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부다페스트의 밤


언제이던가? 나는 일터로 가기 위해 안개가 짙게 끼인 새벽 길을 운전을 하면서 친구가 해준 음악 시디(C.D)를 듣고 있었다. 음악적 취향이 같아서 인지 처음부터 나오는 음악들이 모두 다 맘에 들었다. 그런데 망치에 머리를 한대 얻어 맞은 듯 갑자기 가슴이 턱 막히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제목도 모르고 들었던 그 음악은 영화 Gloomy Sunday(우울한 일요일)의 주제곡이었다. 그날 이후로부터 이 음악과 부다페스트에 대한 동경은 젖은 낙엽처럼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10월이 저물어 가며 가을이 깊어지자 나는 폴란드, 체코를 들려 늘 그리워하던 부다페스트에 다녀왔다. 남한보다 약간 작은 나라인 헝가리, 아시아계 유목민족인 머저르족(Magyar)이 조상이라서 그런지 어딘가 약간은 동양적 분위기를 풍기는 동그란 얼굴의 여성들, 파프리카와 어우러진 굴라쉬 슾(Gulashy)등이 인상적이었다. 헝가리를 유럽의 진주라고 한다지만 지형적 특색 때문에 수 많은 외부의 침략을 받은 한의 역사가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가장 야경이 아름답다는 부다페스트, 수 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흐르고 있는 다뉴브강 위로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세체니 다리(Széchenyi Lánchíd, 1849)가 황금색으로 빛을 발하며 서 있다.

부다와 페스트가 다뉴브 강을 사이에 두고 배를 타야만 서로 왕래를 할 수 있었다는데 세체니 이슈트반이란 사람이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도 기상 악화 때문에 배가 뜨지 못하자 한을 품고 다리를 건설했다고 한다. 효심으로 시작한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 위에 떠 있는 다리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물로 자리를 잡았다. 특히 밤이 되면 황금색으로, 때론 보랏빛으로 다리가 빛나는데 눈부신 야경으로 많은 여행객들을 잠을 못 이루게 한다..

우울한 일요일

내가 흘려보낸 그림자들과 함께/내 마음은 모든 것을 끝내려 하네

곧 촛불의 기도가 다가올꺼야/그러나 아무도 눈물 흘리지 않기를

어두운 그림자 외로움에 흐느끼고/눈을 감고 당신은 먼저 떠나갔네/

하지만 당신은 잠들고 난 기다리네/천사들에게 내 자릴 남겨달라고 전해줘요/

그 많은 일요일에 어둠속에 홀로/어둠과 함께 가네/촛불이 타듯 빛나는 /

눈동자들/눈물을 거둬요. 내 짐은 가벼워요/한숨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요/

어둠의 땅에서 난 배회해요/우울한 일요일

세체니 다리 하면 <Gloomy Sunday>란 영화를 통해서 더욱 유명해 졌다. 이 영화는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유럽의 암울한 상황과, 히틀러의 나치즘에 대한 충격과 인간 존엄성 말살에 대한 공포과 절망 속에서 한 여자를 사랑했던 3남자의 이야기가 주제곡인 <Gloomy Sunday>와 함께 전개된다..

시대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부다페스트. 유태인인 자보 라즐로가 경영하는 식당에 안드라스란 피아니스트가 오게 되는데 라즐로의 연인인 일로나는 안드라스에게도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안드라스 역시 일로나를 사랑하게 되면서 셋은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된다. 안드라스는 그녀를 위해 <gloomy Sunday, 원곡은 세레시 레줴,Seress Rezs"o>가 1933년에 발표함>를 작곡하게 되는데 이 음악은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더불어 자보 식당은 명소가 된다. 그러나 이 음악을 듣고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을 하기도 한다. 동시에 자보 식당에 우연히 들렸던 독일인 한스 역시 매력적인 일로나에게 구애를 하지만 거절당한다. 음악 탓인가? 독일인 한스는 심한 상실감에 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하지만 착한 라즐로는 그를 구해준다..

그러나 어느덧 야비한 독일 장교가 되어 나타난 한스. 절대 권력을 가진 자의 힘이란 어떤 것일까? 한스는 안드라스에게 <gloomy Sunday>를 연주하라고 명령하고 안드라스는 권력 앞에서 자신과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존감을 지키고자 연주하기를 거부한다. 위급한 상황에서 결코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던 일로나는 그를 살리기 위해 이 노래를 부르지만 안드라스는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자살을 한다.

또한 라즐로 역시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는데 그를 살려내기 위해 일로나는 한스에게 몸을 주었으나 야비한 한스는 우정도, 약속도 깬 채 라즐로를 개스실로 보내버린다. 라즐로가 끌려가기 전에 한 말이 깊게 마음에 남았다.

"이제 안드라스가 말하고자 했던 이 음악의 뜻을 알 것만 같아..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그 만이 가진 존엄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아. 우리는 상처받고 모욕당해 마지막 남은 자존감을 가지고 끝까지 버티는 거야. 만약 견딜 수 없을 때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나는 거야"

마지막 순간까지 존엄성을 가지고 최대한 견디는 것은 얼만큼일까? 도저히 견디지 못할 상황이면 존엄성을 가진 채로 차라리 세상을 떠나는 것은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다. 머리를 잡초처럼 이리저리 뜯기며 깎인 유태인 여성들의 사진 속에는 그들이 끌려온 날짜와 죽은 날짜가 적혀있었다. 대부분의 그들의 수용소의 삶이란 2달에서 6개월 정도였다. 이 영화가 내내 말하고자 했던 인간의 존엄성이 말살된 그곳에는 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곳에서는 절망과 고통이 비틀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서로 각각 다른 도시였던 부다(Buda)와 페스트(Pest) 사이에 다리가 놓임으로써 부다페스트(Budapest)란 한 개의 도시가 되었듯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사랑과 존엄성이란 다리가 놓여질 수는 없었을까?

50년 만에 자보 식당을 다시 찾은 한스에게 음악의 저주가 내리듯이 일로나는 한스에게 복수를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여운은 오래갔다. 어쩌면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은 수많은 상흔을 겪고도 도도히 흐르고 있는 다뉴브 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elkimsociet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