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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네살로 돌아간 음력설날의 소녀!


<특별기고>

극치에 달한 문명의 이기에 등떠밀려 시간의 가난에 시달리면서 저물어가는 문턱에 이르고 보면 덧없이 흘러간 세월에 공허와 허탈감에 두고 온 소곱친구들의 그리움에 눈시울이 적셔오르기도 한다.

음력설날 잔치!!

실리콘밸리 롸이더스그룹 총무로 수고를 하고 있는 구은희 박사가 매년 이 맘 때면 자비를 드려 교민들을 불러모와 푸짐한 각가지의 토종음식을 만들어 잊어가는 설 날 찬지의 향연을 열어 타향살이 나그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는 연례행사!.

특이한 것은 아주 오랜전에 ‘한국어 교육 재단’을 설립하고 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는 물론, 한국 동요와 위인의 역사도 가르켜서 생소한 우리나라의 전통 의식마져 일께어주며 나라사랑 한글 사랑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고 하는 사실에 항상 감사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지난 2월3일 제자교회에서 열렸었던 음력 설날 잔치에서였다.

식순에 따라 선창으로 미국인 학생(이름)이 우렁찬 목소리로 애국가를 불렀는데 발음과 곡조가 너무 정확해 기뻐서 뛰어 달려가서 안아 주고싶었다.

2부순서였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노래가 내 귀를 파고 들었다. 정확한 발음과 정확한 음율! 낭낭 18세! 어머!어머!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감정이 북밭쳐 나도 모르게 환성이 터졌다.

낭랑 18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해방된 조국으로 찾아왔던 우리 모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어머니는 친일파라고 하는 오명을 쓰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돌아가셨고, 나는 친일파의 딸로 공기놀이를 하던 아이들이 던지는 조각돌의 세례로 항상 이마에서 피가 흐르는 아픔보다 나와 놀아주는 친구가 없다는 지독한 외로움에 버려졌던 것을, 외할아버지의 유언을 받은 목사님댁에 입양되었다. 모두가 춥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너나 배불리 먹어라’ 라고 보내진 곳이 월남한 평양 동향인이었던 연대장님의 소개로 G-2소속, 학도병이되어 동해전선을 누비면서 위문공연으로 온 백 XX 라고하는 가수로 부터 처음으로 배운 한글 노래가 ‘낭랑 18세’였고 “전우에 시체를 넘고넘어” 라는 군가였다.

가끔은 안덕 정훈장교 아저씨가 나를 ‘꼬마 가수’ 라고 무대 위에 올려 서투른 한국말로 딴은 재롱도 부려본다고 몸을 흔들어 보곤 했었지만 미국인들이 나와서 불러보는 낭낭 18세는 나로 하여금 14살 나이 그때로 돌려놓는 듯, 황홀했다기보다는 희비가 엇갈렸다. 지금은 다들 천국에 가계실… 나를 귀여워 해주던 안덕 정훈장교 아저씨를 비롯한 고대위 김중위, 이상사 등등 얼굴, 얼굴들이 화면처럼 떠 올라 준비하고 갔던 축사는 접은채,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생각하면 참으로 장하고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 때의 나와 지금의 구박사가 그들을 완벽하게 우리나라 말을 가르켜 무대위에 오르게한 막뒤에 수고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인내를 했었을까?

‘장하다’ 그대들이야말로 우리나라의 홍보대사라고 하기보다는 그들은 천재들이기 전에 달인들이며 우리 모두가 값진 외교적 문화유산으로 지켜나가야 할 것같다.

이런 말이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보면 영어도 모르면서 한국말도 잊어 버린다고.

나보다 (그 두사람 이름) 애국가를 부르고 낭랑 18세를 부르고 많은 동요를 열창하는 그들 앞에 머리 조아려 감사하며 나 자신에게 스스로 부꾸러움마져 느끼게하곤한다..

나는 미국에 온지 30여년이 넘었는데도 자막없이는 미국국가를 부를수 없고, 한국 노래도 가사를 잊어버려 자신있게 부를수 없기에…

사진: 왼쪽부터 신니모(Nemo Swift), 성아름(Denise Twum)가 낭랑십팔세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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