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개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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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제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자들이 하나같이 적폐청산을 약속하고 있다. 적폐란 시민들이 수용하고 익숙해져서 습관화된 폐습들로서, 오랫동안 누적되다가 사회질서를 교란시키는 요인들이다. 그 사회교란을 아노미(anomie)라고 부르는 그리스에서는 2015년 부정부패로 국가부도에 직면했었다. 그럼으로 대선후보들이 공약하는 적폐청산은 당연하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새것을 선망하는 속성이 있기에 개혁은 늘 가능하다. 그러나 후보들이 꿈꾸는 공약처럼 개혁은 그렇게 용의하지만은 않다. 옛것과 새것이 대치되는 과정에서 여러 충돌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개혁자에게는 최소한 다음 셋이 불가피하다. 이 셋을 모르고 공약에만 현혹되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면 우리는 또다시 정부를 비판하고 국가원수를 욕하는 것으로서 애국하게 되는, 누워서 하늘을 향해 침 뱉는 유권자가 된다.

1. 결사적인 각오: 역사에 기록된 개혁자들은 사리와 죽음까지 마다한, 보기 드물게 헌신한 사람들이다. 노예제도를 개혁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링컨은 56세에, 그리고 인종차별에 의한 사회갈등을 완화시킨 미국의 침례교회목사는 39세에 사살 당했다. 한반도에도 조선중기의 명현 정치가 이이는 임진왜란 20년 전 10만 양병을 비롯한 사회개혁을 주장하다가 동인의 탄핵을 받았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영의정 김홍집은 주변국들이 한반도를 도사렸던 과도기에 반상제도의 철폐와 노비매매금지를 시작으로 소학교설립, 연호, 단발, 양복착용 등등의 3차에 걸친 일련의 개화개혁을 추진하다가 광화문에서 피살되어 54세의 한 삶을 마감했다. 2014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파키스탄의 17세 소녀 마라라(Malala Yousafzai)는 교육에 대한 이슬람교의 남녀차별을 최대 사회악으로 여기고, 결사적인 시민운동을 하다가 무장군인의 총에 맞아 중상을 입었다.

2. 시민참여의 절대성: 1961년 군사정병으로 대통령이 된 박정희는 집권 18년간 열정적인 시민참여가 있었기에 두 종류의 개혁(제도, 의식)을 동시에 단행함으로서 혼란기의 아노미한국을 오늘과 같은 선진산업국가의 세계대열에 서게 했다. 시장경제정책을 기본으로 민간기업의 참여를 통해 산업기반을 구축하여 중공업을 육성하는 한편 의식개혁으로 발족한 재건국민운동은 5개 실천요강을 만들어 9년간 관료적인 일방하행(up-down)식으로 추진하다가 실패하고, 1970년부터는 자율적인 상행(bottom-up)식 새마을사업으로 침체했던 농어촌이 스스로 탈바꿈함으로서 자아실현의 자부심을 갖게 했다.

새마을사업을 정가에서는 박정희의 장기집권의 도구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한국의 자립의식을 출산한 새마을운동은 유신체제가 아니면 불가능했다고 강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배경이 어떠하던 군인출신 대통령 박정희는 풍랑의 혼란에 처해 있었던 오합지중의 민심을 수습하고, 시장경제의 기틀을 만들면서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선전독재(benevolent despot)적인 개혁자임에 틀림이 없다.

시민참여의 절대성은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바있는 “제2건국운동”에서도 경험했다. 대통령 자문기구로서 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를 새롭게 설치하고, 년 30억원 예산으로 부정부패추방과 국민화합을 포함한 5대 개혁운동을 시작했으나, 결실이 없다는 이유로 2003년에 해산되고 말았다.

3. 시민의 열망: 노조천국이라는 영국의 고질병을 치유한 대처수상에게는 노조개혁을 열망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집권 11년 간 5차례에 걸친 노사관계법을 제정하여 노조의 절대파워를 무력화함으로 유연성이 높은 노동시장을 만들어 시장경제를 재건한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한국의 여성대통령 박근혜는 노동개혁 4개 법안을 끈 질게 추진하다가, 유연적인 노동시장은 고사하고 민주노총의 정치세력이 주도한 촛불시위와 이를 동조 선동하는 노조언론들의 온갖 욕설과 수모를 받다가 2017년에 탄핵을 당했다.

한국아노미의 근원이 사회엘리트의 부정부패라고 고심해오던 박근혜는 탄핵에 더하여, 자신이 오랫동안 추구하여 입법화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과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김영란법이라고도 알려진 그 법을 그토록 추진한 본인이 13가지의 부정청탁에 개입되었다는 것은 자기가 들어갈 무덤을 그간 애써서 판 격이 된다. 개혁자 박근혜가 과연 두 얼굴을 지녔는지는 후세의 개혁자들이 풀어야할 세계적이고 역사적인 숙제가 아닌가 싶다.

한국의 고질적인 뇌물문화의 개혁을 위해 2015년에 입법화된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자는 국회, 헌법재판소, 법원, 언론기관 등의 엘리트들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한 400만이라고 한다. 어쩌면 그들은 반상제도를 굳게 지켜서 부귀영화를 누렸던 조선사회를 통치한 양반들처럼, 부정청탁이나 금품수수에 익숙해진 기득권자들인지 모른다. 조선의 엘리트는 조랑말 한 마리의 절반 값으로 노비를 사고팔면서 신분제도를 500년간 고수한 학식과 윤리로 무장한 사대부 선비들이었다. 그들에게는 부정청탁에 소요되는 금품과 권력이 있기에 가문의 존속을 위해서는 뇌물거래는 매우 이상적인 치부 수단이었을 것이다. 그 긴 세월 개혁을 무시하고 만든 그들의 나라 조선은,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성공하려면 좋은 친구가 있어야하고 더 성공하려면 목숨을 빼앗아갈 만한 원수가 있어야한다는 속담이 교훈이 되어, 목숨과 뇌물을 마다한 개혁자가 다음 한국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