 모른다.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나 배우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아주 오랫동안 가슴에 통증을 느낄 것이다. 돌아 앉아 책을 읽는 남편의 넓은 등짝이 오늘따라 더욱 쓸쓸해 보인다. 이제는 두 사람의 시린 가슴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사소한 대화라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허전해 보이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컴퓨터를 키고 한 동안 열지 못했던 음악 화일을 열었다

남편이 좋아하는 컨츄리 송으로 가득 채운 C.D 몇 개 만들고 좋은 음악으로 가득 채운 C.D 더 만들어서 가슴이 스산한 분들에게 드리기 위해...(elkimsociet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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