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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 대통령의 ‘뼈아픈 실수’로 평가 받고 있다”


<EXCLUSION(THE PRESIDIO’S ROLE IN WORLD WAR 11) JAPANESE AMERICAN INCARCERATION>

제2차 대전 중 미국 거주 일본인 집단 강제 수용 재조명 프레시디오 오피서 클럽 갤러리에서 일본인 사진전 전시

4월 1일 부터 1년 동안 전시

샌프란시스코 Presidio Trust 주최EXCLUSION(THE PRESIDIO’S ROLE IN WORLD WAR 11) JAPANESE AMERICAN INCARCERRATION 전시회가 지난 4월 1년 부터 1년 동안 프레시디오 오피서 클럽 내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회 개최는 Presidio Trust, National Japanese American Historical Society(NJAHS) 그리고 Fred Korematsu Institute가 협력했다. 이번 행사의 촛점은 재미 일본인들에게 큰 아품을 안겼던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 사건이다. 대통령령 9076호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하와이 진주만이 있는 미국의 태평양 함대를 폭격했다. 그 3개월 후인 1942년 2월 19일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통령령 9076호’를 발령했다. 일본계 미국인들의 시민권을 유보하고 전쟁 기간 동안 군사적 제한구역을 지정해 미국에 대한 배신행위나 불순한 의도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누구든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육군 장관에게 준 것이다. 그해 3월21일 미국 의회는 일본계 미국인들을 서부 해안지역에서 추방할 수 있도록 인가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죄 없는 일본계 미국인 11만 명이 영장이나 심문 없이 체포돼 재산을 몰수당하고 미국 내 10개의 격리수용소에서 3년 동안 억류당했다. 서부지역에 살던 일본인들을 애리조나, 아칸소, 콜로라도, 아이다호, 유타, 와이오밍주 등 중부지역의 수용소로 이동시키고 일부는 캘리포니아주의 수용소에 구금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프리시디오에 위치한 육군 서부지역방위본부(4군단)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지역을 책임지고 있던 존 드윗 장군은 의회 청문회에서 “일본인들은 미국 시민권 보유 여부와 상관없이 위험한 존재이며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 까지 결코 안심할 수 없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아이로니하게 강제수용을 전후해 일본계 미국인들의 태업 또는 간첩행위가 입증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후일 역사가들은 ‘12만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뼈아픈 실수라고 평가했다. 감옥과 거의 차이 없어 일본인들은 1세, 2세 가릴 것 없이 캘리포니아 내륙, 민가에서 멀리 떨어진 황야나 사막 지대의 ‘재정착 수용소’에 강제로 격리되었다. 높은 철조망에 둘러싸인 수용소 주변은 무장 군인들이 탈출을 막기 위하여 밤낮을 지켰다. 이런 수용소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등 서부 지역에 열 군데나 지어졌으며, 강제로 억류된 일본인들은 10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강제 수용소에서 이들의 생활은 매우 열악했었다고 한다. 수용소의 생활은 혹독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한 어려움을 참아야 했다. 시설은 조악하고 불편하였다. 간이침대, 담요 몇 장, 간단한 식기구 그리고 천장에 달린 전구 하나가 그들에게 지급된 물품의 전부였다. 기름종이를 둘러 비바람을 막은 막사에선 한 방에 여러 가족이 서로 등을 비비며 지내야 했다. 하수도나 화장실 시설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 음식 또한 수준 이하였다. 최소한의 의료 진료만이 제공되었다. 사실상 수용소의 시설은 감옥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강제 수용소에 감금된 일본인들은 3분의 2 이상이 미국 시민권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들 중 많은 수는 어린이였다.

수용자들은 철저하게 감금되어 살았으며, 몇몇 가족들은 강제로 서로 떨어져야만 했어요.

악조건과 스트레스로 인한 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다. 대통령 사과와 배상금 지급

1945년 1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강제 수용조치는 인종차별에서 비롯되었다는 대법원의 위헌 판결로 끝이 나게 된다. 대통령령은 1945년 1월에 폐지되어 일본인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대부분은 미국을 떠나는 편을 선택했다.

이후 40여 년간 일본 정부와 강제 수용 피해자들은 미국의 사과와 배상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가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1988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수용자 중 살아 남은 이들(그들 중 대다수가

모든 것을 잃었다)에게 각각2만 달러를 보상해 주겠다는 법령에 서명했다. 미국 정부는 1990년 공식으로 사과하고 16억 달러를 배상금으로 지급했다.

이번 오프닝 행사중 패널 디스커션에는 역사가 Stephen Payne, USC senior lecture Richard Reeve 교수, 일본인 Fred Korematsu씨가 미국정부를 상대로 제2차세계대전 중 수용소 구금을 반대한 소송에서 충격적인 승리를 한 법무팀 Don Tamaki 시민변호사가 참석해 불법 미국 거주 일본인 집단 강제 수용 사건의 역사성과 군사적 상황, 헙법위반에 관한 소견이 발표 되었으며 질의 응답시간도 가졌다. 제2차 대전 중 불법 미국 거주 일본인 집단 강제 수용 사건은 철저한 인종차별적인 행위였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미국의 법치주의에 정면 배치되는 미국내 소수민족에게 자행된 핍박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건으로 미국인들의 동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보여 주는 인권유린의 대표적인 단면이었다.

사진1: 본지 김동열 발행인(왼쪽)이 프레시디오 헤리티지 프로그램 책임자 Eric Brandon Blind 디렉터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2: 오프닝 행사중 패널 디스커션에 참석한 역사가 Stephen Payne, Don Tamaki 시민변호사, USC senior lecture Richard Reeve 교수, 진행자(왼쪽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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