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소금꽃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대학 갈 때 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으니까 우선 좀 놀자.

우리는 등산클럽을 만들어서 산으로 들로 쏘다니기 시작했다.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를 정도로 신나는 일학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얼마가 됐을까. 드디어 중간 고사 시험날이 다가왔다. 무감독 시험이라고 했다.

이렇게 저렇게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체험하는 무감독 시험은 어떤 느낌일까. 나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긴장하고 있었다.

책과 노트를 물리고 우리는 선생님을, 아니 시험 문제를 기다렸다.

드르륵 - - - -

교실 문이 열리고 물리 선생님이 시험지 뭉치를 안고 들어섰다. 아무 말도 없이 교탁으로 다가선 선생님은 각 줄의 맨 앞에 앉아있는 학생에게 시험지를 나눠주고 뒤로 돌리라고 했다.

뒷줄까지 시험지가 도달한 것을 확인한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드르륵 - - - 교실 문을 열고 사라졌다.

잠시 멍-했다.

감독이 없는 시험, 그래도 처음 치르는 무감독 시험이니 뭐라고 한 말씀 쯤은 있을 줄 알았다.

흠칫 당황했던 우리는 곧바로 마음을 추스리고 시험에 몰두했다.

시험시간 내내 우리는 머리를 함부로 들 수도, 고개를 좌우로 마음대로 돌릴 수도 없었다.

왠지 뒷통수가 근질근질했다.

시험이 끝난 다음 우리는 뭔가 해냈다는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무감독 시험과의 첫 만남 치고는 좀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우리도 선생님처럼 뭐 특별한 것도 없는 관행으로 고등학교 3년 내내 그렇게 시험을 치렀다.

외부에서는 무감독 시험이란게 무슨 대단한 것 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에 지나지 않았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습관이 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고 또 사회에 진출 하면서 우리는 무감독 시험으로 훈련된 '양심'이라는 문제 때문에 많은 '불이익'을 당한 적도 있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경험도 하게 된다.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적당히 '기름칠'을 하면 훨씬 쉽게 갈 수 있는 길도 느릿느릿 갈 수 밖에 없었다. 무감독 시험으로 당하는 '폐해'였다.

평생을 일선 교사로 은퇴한 친구가 있다. 어디나 조직사회라면 비슷하겠지만 년차가 차오르면 대개 승진, 승급을 하게 되는게 보통인데 그는 도무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다른 동기들은 교감, 교장, 혹은 대학 교수로 진출을 하는데도 그는 만년 교사였다.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볼 때는 답답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권했다.

시험을 쳐서 너도 좀 '높은 자리'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웬일인지 마침내 그가 고집을 꺾고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을 먹었다.

시험이라면 무감독 시험 밖에 모르는 그에게 그 시험장은 완전히 딴 나라 이야기였다.

감독이 버티고 있고 수험생들은 서로 '협동'하며 시험을 치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험이라면 시험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그는 벌떡 일어나 시험장을 떠났다.

그가 진급을 못하고 일선 교사로 은퇴하게된 소이연이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의 교훈은 '소금과 등대'였다. 썩어가는 사회에 나가서 소금의 역할을 하라, 어둔 사회를 밝히는 등대가 되라는 의미였다.

모자에는 정 육각형의 소금 결정체를 쌓아서 만든 등대가 도안되어 있었다.

내 삶이 그 동안 소금과 등대의 역할을 감당했다고는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그 친구는 묵묵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며 수 많은 또 다른 소금을 생산하는 교사의 직분을 감당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나는 그를 '소금꽃'이라고 부른다.


Hyundae News USA   (415)515-1163  hdnewsusa@gmail.com   P.O. Box 4161 Oakland CA 94614-4161
                                                                                                                           ©Hyundae News US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