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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아버님이 남겨준 유물


나는 나이가 들면서 자주 어린 시절로돌아가곤 한다.

1950년대 60년대에 저는 병원집 딸로서 자랐다.

소독약 냄새 풍기는 앞채가 의원이었고 뒤채가 살림집이었다.

그 중간에 큰 마당이 사이에 있었는데 어머님은 과수나무와 꽃들을 많이 심어서 우리들의 정서 형성에 신경을 쓰신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아버님은 수술의였기 때문에 항상 수술을 하셨다. 환자들의 울음소리 때문에 엄마는 신경이 굉장히 많이 날카로워 지셨던 것 같았다. 의학 도구가 낙후된 상황에서 수술을 해야 하니까 자기 실력에 집중하셨던 것 같았다. 명의라는 명예를 어깨에 짊어지고 생명을 다루어야하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가 나이가 든 지금 아버님이 하신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쿨 눈물이 쏟아진다.

그것도 돈 때문이 아니라 인도주의적인 면으로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시고 돈이 없는 사람은 무료로 해 주셨으니 지금 사람들이 이 글을 읽으면 정신 나간 분이라 생각하거나 거짓말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여학교 때와 대학 다닐 때 속으로 불평이 많았다. 다른 의원들은 환자들께 돈 많이 받아서 이층 삼층으로 병원이 확장되는데 우리 청량리 대륙병원은 환자들이 병원 앞에 줄을 서 있어서도 매년 일층짜리 6.25 전과 같은 건물의 의원 이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엄마가 너무 화가 나서 아버님께 바가지를 끓으시니까 아빠 하시는 말씀이

“애들 입에 삼시밥 들어가지 않는 것 아니잖으냐? 왜 그렇게 돈에 집착하느냐?”

“왜 죽어가는 사람 살려주는데 그러냐 ?”

하시니까 엄마가 다시 하는 말씀이

“웬일로 딴 의원에는 사람들이 안가고 우리 집만 공짜 환자가 오느냐?”

그러시니까

“돈이 없으니까 여기 오는 것 당연 하잖느냐? 당신이 수술하는게 아니고 내가 수술을 하는 것이니까 절대 왈가왈부 하지 마라”

하시기에 엄마는 더 할 말이 없었다 하신다.

6.25가 금방 난 후라 너도 나도 건강 보험이 없었던 가난했던 시절 이였기에 인도주의자 였으며 선비 학자 같으셨던 아버님이 의사로써 의술을 베푸신 것은 인간을 위해 헌신하신 아름다움 이였다.

제 아버지 병원자리가 지금은 청량리 로터리로 롯데 백화점이 되었는데 내가 미국에 온 해에 아버님은 암으로 돌아 가셨고 그 상황 중에서 정부의 고위층에 의해 도시계획에 들어가 버리게 되었다.

나는 한국을 방문하면 꼭 내가 자랐던 청량리에 머문다. 언니가 한 부락 위에서 해동의원을 했기 때문인데 10년여 전에 언니도 돌아가셔서 이제는 자주 안가는 편이다.

전에 내가 한국에 갔을 때 옛날 내방 이었던 곳이 도로가 되여 내가 밝고 지나가게 되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었다.

그때만 해도 청량리 시장의 상인들이 나를 알아보고 신문에 자주 나던 황의사집 무용하는 딸이라며 아버님 신세 지셨다면서 냉면을 사 먹이고 돈을 한뭉큼씩 쥐어주시던 할머님들도 계셨는데 이제는 다 안 보이는걸 보면 세월이 무상함을 느낀다.

몇 년 전 큰올케가 지방으로 집을 옮기면서 “고모 이제는 서울에 친척이 아무도 없게 되니까 이것이 고모에게 유물이 될 거예요”라고 하시면서 아버님이 마지막으로 쓰시던 수술 칼과 옛 주사기와 바늘을 고의 간직하셨다가 나에게 주셨다. 그걸 받을 때 눈시울이 뜨거워지는걸 느끼면서 울음을 꾹 참았다. 아버님의 덕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고 계실 거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올케에게 “고마워요. 이것을 오래 간직하고 있을게요” 라고 하며 수술 칼을 미국으로 가지고 왔다.

미국에 와서 나는 남편에게 “이것이 우리 아버님이 쓰시던 수술 칼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가보다” 하니까 칼을 자세히 보시더니 자기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잘 드려다 보고 하시는 말씀이 “얼마나 많이 사용했으면 손잡는 곳에 쇠가 다 달았다” 고 한다. 그러더니 회사명이 미제인 것을 보고 이회사가 아직도 건재 한다면 편지 한통을 써서 보내겠다고 하였다. “당신회사의 좋은 제품이 한국인 명의에 의하여 많은 생명을 건졌노라고 ….”

얼마 전 내가 서울에 갔을 때 이제는 서울에 내 친척들이 아무도 없어서 내가 완전 이방인이 된 느낌이 들며 그냥 옛날집 주위를 서성거리게 되니까 한국에 가지 않게 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아버님의 노고로 오늘의 나와 나의 자식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훌륭한 조상이 있었다는 것을 후대에 남길 것이라는 자위를 하며 이것이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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