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분자


<문학산책>

나 자랄적에는 회색분자라는 말을 가끔 들으며 자랐다. 정치적 용어 같은 이 단어를 우리는 여기저기 빗대어 가며 쓰고 살았다. 그 당시 이중 간첩 성향도 들고 이중 인격 느낌도 나는 이 말은 상대방을 믿을수 없고 경계해야 할 인물로 보라는 말로 들리었다.

어릴때에는 회색은 나와는 관계가 없는 색으로 나는 그 색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회색 차가 고급스럽게 보이고 회색 옷이 실증도 안나며 아주 세련된 색이라는 걸 알게됐다. 싸구려 티셔츠 같은 것은 밝은색 원색들을 사서 입지만 정장이나 늘 들어야 하는 빽을 살때는 회색이나 베이지 같은 전혀 튀지않는 색갈을 산다. 언제 입어도 티가 안나며 남의 눈에도 거스르지 않고 편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격도 이와같이 회색 성격은 모가 나지도 튀지도 않아 안전한것 같다. 그렇지만 내 성격은 흑과 백이 분명하게 태어났는지 누가 거스리는 잘못을 하면 그 자리에서 솟아 오르는 분노를 감추지 못해 금방 발각될 뿐만 아니라 관계에도 문제가 생겨 버리기가 일쑤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파도에 둥굴어진 돌들처럼 세월의 풍상에 다듬어지는 내 속사람을 보면서 회색의 색갈을 생각해본다.

옳은 것은 하나도 없이 그르기만한 사람이 있겠는가? 그른것은 하나도 없이 옳기만 한 사람도 있겠는가? 완전히 검은것 같은 사람 속에도 약간의 흰색이 있으며 완전히 흴것 같은 사람 속에도 약간의 검은 마음은 있는 것처럼, 잘못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서 좋은 점도 보이고 다 잘하는것 같은 사람을 볼때도 어느 구석에 완벽치 못한 부분이 보인다. 잘못 했다고 펄펄 뛸 일도 아니고 잘 했다고 엎어질 일도 아닌 중간에 서서 관망하는 성숙한 안목이 필요한 것같다. 또 될수 있는대로 “노” 라는 말을 쓰지말고 “예스”라는 말도 삼가서 써야 할 것같다.

지금은 비평가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촛불이 옳다, 태극기가 옳다, 서로가 죽일듯이 미워하지만 역사는 지나가 봐야 안다. 아무도 지금은 비평 할 수가 없다. 지금은 법만이 옳다고 비평할지라도 후세에 과연 그 법의 결정이 틀렸었다고 할런지 어찌 알겠는가?

나는 하나에 꽂히면 앞만 보고 돌진하는 투우소 같은 성격인데 이제는 좌도 보고 우도 보고 뒤도 보고 아래도 보고 위도 봐야겠다는 마음이든다. 뭉게 구름이 떠도는 하늘, 새떼들이 떠도는 평화로운 하늘, 회색하늘, 그리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그 하늘까지……

회색 하늘이 짙은 날이면 그런 날은 우울하다. 노인들은 삭신이 쑤시고 우울증 환자들은 발병한다. 우울증 환자 옆에 있으면 50% 우울이 전염되고 그 다음 사람은 25% 또 그다음은 그것의 절반이 전염되며 행복한 사람 옆에 있으면 50% 행복하고 차례로 절반씩 줄어든다는 전염이론이 있다.

따라서 회색 분자 같은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착 가라 앉으며 내 속내를 가리게 된다. 전염된 것이다. 어떤 세련된 듯한 매너가 생기며 모두에게 담이 처져 경계태세로 대하게된다.

세상에는 여러 타입의 사람이 있는데 물어보면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 하는 사람, 그리고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다 열어 보이는 사람, 또 아무리 물어봐도 결코 속을 안 들키는 사람 등이 있다. 모두가 다르다. 틀린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란다. 나는 물어 보지도 않는데 다 보이는 타입이다. 아무리 숨겨 보고자 해도 몇분을 못 넘긴다. 그리고 때로는 왜 할 필요 없는 말까지 다 했나 후회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회색분자가 되기는 어려운 성격이다. 그래서 나는 절대 손해 안보는 회색분자가 되고 싶다. 우선 이런 타입은 중립을 잘 지키므로 적이 없다. 너무 깨끗한척 까발리다가 손해보는 일도 안하고 너무 까만척 손가락질 받는 짓도 안한다. 양쪽을 잘 조절해서 알속만 챙긴다. 조절 능력이 뛰어나다. 어차피 인간은 혼자 존재 할 수 없는것, 하양과 까망색깔로 자기주장이 강한것 보다 회색처럼 서로 섞여가며 조화로운 색을 내는게 모두에게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

손녀 한글 학교 교사의 “죽을 일만 아니면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며 살고 싶다” 란 카톡의 머리글이 생각난다. 그렇게만 살수 있다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 회색인간이 되어 모두와 부딧치지 않고 평화롭게 살다 가고싶다.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졸업 -산타클라라 한미노인봉사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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