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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에피소드


집사람은 음악은 깊이 모르지만 아이들에게는 악기를 가르치고 싶어했다. 아들에게는 바이올린을, 딸에게는 피아노 레슨을 시켰다.

피아노를 시키려면 피아노가 있어야 하는데 미국생활 초기에 우리에게는 피아노가 없었다.

교회에서 띵똥띵똥 몇 번 하다가 집에 오면 달리 연습할 방도가 없어서 나는 피아노 크기와 똑 같은 건반을 그린 것을 식탁에다 펼쳐 놓고 아까 교회에서 배운 것을 연습하라고 했다.

어린 딸은 나름 재미 있어 하면서 몇 번 그렇게 연습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우리 부부는 연신 신문 광고등을 뒤지면서 피아노를 구할 궁리를 했다.

아무리 싸도 쓸만한 것은 $3-500은 줘야했다. 한 번은 $100짜리가 나와서 부리나케 달려가 보았더니 건반이 몇 개 달아났고 페달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앞 집에 사는 짐 영감이 우리를 불렀다. 어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어머니의 유산 중에 피아노가 있으니 필요하다면 가져가라는 것이다.

얼마에 사라는 것도 아니고 거저 가져도 좋다고 했다. 새상에 이런 행운도 있나? 집사람과 나는 환호했다. 딸 아이가 아마 피아노 복을 타고 났는가 보다.

그러나 어떻게 피아노를 운반한단 말인가. 난감해 하는 우리 부부의 마음을 읽은 짐 영감은 자기에게 트럭이 있으니 옮겨 주겠다고 했다.

나는 거의 눈물이 나올 뻔 했다.

그렇게 해서 집사람은 우리 애가 장차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는 꿈을 꾸게 된다.

나는 내심 그럴 리가 없다고 마음 속으로 생각 하면서도 어디 한 번 가르쳐 보자 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음악 레슨을 시킨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레슨비를 감당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아이의 마음이 팥죽 끓듯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어느 날은 열심히 하는 것 같다가도 어느 날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달래기도 하고 위협도 해봤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한 번은 내가 그릇된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 세상에 거저 되는 일이 어디있냐.

파가니니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거의 학대에 가까운 교습을 받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떠 올랐다.

나는 엄숙한 얼굴로 회초리를 들고 피아노 의자를 땅땅 치며 연습하라고 욱박 질렀다.

그 때 딸 아이의 울음과 표정은 평생 잊어버릴 수가 없다. 새파랗게 질리며 거의 기절 직전까지 갔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집사람이 나를 뜯어 말렸다.

'여보, 그러다가 당신 애 잡겠소.'

마냥 부풀었던 딸아이의 피아니스트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 뒤로 우리 집 피아노는 적막 속에 가라 앉았고 뚜껑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몇 년간 먼지만 뒤집어 쓰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는 결국 우리와 이별할 때가 되었다.

어느 날 교회의 전도사 부부가 집에 왔다. 들어서자 마자 전도사 부인의 눈길이 피아노 쪽으로 쏠린다.

'오머, 피아노가 있으셨네요.'

'아, 그 전에 우리 아이들 레슨할 때 쓰던 건데 지금은 임자가 없어서 그냥 저렇게 썩고 있네요. 우리는 피아노를 칠 줄 모르고 - - - -.'

'한 번 쳐봐도 되까요?'

아직 학생 신분인 그들 부부는 교회 음악 전공이었다. 익숙한 솜씨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나서 나직히 감탄사를 낸다. 의자에서 일어나 한 걸음 물러서서 피아노를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더니 말했다.

'소리가 참 좋아요.'

'그럼 가져 갈래요?'

'정말요?'

그렇게 해서 딸아이에게 레슨을 시킬 때 거저 얻은 피아노는 공짜로 어느 가난한 음악도에게로 건너갔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별로 활용도 못하던 것이어서 좋은 주인을 만났으니 가서 사랑받으면 됐다 하고 처분한 것이다. 막상 실려 나가는 날은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것 같은 아쉬움이 있었다.

살던 집과 사업체를 정리하고 은퇴촌으로 들어온지 일 년 쯤 됐을 때였다. 집사람이 손녀에게 음악을 시키기 위해서 피아노를 장만하겠다고 했다.

'아니, 그 애가 하겠다고 할지 어떨지도 모르면서 피아노는 무슨 - - - - - 그리고 그런 문제는 애들 부모( 아들내외)가 결정할 문제지 당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구.

나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힐난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다. 집사람이 느닷없이 피아노를 보러 가자고 했다.

'무슨 얘기야? 피아노를 보러 가자니? 메누리한테 물어 봤어요?'

요 근처에 사는 사람인데 은퇴하고 이사를 가면서 피아노를 처분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거야 흔히 있는 일이니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집사람은 그 여주인의 마지막 말이 맘에 들었다고 했다. 비록 이사하는 과정에서 처분하는 것이지만 이 피아노가 정말로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에게 갔으면 하는게 바램이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당신과 대화를 해보니 내 피아노를 계속 사랑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드니 좋은 마음으로 당신에게 팔기로 마음을 정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피아노를 옮기는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고 했다.

(글쎄 - - - 이제 생각해 보니 고도의 판매 전략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 - - -)

숲 속에 조신하게 앉아있는 그 녀의 집은 주인의 품위를 그대로 풍기는 것 같았다. 귀부인 같이 생긴 아름답게 늙은 여인이 나타났다. 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한 그 녀는 피아노를 연신 쓰다듬으면서 딸을 시집 보내는 엄마의 눈길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참 묘하게도 왜 피아노를 처분할 때마다 딸을 시집 보내는 것 같은 마음이 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몇 마디 얘기가 더 오고 간 뒤에 그 녀는 $100을 또 깎아 주었다. 피아노를 옮기는 비용을 자기가 부담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우리는 그 녀가 소개해 주는 피아노 무버를 고용하여 조심스럽게 집으로 옮겼다.

주말마다 다니러 오는 손녀는 다행히도 피아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집사람은 자기가 이루지 못한 꿈을 딸에게 투사했다가 실패한 후 손녀에게 기대를 쏟고 있다. 성공할지 어떨지 모르지만 대단한 집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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