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


대학에 입학한 일학년 여름방학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대입이라는 무거운 등짐을 지고 억압 받았던 우리에게는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달콤한 휴식이었다.

우리 무리들은 방학이 오기 전부터 이 번 방학에는 어디 가서 무엇을 하며 누구를 만날 것인가를 계획하였다.

고등학교 때에는 같은 학교였기에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대학은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을 했기 때문에 만나기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 난관을 극복하고 자주 뭉쳤다.

그 즈음에 술도 배우고 담배도 나눠 피면서 결속을 다지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가히 조폭 수준이었던 것 같다.

다른 학교 출신인 그와는 그 해 여름 방학때 여행계획을 하면서 만나게 됐다.

그는 이미 K대 법대 2학년으로 학년만 따지면 선배였는데 우리는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서로 말을 놓기로 했다.

거무튀튀한 피부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첫인상이 별로였지만 그는 음악애호가였고 실제로 기타연주와 노래에 거침이 없었다.

우리는 그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영화나 소설이 화제에 오르면 핏대를 세워가며 떠들어 쌌다. 물론 막걸리와 더불어 - - - - -

서로 의견이 대립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지만 그를 계기로 우리는 더욱 친밀감을 느꼈고 굳이 꼬집어 말을 하지 않아도 평생 이대로 같이 가자는 무언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뭉칠 때마다 우리들의 화제 중에 가장 뜨거운 소재는 단연 여학생 이야기였다.

그 얘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들어도 들어도 실증이 나지 않았다.

누구 하나 여자 친구가 생기기라도 하면 우리는 그를 놀리면서도 한 편으로는 한 없이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혹 친구는 군에 사병으로 입대를 하고 누구는 장교로 임관하고 그렇게 병역을 마친 우리들은 또 몇년 만에 다시 만나서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목청을 돋우며 노래도 하고 춤도 추었다.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졌지만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인연은 미국에 와서까지 계속되었다.

20대 초반에 만나서 62세까지 였으니 거반 40년 우정이 이어져 온 셈이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뇌졸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큰일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표현을 종종한다.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러나 그의 사망 소식을 듣고 나서야 아하 이 게 바로 그런 거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고 나는 한동안 멍- 한 상태로 지냈다.

뭘해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평생 같이 갈 친구라고 믿었기 때문에 내 삶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그 허전함을 달랠 수 없었다.

그가 떠난지 10년이 다 돼 온다.

금년 겨울에는 유난히 비가 많이 왔다. 지난 몇년 동안 가물었던 걸 생각하면 단비임에 틀림 없다.

빗줄기가 창을 두드릴 때면 구수한 미소를 짓던 그의 얼굴이 떠오른다.

물기를 머금은 뒷동산에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

섬강

버드나무 저 넘어 한참 동안 바라보니

안개 뚫고 손님 몇 분이 다가오누나

작은 마을 적시며 봄비 오는데

노 젓는 부드러운 소리 푸른 물살 가르네

함께 묵을 곳은 산사가 제격이고

호젓한 약속은 낚시터가 좋겠네

내일 아침엘랑 꽃배를 이끌고

남포에서 꽃구경하고 돌아오리라. (정범조)

그 옛날 우리는 어둠이 슬금슬금 퍼지는 선창가 포구에서 막걸리를 나눠 마신 적이 있다.

빗줄기 저 편에서 금방이라도 그가 손을 흔들며 나타날 것 같다.

그가 물안개를 뚫고 나를 찾아온다면 그를 데리고 야생화가 핀 뒷동산으로 가서 꽃구경을 하고 저 아래 포구에 가서 아껴 두었던 좋은 술을 한잔 하고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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