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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난민의 눈물


글 읽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글 쓰는 사람이 자기 자랑을 쓰는 것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자랑할 것도 멊고 앞세울 것도 없어 이번에는 고향을 이북에 두고온 피난민들의 고통을 대변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쓸려고 한다.

나는 지금까지 “피난민의 눈물” 이란 글을 신문, 잡지, 등에 수십번을 썼지만 그 누구도 피난민의 한과 고통을 들어 줄려고 하지도 않고 해결해 주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런 글이라도 써야만이 1월의 답답한 마음을 달랠것 같아 또 쓴다.

나는 1952년 어느 겨울 밤 함경남도 북청군 신포에서 어머니, 두 누님, 두 동생을 두고 아버지와 단둘이 적은 목선을 타고 피난길에 올랐다.

(사람들은 이것을 1.4후퇴라고 쉽게 말하지만 피난민에게는 가장 기억하기 싫은 말이다.)

내가 피난올 때 나이 겨우 10살을 갓 넘은 아이였기 때문에 나는 어디로 가는지, 왜 가족과 헤어져 가는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 손에 끌려 배에 탔다. 내가 탄 배는 몇 달을 바다에서 떠돌다 부산에 도착했다. 당시 부산은 피난민들로 북새통이었고 피난민들의 일부는 먹고 살기 위하여 불법행위를 저지르며 살았다.

아버지와 나는 피난민 수용소에서 살았다. 그 곳은 천장은 사방이 뚤려 있었고 벽의 판자는 엉성하게 붙어있는 창고였기 때문에 피난민들이 겨울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곳이었다.

피난민들은 그 곳에서 볏가마니 한장을 바닥에 깔고 한장은 덮고 겨울을 지내다 보니 어린 아이들, 노약자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동사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도 그 때는 철없는 아이여서 아버지에게 춥다고 울면 아버지는 웃저고리를 펼치고 그 가슴 속살에 나를 감싸 온기를 넣어주면서 조금만 있으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나를 달랬다.

그러나 아버지는 피난생활 10년 만에 세상을 떠나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고향에 갈 수 없지만 너는 꼭 엄마와 누님 동생을 만나 편안하게 살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 휴전이 끝난 60년 넘도록 나는 고향에 가지 못하고 남한에서 또 미국까지 와서 고향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당시 수용소 피난민들은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고 여름에는 전염병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굶주리다 보니 피난민들은 길거리에서 구걸하기도 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훔쳐 먹다 매를 맞기도 했다.

당시 피난민들의 유일한 음식은 미군부대에서 버리는 꿀꿀이 죽이었다. 그 죽을 얻어 먹기 위하여 한나절 기다리다 한 그릇 얻어 먹다보면 죽 속에 휴지, 담배꽁초, 심지어는 쥐 죽은 것까지 나올 때도 있었으나 배곺은 피난민들은 그 죽을 버리지 못하고 죽은 쥐를 버리고 모두 먹었다.

이렇게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아버지는 나를 국민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마칠 수 있게한 덕분에 군대생활도 장교로 복무할 수 있었고 전역 후 고등학교에서 교사로 편안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셨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먹고 사는 것이 나아졌다고 하여도 마음 속에 쌓여있는 생각 때문에 눈물로 지세우는 밤이 더 많았다.

그 눈물은 피난민들만 아는 고통이고 눈물이기 때문에 옆에 있는 사람에게 숨기며 살아야 하는 그 심정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휴전이 끝난 지금도 67년 동안 고향을 북에 두고 온 피난민들은 타향에서 아들이 어머니를, 아내가 남편을, 아버지가 아들을 부르는 소리가 세상을 향해 떠나갈듯 부르며 절규하지만 그누구도 피난민의 억울한 울부짖음을 해결해주는 대변자가 없으니 이런 나라가 세상 어디에 있는가. 우리와 똑 같이 분단된 독일, 월남은 수십년 전 통일되었는데 우리는 왜 지금까지 동족끼리 총을 겨누고 살아야 되는지 저 못난 조상들에게 묻고 싶다. 피난올 때 동안의 소년도 지금은 인생의 끝자락에 도달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그 한을 품고 살아야하니 이런 원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옛 사람들은 가족의 생이별은 죄가 많아 그렇다고 했는데 조상들에게 묻고 싶다. 나의 죄명은 무엇이냐고. 나에게 죄가 있다면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Hell 조선 (망할 나라) 에서 태어난 죄, 못난 조상들 만난 죄, 그리고 아버지 따라 피난온 죄 밖에 없다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피난민 모두가 죄인 아닌 죄인처럼 살며 평생 마음 편히 웃지 못하고 눈물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평생을 울다보니 나는 몇년 전부터 눈이 붓고 안압이 높아 한쪽 눈은 실명됐고 한쪽 눈은 3개월에 한번 눈동자에 주사를 맞아 겨우 실명을 면하고 있다. 의사는 그 시한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다. 어찌 보면 잘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피난민의 눈물도 쓸 수 없고 피난민이란 주홍글씨도 가슴 속에서 떼어버릴 수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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