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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파


그는 계집애 같이 생겼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는 생김새처럼 늘 얌전했다. 그와는 한 반이었지만 앞쪽에 자리했기 때문에 뒷자리에 있는 나하고는 어울릴 일이 별로 없었다. 일 년 동안 말을 섞은 적은 한 두번이 있을까 말까였다. 그나마도 그저 단답형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대화였다.

나도 그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그도 나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고 3 말년 무렵, 대학 입학 관계로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 우리는 좀처럼 자신의 속내를 들어내지 않았다. 자연히 누가 어느 대학에 진학하는가를 서로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물처럼 흐르는 법. 때가 되니까 누구는 어느 대학 무슨과에 원서를 넣었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해서는 굳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저절로 알게 되었다.

K대 ‘철학과’를 지원했다는 것이다. 철학과?

나는 철학서적을 몇 권 읽어 봤지만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구는 철학이 어렵다고 하고 누구는 아주 쉬운게 철학이라고 하지만 나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런데 그가 철학과에 원서를 넣었다는 것이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 다른 학교인 그와는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어느 날 밤, 통학하는 기차에서 그를 만났다. 덜컹 거리는 기차 안의 조명은 희미했지만 불콰한 그의 얼굴을 알아보기에는 어렵지 않았다.

막걸리로 유명한 그 학교는 학생 전체를 막걸리 매니어로 몰고가는듯한 분위기였다.

다시 말해서 막걸리로 유명한 그 대학의 철학과 학생이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거나한 모습으로 조명이 희미한 열차에 타고 있었다는 말이다.

무리들과 함께 자리를 잡은 그는 대뜸 입에 담기 어려운 험한 말을 마구 토해내기 시작했다. 사자후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변한 것이다. 아니, 원래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치 억압 되었던 용수철이 제어장치를 풀고 튀어 오르는 탄력처럼 무시무시한 모습이었다. 폭력조직의 보스가 졸개들을 대상으로 단죄하는 것 같은 무게가 실려있었다.

술 취한 사람이 쏟아낸 토사물 보다 더 어지러운 그의 폭력적 언어들의 대상은 ‘사회 전반에 걸친 비리’와 ‘위선’이었다.

옆자리에 있던 나는 못들은 척 하면서 그의 말을 몽땅 주워 담고 있었다. 구구절절 다 옳은 말이다.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며칠 후 다시 열차에서 그를 만났다. 나는 왠지 그에게 친밀감이 들어서 어깨를 툭 치며 접근했다. 뭐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엊그제 너의 말에 공감한다는 의미였다. 힐끗 나를 한 번 쳐다본 그는 보일듯 말듯한 미소를 잠간 띄었다가 금방 지웠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보아왔던 그런 얌전힌 모습이었다. 그 도 아무 말이 없었고 나도 뭐라고 딱이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 것 만으로도 우리는 그 날 충분한 대화를 나눈 것 같았다. 그리고는 그만이었다.

시간이 흘러 2학년이 되었을 때 통학열차에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알고보니 군에 입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사회 전반에 걸쳐 가슴 속에 응어리가 멍울져 있는 그가 군생활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리고 다시 몇 년이 흘렀다. 점점 그의 기억이 희미해져 갈 무렵, 바람결에 한 조각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산사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나는 흠칫 놀랐지만 금방 평정을 찾았다. 울분을 삭이려 그런 모양이군. 그라면 능히 그럴 수 있을 거라는게 내 판단이었다.

나는 산사에서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억누르며 철학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을 그려봤다.

그리고 또 이러구러 세월이 흘렀다. 또 다른 소문이 들렸다. 그 전에 있던 산사에서 더 깊은 산사로 옮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번에는 몸이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 뒤 따랐다. 암이라고했다. 그 즈음에는 이미 친구들 하고도 연락이 두절됐고 가족 만이 그의 곁을 지킨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그의 부음이 날아 들었다.

지금도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의 ‘괴퍅’한 성격이 늘 화제에 오르지만 왜 그가 그런 험한 말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

그의 기행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것인가, 왜, 누가 그를 그렇게 몸에 암세포가 침투할 정도로 켜켜이 스트레스를 쌓아 주었는가.

그의 언행을 분석하고 해명하기에는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아까 부엌에서 양파를 깠다. 알몸으로 만든 후에 반으로 뚝 잘랐다.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양파는 두 동강이 났다. 뭔가 먹음직스러운 과육이 있을 것 같던 양파는 ‘독’을 뿜어냈다.

내 눈에는 마치 슬픈 이별을 하고난 사람처럼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웬 독이 이리 심하담. 혹시 그 독은 한겨울 언땅에서 자양분을 흡수하면서 말로는 할 수 없었던 어떤 번민이 응축된 결과물은 아니었을까. 굳이 뭔가를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했던 대로 양파의 속은 없는듯 있고 있는듯 없이 켜켜이 둘러 싸여 있었다.

나는 양파의 독을 분석하고 해명하지 못한다. 마치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철학도처럼.

다만 죽음으로까지 몰고갈 정도로 응집되었던 그의 불만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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