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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 음악이 날 울리네


그날 아침 골프장으로 향하는 길, 하늘은 먹장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한바탕 빗줄기를 쏟아부을 것만 같은 기세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가 골프를 하는 동안은 비가 오지 않았다. 천만 다행이었다.

오후 느즈막히 골프를 끝낸 우리는 클럽 하우스에 앉아서 맥주를 한 잔씩 마시기로 했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후두둑 후두둑 빗줄기가 듣기 시작했다.

그 매점은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고 있었는데 날씨가 날씨인 만큼 개점 휴업 상태였다.

손님도 없고 하니 부인은 일찍 퇴근했고 남자 혼자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심심하고 따분할 때 쯤 마침 우리가 들어섰던 것이다.

한 잔씩 마시고 일어나려고 하니까 매점 주인이 우리를 붙잡아 앉히면서 이제부터는 자기가 낼테니 마음 놓고 마시라면서 냉장고에 쟁여 놓았던 맥주를 마구 가져다 테이블에다 옮겨 놓았다.

아마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말동무가 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우리는 못이기는척 주인과 함께 맥주를 까기 시작했다. 한 두어잔 더 마셨을까 했을 때 주인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 쪽으로 갔다.

잠시 뒤에 매점안은 적당하게 울려 퍼지는 음악으로 가득찼다.

클래식 오케스트라 음악이었다. 무슨 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악은 드디어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줄기와 잘 맞아떨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챠이코프스키나 베토벤 중의 하나였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막연한 내 짐작)

약간 취기가 오른 내가 감탄사를 내 뿜었다.

'캬- 음악 좋다!'

매점 주인이 맞장구를 친다.

'좋지?'

'네, 좋아요. ' 그는 나보다 나이가 서넛 위였다.

그 매점은 스포츠 바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방에 텔레비전과 성능 좋은 스피커가 여러개 매달려 있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는 동안 또 몇개의 맥주 깡통이 비워졌다.

주인이 다시 카운터 쪽으로 간다.

이 번에는 마치 맥주 잔에 거품을 머금은 맥주가 가득차는 것처럼 한국 가곡이 홀 안에 가득찼다.

보리밭, 그리고 '국화꽃 져 버린 겨울 뜨락에 - - - -' 로 시작되는 고향의 노래, 누군가 남자 듀엣이 부른 정지용의 향수 등등이 연이어 흘러 나왔다.

산설고 물설은 이국 땅에서 마음 고생하며 살고 있는데 오늘처럼 철철철 빗줄기가 눈물처럼 흐느끼는 저녁이면 이런 노래들이 가슴에 젖어들기 마련이다.

오케스트라가 나올 때 까지만해도 어눌하던 우리들은 어느 정도 주기가 오른 것을 핑게로 매점 주인과 함께 한 뜻이 되어 우리 가곡을 합창하기 시작했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지고 있었고 일몰 시간이 지난 밖은 어둠으로 젖어들었다. 매점은 영업을 끝냈고 그 다음부터는 완전히 우리들 세상이었다.

일송정 푸른 솔은 - - - -

선구자를 막 끝냈을 무렵, 바로 그 때였다.

갑자기 천둥치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매점 문이 벌컥 열렸다. 누군가가 카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가 했는데 이내 폭풍우에 고목나무 부러지듯이 음악이 뚝 부러졌다.

매점의 여주인이었다. 그 녀는 푹- 눌러쓴 모자로 자신의 미모와 표정을 감추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녀의 노기를 피부로 익히 느낄 수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란 우리들은 마시다 남은 맥주와 안주를 내팽개쳐둔채 서둘러 매점을 나섰다. 그녀의 성품을 알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남편이 혼자서 주섬주섬 뒷정리를 시작했고 모자를 눌러쓴 여주인은 아직도 분기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문앞에 버티고 서서는 어기적 거리며 뒷정리를 하는 남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쯤에서 나는 그들 부부에 대한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들 부부는 한국에 있을 때 잘 나가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에 있을 때보다 못한 '천한' 직업인 매점을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자는 미모가 상당한 수준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자신이 매점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는듯 했다.

미국에 살면서 내가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한국에 있을 때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어쨌든 - - - - -

날도 저물고 밖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는데 매점문을 닫고 들어와야 할 시간임에도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의아하게 생각한 부인이 다시 가게에 나타난 것이다.

와서 보니 광경이 가관인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모습을 목격한 부인이 앞 뒤를 가늠할 여유도 없이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아직까지 미국생활을 하면서 누적되었던 불만이 마치 뇌성벽력처럼 한꺼번에 터진 모양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음악감상을 취미로 하던 주인 남자는 그 날처럼 촉촉한 날 유난히 고향생각이 났는가 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음악이 생각나는 법, 그는 어질러진 매점을 정리하면서 가슴으로 울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사건' 이 후로 우리는 한 동안 그 골프장을 찾지 않았다.

훗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그 부부는 매점을 정리하고 타주로 이사를 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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