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화장에 목숨을 건다


모든 사람은 아름답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늙고 병들기 마련이다. 젊었을 때는 그렇게 아름답던 모습도 세월이 흐르면 그 예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얼굴에는 골짜기 같은 주름살만 흉하게 패이고 배는 임신한 여인 처럼 불뚝 나온 자신의 몸을 보며 탄식하는 소리를 주변에서 귀가 따갑게 듣는다.

특히 여자들은 건강하게 오래 살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예쁜 얼굴을 가지고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건강관리하는 여성들을 보면 눈물겹고 안스럽기도 하다. 오늘날 처럼 맛있고 건강에 좋은 약이며 음식이 사방에 깔려 있는데도 보고 못 먹는 여자들, 옆에서 입맛 다시며 신나게 먹는 것을 보면 약이 오른다고 하는데, 아름다움을 관리하려면 할 수 없겠다.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방법도 나이에 따라 바꾸어지는 것 같다.

20대는 얼굴의 피부도 곱고 생기가 돌기 때문에 얼굴 치장보다 몸치장에 신경쓰다 30대에 접어들면 얼굴 피부도 거칠어지고 탄력성도 예전 같지 않아 화장에 신경을 집중하다 40대가 되면 옛날에 화장하던 것에 성이 차지않아 좀더 과감하게 배우들 처럼 분장한다. 50대가 되면 분장하던 것도 마음이 들지 않아 찌그러진 입가의 주름살을 없애기 위하여 화장품으로 요상하게 변장하다 60대가 되면 흙탕 길을 시멘트로 포장하는 것 처럼 얼굴을 확 바꾸어 보지만 흘러간 세월의 흔적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70대에 이르면 자신의 늙고 추한 얼굴을 보고 공연히 아무것도 아닌것에 열을 올리며 신경질만 늘게 된다. 그 때 옆에서 조금만 부추기면 요즘 유행하는 별별 주사로 주름 제거한다고 성형외과를 드나들게 된다. 성형수술로 신세 망친 그 여자 보지 않았는가. 지금은 그곳에서 무엇을 생각할까.

세월이 흐르면 누구나 늙음과 동시에 정신적 육체적 변화를 맞게 되는데 그 때 그 변화를 잘 받아 들이지 못한다던지 변화에 역행하려고 맞설 때는 커다란 불행이 올 수도 있다. 변화를 잘 받아들이는 것도 지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그 변화를 잘 받아들이지 못해 우울증이나 자학 증세로 고통 받는 여자들을 종종 보게된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주변에서 발생한 K여인의 우울증으로 불행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알리고 그런 피해가 발생하지 말아야겠다는 뜻에서 그 사연을 간단히 소개한다.

몇년 전 새크라멘토 어느 가정집에 서울에서 유명한 성형외과 의사가 왔다는 소식이 동네에 나돌았다. 이 소식을 여자들이 그대로 넘길 수 있겠는가. 예쁜 것에 환장한 여자들이 그 의사에게서 주름 제거 주사, 요즘 흔히 말하는 보톡스를 맞았는데 그 후 부작용이 생겨 서울에 가서 피부 이식수술이나 다른 치료를 받고 온 여자들이 많아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 중 K여인은 피부에 큰 상처와 휴유증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70도 안된 나이에 불행해진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온 의사는 돌팔이었고 그 집 세입자는 짜고 치는 고스톱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여자들이 예뻐지려고 애를 쓰는 것은 여성의 본능일 수도 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지나친 성형으로 K여인과 같은 경우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여자들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예쁘게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도 하나의 예의다. 하지만 지나친 위장술로 타인이 볼 때는 볼상사나워질 수도 있다.

참다운 아름다움이란 인위적 미가 아니라 자연적인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그 아름다움은 시간이 흘러도 나이가 들어도 오랫동안 얼굴 속에 남는다.

우리 모두 유한적인 공간을 초월하고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미를 간직하자. 그 아름다움은 성형수술이나 화장술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아름다운 마음과 언행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의 옛 조상들이 말하기를 예쁜 여자는 남자를 1년 즐겁게 하고 마음 착한 여자는 3년을 기쁘게 하고 지혜있는 아내는 3대를 흥하게 한다고 했다. 오늘날 남자들과 그리고 한국 사회는 너무나 여성미모지상주의로 여자들을 괴롭힌다. 여성들에게 미를 강요하는 남성들 그들은 여성 학대자들이라는 것을 알고 진정으로 여자를 아낀다면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고 말하고 위로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