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個性)이  결여되면


인간에게는 개성(Individuality)이라는 사람마다의 독자적인 특성이 있다. 남과 구별되는 얼굴처럼, 나만의 독특한 음성이나 취미 혹은 잠재능력등과 같은, 개성은 나를 특정짓는 나에게만이 일관되어 있는 고유적인 것이다. 그것이 어떠하든 있는 그대로를 나름대로 사랑하며 가꾸고 길들여 위엄과 덕망이 높아지도록 정성을 다하게된다. 이러한 자기위덕(Self-virtue)으로서 우리는 세상에 태어난 의미를 추구하는데 삶의 3분의 1가까운 날들을 교육과 훈련에 소비한다. 이러한 끈질긴 근면과 단련이 바로 독자적인 존재가 되려는 개개인 스스로의 개성육성이 아닌가 싶다.

한국인의 개성교육은 돌잔치로부터 시작한다. 태어난지는 불가 한 돌이지만 생일상에 놓여있는 많은 것 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서 한 인생의 도전을 시작하는 셈이다. 그 좋아하는 것이 개성이고 삶의 목표이며 그리고 도전의 대상이고 실현의 과제인 것이다. 그 실현은 품삯을 받는 품팔이와는 달리 늘 열정을 수반한다. 그 열정의 결실들을 평창오림픽에서 운동선수들이 보여주었다. 환희의 한 순간을 위해 길고 긴 세월 남 모르게 좌절을 되풀이 하면서 견디고 이겨낸 당당함을. 이렇게 개성이 지닌 잠재적인 가능성을 현실화 시키는 인간의 삶을 그리스의 고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아실현 (Self-realization)이라고 했다.

자아실현을 위한 인간의 열정이 어찌 운동선수들에게만 있겠는가? 모든 동식물들도 하나 같이 각기 나름대로 태어난 본연(Inborn)의 구실을 한다. 길가에 민들레는 짖구진 길손들에게 짓밟혀 가면서도 노란꽃을 피워 봄을 자랑한다.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 김용우씨는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면서 희망찬 모습으로 관중들에게 좌절을 무색하게 했다. 그는 시각 장애인들에게 소리로 그리고 청각자들에게는 빛으로 춤을 가르쳐 함께 자유로히 세상을 날고 싶다고 했다.

독자적 가치로서의 개성이 결여되면 주체성을 잃게된다. 한국사회의 대다수인 ‘아랫 것’(여성과 천민)들에게는 개성이라는 용어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있었다면 1948년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가 수립되면서이다. 그러나 개성을 아직 존중하지 않은 풍조는 지금도 잔재하고 있는데, 경제성이 높은 ‘사’를 위한 진학을 강요하는 부모님의 억지가 그 한 예가 아닌가 싶다. ‘맞아 죽을 각오로 저술한 한국인의 비판(1999)’의 저자 ‘이케하라’는 타의(他意)적인 과잉보호로 성장하는 망나니는 ‘온실 속에서만 자라는 떡잎’이며, 이러한 교육이 계속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라고 했다.

타의로 성장하게 되면 개성이 결여되어 본연의 사명이나 책임 그리고 자기실현의 열망도 없이 ‘품팔이 인생’이 된다. 그래서 매사에 당당하지 못할 뿐더러 잘못을 해도 남 탓으로 비굴하게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특별히 좋아하는 색갈도 존경하는 사람도 없다. 남이 좋다면 따라 좋아하고 남이 소리치면 떠들석하게 호돌갑을 피우는 사람이되어, 소위 사회학에서 말하는 천민사회를 만든다. 이정도로 개성이 결여되면 우리가 염원하는 자유와 평화도 남이 공으로 주워서 얻어지는 공짜로 여기게된다.

개성이 결여되면 서방국가들에서 서광을 빛내는 자유주의가 베푸는 혜택을 누릴수 없게된다. 왜냐하면 그 체제는 뚜렷한 개성을 지닌 유권자들에 의해서만이 성장발전이 가능하며 또한 그 제도를 부양하는 자유시장경제는 자아실현을 위한 시민들의 자주적인 열정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가 아직 허덕거리거나 갈팡질팡 한다면, 그 원인은 개성이 결여된 유권자들이 ‘원칙이 없는’ 지도자들을 잘못 선택한데 있다.

개성은 집단에 의해 무기력해진다. 집단이 뺏어간 개성과 주체성을 심리학자들은 몰(沒)개성화(Deindividuation)라 부른다. 이렇게 무기력해진 사람들을 나는 탄자니아의 우자마(Ujama)라는 집단농장에서 수 없이 목격했다. 이 신생국(1961)은 평등사회를 건설하고자 분산되어있는 농가들을 한곳에 이주시켜 함께 농사를 짓게 했었다. 우리 가족이 머물렀던 동안(1970-73)에도 사회주의 동맹국들로부터 각종 농업기술자들이 수 없이 다녀 갔지만 끝내 탄자니아는 수입식량에 의존하는 나라가 되고말았다.

개성이 제재를 받는 사회에서는 자아실현을 위한 도전이나 열정은 존재 하지 못한다. 그래서 탄자니아의 우자마 들판은 여럿이 마주서서 한가하게 정담을 나누는 모임터였던 것이다. 소유권을 빼앗기고 개성을 잃은 그들에게는 내일을 향한 꿈이나 열정은 있을리 없다. 우리가 떠나오는 날에도 그들은 타의에 의해 광장의 대중이되어 평등을 외치며 ‘제국주의’를 비방하는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저자: 어른을 위한 인성교육, 2016)


Hyundae News USA   (415)515-1163  hdnewsusa@gmail.com   P.O. Box 4161 Oakland CA 94614-4161
                                                                                                                           ©Hyundae News US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