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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같은 한인들


지난 주 행사 준비 관계로 몬트레이에 다녀왔다. 메모리얼데이 연휴를 앞둔 탓인지 교통체증이 심했다. 자동차가 몬트레이 베이 1번 도로에 들어서니 채소밭 검은 흙 고랑을 따라 상추와 다양한 채소가 자라고 있는 풍경이 전개됐다. 마음 구석에 있던 짜증은 날아가고 채소 밭으로 이어진 전원의 풍경에서 생동감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백건우 피아노 연주회 이후 처음이니 상당한 시간이 지났다. 몬트레이는 언제 와도 기분이 좋은 곳이다. 약간의 도시와 농촌이 잘 섞이고 망망한 바다와 바람이 있어 언제나 풍요로움과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몬트레이를 생각하면 역시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죤 스타인벡 아니겠나. 이 지역 살리나스에서 태어난 작가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불멸의 이름을 남겼다. 죤 스타인벡 죤 스타인벡에 관한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902년에 태어나 1968년에 사망했으니 66년 동안 살았다. 지금에서 보면 장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나 그 당시의 기준으로 보면 단명도 아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졸업을 못하고 뉴욕으로 가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기자는 가능한 사물을 객관성으로 보아야 하고 자기 주관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데 그는 자기 주관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기사를 쓰다보니 결국 해고당하고 만다. 그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사회 부조리를 알게 되고 이에 대한 울분도 갖기 시작했다. 재주가 많았던 그는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후일 ‘분노의 포도’라는 대작을 발표하기 까지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사회의 반항아로 비쳐진 그는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든 적도 있었으며 그가 명성을 얻어 가면서 당시 후버 FBI국장은 그는 ‘감시인물’에 올려놓고 감시의 대상으로분류했다. 젊은 시절 경제대공항을 겪은 그에게 미국의 사회는 자본가의 횡포와 이에 맞선 노동자의 희생으로 보였다. 당시 미국이라는 거대한 정부는 자본가들의 편에 서서 노동자를 억압하고 그들을 대변하는 집단으로 비쳐졌다.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분노는 ‘분노의 포도’에서 주인공이 보안관을 살해하는 줄거리에 등장한다. 그가 죽은 후에도 아직까지 그의 생가가 보호 되고 정신이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일생 사회의 부조리에 반대하고 정의의 편에서 소외받고 억울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혼을 3번씩이나 할 만큼 가정생활도 순탄치는 않았다. 그가 죽은 곳은 고향 살리나스가 아닌 뉴욕이지만 캘리포니아의 농촌 노동자와 이주민들의 가슴에는 자기들의 분노를 이해하고 자기들을 보듬어 주려고 노력했던 죤 스타인벡을 그리워하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언제나 함께할 것이다. 5천의 보석 같은 한인들 몬트레이 베이 지역 한인 인구는 약 5천명 내외로 알려져 있다. 아직 확실치 않으나 지역 한인들 사이에선 대충 그정도로 추산 되고 있다. 그런데 실제 몬트레이 한인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5만명 인구의 한인사회와 큰 다름이 없다. 지난 수년 동안 지속해오고 있는 상공인 단체의 장학금 모금 사업만 보아도 그렇다. 해마다 이 단체는 지역 한인 청소년 및 대학생들에게 전달할 장학금 모금 골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한국학교와 문화원은 이지역에서 빠트릴 수 없는 봉사 및 교육기관이다. 노인회와 봉사회 중심으로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일도 잘 진행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들을 위하여 스스로 봉사를 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는 않다. 노인들에 대한 책임감과 봉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몬트레이 한인 거주자 5천여 명 한분 한분이 보석처럼 매우 소중한 분들 아니겠나. 한 때 이지역 한인 인구가 2만명이 넘었다. 몬트레이 베이는 관광지와 군사 도시로 알려졌다.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 사단이 있던 곳이다. 미군 감축 계획에 따라 한국에서 철수한 이 사단은 얼마 후 다시 워싱턴 주로 이동했다. 미국 정치인들은 자신이 속한 지역의 경제를 활성화 시키기 위해 손 쉬운 방법으로 군사기지를 빼았는다. 몬트레이 군사기지도 그런 정치인들의 뒷거래로 철수 했다는 이야기가 당시 나왔다. 미군 기지 폐쇄 후 지역 경제는 물론 한인사회도 상단히 위축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타 어느 지역보다 이 지역한인들은 ‘한국인’으로 자부심이 강하고 봉사를 실천해 오고 있다. 그 이유를 한인들의 뚜렷한 정체성과 봉사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여전히 상처는 남아 한인사회도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게 마련이다. 이곳 한인들을 만나보면 다른 지역 한인들처럼 상처가 남아 있다. 이곳 한인사회도 오래 전부터 대립되어 왔다. 그런 대립 관계에는 변명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동지애와 이해가 초기 이민자들 처럼 강했다면 아마 예방도 가능했을 것이다. 앞으로 10년 후에 몬트레이 한인 사회는 많이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들이 여기에 머물지 않고 더 큰 꿈을 찾아 밖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큰 회사가 없고 2세들에게 장래성이 적다 보니 고향에 남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민 1세들의 대를 이어가기 힘든 곳이기도 하다. 그러면 결국 남은 이민1세들이 서로 화합하고 상처를 아물게 하는 수밖에 없다. 화합과 사랑없이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다. 모두 기억하면 좋겠다.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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