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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베이포럼>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시인, 화가인 밥 딜런이 올해 노벨상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노벨문학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의 사무총장도 발표에 앞서 잠시 주저했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충격적이다. 일부에서는 순수 문학가들에게 “엿을 먹인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불만이 쏟아내고 있다. 밥 딜런은 싱어송 라이터로 잘 알려졌다. 특히 1960년대 월남전이 시작되면서 반전 가수로 더 알려져 지금 밥 딜론이 누구냐고 물으면 아마도 반전가수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지 않겠냐 싶다. 수상의 이유는 그의 노랫말이 문학적이라는 것이다. 미국 대중가요 가수가 부른 노래의 가사에서 문학성을 찾았다는 말에 다른 문학가들의 작품 중 문학성은 그만 못했다는 뜻이냐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일반의 예상을 초월한 매우 파격적인 후보 선정으로 계속 뒷말을 많이 남기게 되었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한국은 세계에서 종이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책의 출판도 상당히 많은 문화 및 출판 상위 국가에 속한다. 책을 많이 출판하고 종이 소비량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문학과 창작 등 문화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 유능한 신진 작가가 출현하고 영어나 외국어로 번역된 창작 소설이 계속 세계 문학계에 등장하고 있다.

한국의 내로라는 시인 가운데 한 분인 구상 시인이 노밸 문학상 후보로 오른 적이 있어 기자는 매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있을 때마다 숨을 죽여 가면서 발표를 기다렸는데 이번 밥 딜런이 수상자로 결정되면서 노벨문학상의 권위가 상당히 이탈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유행곡의 가사는 대부분 사람들의 구미에 맞고 정서를 자극하는 노랫말이 많다. 한국의 유행곡 가사 가운데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노랫말이 좀 많았나.

해방 직후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를 기억하는 어르신이 많을 것이다.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메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남북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굳세어라 금순아'는 6.25 월남 피난민의 애환을 품격 높은 노랫말과 곡조로 표현한 불후의 명곡이라는 평가를 받는 한국 대중가요이다. 이 노래의 탄생 배경을 제대로 알려면 먼저 노랫말에 나오는 금순이라는 이름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많은 이름 중에 하필 금순이일까? 당시 금순이라는 이름이 흔해 작사가가 이 이름으로 월남 피란민을 상징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금순이라는 이름에는 그럴싸한 사연이 있다.

1950년대 초반 '양키시장(현 교동시장)'에서 1.4 후퇴 때 흥남 부두에서 월남한 금순이라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양키시장에서 미군물자를 팔고 있었다.

매일 점심을 먹기 위해 양키시장을 지나다니던 작사자 강사랑은 그녀와 친해졌고...

그녀로부터 '흥남 부두에서 오빠와 헤어진 뒤 영도다리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사연을 듣게 된다. 기자가 인터넷에서 찾은 노랫말의 뒷배경이다.

우리는 왜 못 받나

세계 전쟁 가운데 짧은 기간(3년)내 가장 많은 사상자(3백여만명)를 낸 한국전쟁의 애환을 그린 노랫말이 ‘굳세어라 금순아’다.

이 노랫말은 당시 한국 국민의 답답한 속마음을 가장 잘 표현했으며 전쟁의 참혹함과 이산가족의 슬픔을 노래한 것이다. 노벨상 수상위원회 한림원이 밥 딜런의 노랫말에 문학성을 주었다면 왜 한국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 대상에서 빠졌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유행곡 가사의 노랫말까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었으니 이 상을 만든 노벨은 지하에서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하다. 아마도 뛰어 나오지 싶지 않았겠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유행가수 밥 딜럽의 반전 노랫말이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에 대해 그런 노랫말은 미국 아닌 한국에서 찾았으면 더 힘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떠오른다.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보면서 유행곡도 강대국 영어권에서 불려야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보는 것 같아 뒷맛이 씁쓸하다.

한국의 시인 정지용이 쓴 ‘향수’는 어떤가. 시골의 목가적 정서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미 고인이 되어 노벨문학상 예비 수상자에는 오르지는 못하겠지만 앞으로 한국문학계를 더욱 관심 있게 보아 주었으면 하는 요청을 스웨던 한림원에 하고 싶다.

아직 한국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없다는 것은 상당히 모욕적이다.

한국의 작가들이 왜 노벨문학상을 타지 못하는지를 분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유는 동서양의 다른 가치관을 꼽고 있지만 이미 일본을 비롯한 비영어권 작가들이 수상했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현재 노벨 수상자가 없는 이유로 번역작가 부족을 꼽고 있다.

한국어로 쓴 소설이 아무리 문학성이 커도 문학적 영어로 번역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뜻 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의 것을 스스로 낮게 보려는 마음이 항상 우리 몸 어디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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