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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맨슨의 죽음


<베이포럼>

찰스 맨슨을 기억하는가.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로 불리던 그가 캘리포니아 주 한 병원에서 83세로 자연사했다. 죽기 1달여 전부터 위장출혈로 입원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그의 죽음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의 엄마는 오하이오주 신시니태에서 매춘부에 알콜중독자였다. 그런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났으니 그의 불행은 태어나면서 시작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라면서 무장강도, 절도 혐의로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그런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이비 교주 생활을 하면서 음악에 심취해 음악계를 기웃거렸다고 한다. 유명 그룹과 인연을 맺으려 노력했던 것으로도 알려졌다. 그렇게 거리에서 전전하던 그가 세계종말을 예언하며 자신을 영국 록밴드 비틀즈의 노래 가사에 등장하는 '헬터 스켈터'(Helter Skelter)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자신의 추종자들과 함께 지난 1969년 8월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집에 쳐들어가 폴란스키의 아내이자 배우인 샤론 테이트를 포함해 5명을 살해했다. 당시 26살의 떠오르는 배우였던 테이트는 임신 8개월째였다. 맨슨 패밀리 일당은 태아만이라도 살려달라는 그의 애원을 무시하고 끔찍한 범행을 저질러 공분을 샀다.

옥중결혼도 맨슨은 1971년 2월 일급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이듬해 캘리포니아 주가 사형제도를 일시 폐지한 덕분에 종신형으로 감형돼 주 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는 복역 후 12차례 가석방을 요청했지만 매번 거부당했다. 맨슨은 두 차례 결혼한 바 있으며, 맨슨 패밀리 멤버를 포함한 여성 3명과의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맨슨의 장남은 후일 아버지의 악명에서 헤어나려 발버둥첬지만 결국 자살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평생의 고통을 벗어난 것이다. 또한 2014년에는 옥중에서 54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하겠다며 결혼허가증을 발급받기도 했지만, 둘의 결혼 전에 허가가 만료돼 무산됐다. 맨슨은 1986년 한 방송 인터뷰에서는 테이트 살인 사건을 언급하며 "성전에서 살인자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아직도 미국에서 '20세기 최악의 살인마'라고도 불린다. 맨슨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이자 훗날 그에 관한 책을 집필한 빈센트 부글리오시는 "맨슨이란 이름은 악마에 대한 메타포(metaphor)가 됐다"고 평했다. AP통신은 그의 짧고 덥수룩한 머리와 수염 난 얼굴, 이마에 새긴 문신(X자였다가 나중에 卍으로 변형) 등의 특징이 미국 범죄사에서 '악마의 전형'처럼 여겨진다고 전했다. 월남전 확대 1960대 초부터 시작된 미국의 월남전 참전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탈출구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 넣었다. 그 동안 유지 되어 왔던 모병제가 폐지되고 강제 병역 의무제로 변경 되었던 것이다. 당시 월남전에는 최고 50여 만명에 가까운 미군이 파경 된 적도 있었다. 세계 제2차대전 이후 최대 해외파병을 한 셈이다. 갑작스런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 엄청난 정치적 혼란시기에 대통령직을 승계한 당시 린든 존슨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의 미군 파병정책을 계속 고수해 월남전은 확대일로에 있었다. 월남전 확대로 인해 미국내 주요 큰 대학에선 반전시위가 연일 거리를 메우고 중무장한 경찰과 극심한 몸싸움으로 미국사회의 여론이 양분 되면서 더욱 황폐화 되어 가고 있었다. 이런 혼란한 시기에 캘리포니아 주에서 자연스럽게 히피문화가 탄생 되면서 맨슨 같은 살인마가 세계종말을 외치며 사이비 교주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히피 문화는 반전운동에 뿌리를 두고 상당한 세력으로 미국 젊은이들을 전쟁혐오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있었다. 그 당시 나온 대표적인 히피 음악이 바로 스캇 맥킨지가 부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그리고 마마스와 파파스가 부른 ‘캘리포니아 드림’ 등 전대미문의 히피노래는 아직도 옛날 사람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향수를 느끼게 한다.

히피문화의 종말 지금 나이 60대 부터 80대 까지가 히피문화세대에 속한다. 히피들은 우선 외관적으로 매우 지저분해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 젊은이들이 병역기피 또는 가출해서 집단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히피들을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젊은 노숙자와 거의 큰 착오는 없을 것이다. 그런 히피들이 주로 샌프란시스코와 버클리 대학을 중심으로 번져 나갔다. 자식이 버클리 대학에 입학해 좋았는데 후일 대학을 포기하고 긴머리로 거리에서 배회하는 히피가 된 것을 발견한 부모들이 통곡하는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서 히피들의 병폐가 크게 사회 문제가 되었다.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는 미국에서 히피들의 이동을 물리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지만 히피가 사회문제로 커지면서 히피문화가 미국의 건국 정신을 좀먹는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과도한 문명발달로 인해 자연 환경이 파괴되고 인간의 감정이 황폐화 되어가는 당시 사회에 만연한 불안감과 함께 사회공동체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챨스 맨슨의 배우 샤론 테이트를 포함해 5명을 살해한 사건은 히피문화의 종말을 부른 것이다. 문명의 피해를 역설적으로 강조하고 인간성의 존중을 주창한 히피문화는 그 순수성을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채 한 살인마의 집단살인 행위로 종말을 재촉한 것이다. 미국 사람들에게 히피가 누구냐고 물으면 챨스 맨슨을 상징적인 인물로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과도한 문명의 발전에 저항하여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순수한 히피의 정신이 보다 논리적인 발전도 하지 못하고 한시대를 혼란에 빠트리려 했던 잘못된 사회풍조의 하나로 운명을 다한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못내 아쉬움을 남겼다.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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