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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지금 내 나이 70대, 손자, 손녀가 다섯이나 되는 할아버지지만 아직도 나는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가슴 한 쪽이 먹먹하다.

이 세상 모든 자식들이 그렇듯이 나도 이 날 이 때까지 어머니가 퍼주시는 무한대의 사랑을 먹고 살았다. 특히 나는 장남이었기에 더 그랬다.

그 많고 많은 사랑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적지 못한다.

내 어머니는 '위대한 분'이셨다. 그 에 비하면 나는 '죄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는 하늘을 향해 눈물을 뿌렸다.

그 통곡에는 남편을 잃었다는 슬픔 외에도 자식들을 향한 섭섭함도 섞여 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안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는 30년 가까이 노인 아파트에서 혼자 사셨다.

어느 날 가사 도우미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넘어지셨다는 것이다.

가서 보니 혼자 계시기에는 여러가지로 무리다 싶다. 그 날로 내가 사는 집으로 모셔왔다.

'밥 안 먹냐?'

좀 전에 저녁 식사를 마쳤지만 어머니는 반쯤 울상으로 또 밥을 먹자고 하신다.

집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채근을 받아야했다.

한 밤중에 우리 침실에 들어와서는 병원에 가야한다고 나를 흔들어 깨운 적도 있다.

그래도 어떻게 해보자고 힘을 쏟았지만 두 달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형제들과 의논을 했다. 요양원에 모시자.

그렇게해서 어머니는 87세 되는 해 봄에 치매 환자들을 수용하는 요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상태를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나는 어머니가 사시던 아파트 측에 통보를 하고 어머니의 살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부엌에 붙어있는 옷장부터 열었다. 나는 앞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옷 몇가지만 건져 놓고는 '샐베이션 아미'를 불렀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복도에 내 놓은 어머니의 옷뭉치를 거둬갔다. 그 동안 어머니의 몸을 감싸왔던 옷가지들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옷장 속에는 옷 이외에도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어머니는 어려운 세월을 살아오신 분이라 뭣이든지 함부로 버리지 못했다.

둬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선반에도 크고 작은 상자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그 것들은 마치 만원 버스에 사람들이 서로 몸을 비비고 있는 모습 같았다.

침대 밑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이불 홑청과 베개, 한복, 등등이 수십년의 역사를 간직한채 고요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따리들을 열어보는 순간 타임 캡슐 속에 같혀있던 역사가 빛을 보는 것 같았다.

가난한 우리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 놓고 지난 2년간 나는 간간이 일기를 썼다.

어머니가 여기 오신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그저께 아침에 요양원에서 폐렴과 발작증세 때문에 병원으로 보냈는데 브레인을 다시 찍어 보니 스트로크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눈동자는 돌아가는데 말을 하지 못하신다.

병원에서는 호스피스 팀과 연결을 시켜주겠다고 한다.

간호원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간호원은 내가 실망할까봐 여러 번 망설이더니 어렵사리 입을 연다.

글쎄,어려운 질문인데, 한 일주일? 혹 한달? 메이비 투 먼스?

호스피스 팀에서는 그 동안의 경과로 봐서 한 5~7일 정도 더 견디실 수 있을 거 같다고 한다.

그 동안 어머니를 가까이서 보면서 여러가지 안타까운 상황들이 많았지만 울지 않았는데 그러나 이제는 자꾸 눈물이 나네.

전화 벨 소리에 잠이 깼다. 요양원이다. 드디어 가슴 한 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 아침 7시 45분에 영면하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알려진 모양이다.

카카오 톡 음악 동아리에 있는 L군이 E-메일로 음악 한 곡을 부쳐왔다.

'오늘은 모짜르트의 레퀴엠(진혼곡) 라크리모사(슬픔의 날)를 보낸다.

나는 답장을 썼다.

장례식에 앞서 가족들만 입회하는 순서가 있었다.

나는 체온이 식은 어머니의 뺨을 한 번 쓰다듬고는 기도했다.

지난 89년간 살아계신 동안의 삶에 감사했고 지금은 세상의 번민과 육신의 고통에서 해방되어 가장 좋은 곳에 가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또 다시 감사했다.

지금 우리 어머니는 가장 좋은 곳에 계신다.

나는 장례순서를 집전하는 목사에게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 대신에 베토벤의 9 심포니에 나오는 '환희의 합창'을 꼭 넣어 달라고 청했다.

어머니의 관을 땅 아래로 내린 다음 흙을 덮고 나는 조객들과 함께 환희의 합창을 힘차게 불렀다.

'레퀴엠'이 '환희'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제목 '엄마를 부탁해'는 신경숙의 소설 제목을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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