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보다 더 심각한 빈곤(貧困)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데 긴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갖추지 못한 상태가 빈곤이다. 이에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빈곤이 있다. 물질적이란 가진 것이 넉넉하지 못해 의식주에 위협을 받는 것이라면 정신적인 생각의 빈곤은 ‘싸(4)가지 ’(仁義禮智)없는 비인간적인 옹졸한 생각의 마음씨이다. 물질적인 빈곤은 경제적으로 소외된 하류층 사람들의 궁핍이라면 생각의 빈곤은 상류층 엘리트들의 사상적 결핍을 의미한다.

물질적 빈곤이 주는 가장 비통한 슬픔은 배고픔이다. 굶주림이 계속되면 아사(餓死)라는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인간 자신들이 만드는 아사는 이웃 간의 전쟁이나 집권자가 정치적 목적으로 식량유통을 차단함으로서, 천재에 비하여 규모가 매우 크다. 20세기에 발생한 총 7천만 아사의 대부분도 인재라고 한다. 세계적인3대 인위적 아사는 모두 평등을 부르짖는 나라들에서 발생했다: 1) 1천만의 죽음을 남긴 소련 스탈린의 ‘호로도모’(1932-33); 2)중국 모택동 인민정부가 만든 대기근(1958-61)에 의한 수천만; 3) 1990년대 북한의 폭군정치에 의한 수백만.

인재에 비하여 더 빈번이 발생하는 빈곤은 주로 가뭄과 홍수와 같은 천재로 인한 식량부족이다. 중세기 영국에도 기근은 95번이나 되풀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인구 대국 중국이나 인도에 비할바가 못된다. 중국의 경우, 주전 108년부터 2011년까지 기록된 기근(총 1,828회)은 매년 한번 꼴로 발생했다. 영국의 통치기간(1770-1947) 중 40번의 기근으로 6천만의 사망자를 기록한 인도는 1911년부터는 밀과 쌀을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영양실조나 아사는, 한국의 기우제가 자취를 잃은 것 같이, 더 이상 사회문제는 아닌듯 싶다. 2000년에 시작한 “빈곤과 기아박멸”이라는 범세계적인 운동과 녹색혁명의 은덕이라고 한다. 아직 지구상에 배고픔이 잔재하고 있다면 북한과 같은 특별한 정치체제하에서 발생하는 인재일 것이다. 세계은행의 기준(하루에 $1.90)으로 구분한 절대적 빈곤의 세계인구도 1993년의 33.5%에서 2013년에는 10.7%로 감소됬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빈곤은 의식주에 위협을 주는 물질적 궁핍이 아니라 상대적빈곤이라는 소유 격차에 따르는 불평등이라고 한다.

상대적 빈곤이란 한 사회 안에서 대다수의 생활수준과 비교해서 열등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부류의 시민들은 인류역사의 마지막 날까지 함께 있게될 동반자라고 한다. 빈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나라들 마다 나름대로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하게된다. 한국에서는 기초 생활보장법(1999)에 따라 절대저소득 시민들에게 기초생활비를 세금으로 충당하는가 하면 아르헨티나와 같은 남미 나라들에서는 유권자들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정치적 영합(迎合)정책을 시행하다가 국가경제를 몰락시킨 사례들도 허다하다.

오늘의 빈부격차를, 한국의 한 대학교수가 ‘금수저’를 비방하는 학생들을 가르친 것 같이 ‘분노’로서 해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어미에서 태어난 강아지들 사이에도 성장 하면서 강약의 불균형이 뚜렷해지는 것을! 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빈곤퇴치는 사유재산을 소유 할 수 있는 자유에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국을 비롯한 오늘날의 부유한 자유민주주의 나라들은 예외없이 경제활동이 자유스럽고 또 사유재산이 보장되어 있는듯 하다.

상대적 빈곤보다 더 심각한 오늘의 사회문제는 생각의 빈곤이 아닌가 한다. 생각이란 마음에 담은 사상, 가치, 이념등의 양식활동으로서, 다른 동물들과 구별하게 하는 인간만의 특혜이다. 인간은 갈대와 같이 연약하지만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살만한 것이 된다. 반대로 인간은 생각을 떠나서는 어떻게 살 것인가의 인생관은 물론 의식을 식별하는 이성도 갖추지 못하게 된다. 생각이 옹졸하면 부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성격의 시민이됨으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듯이 반인륜적이 고 반국가적인 사건들로 사회가 불심과 편견으로 질서를 잃게 된다.

먹고 사는데 여념이 없었던 선조들은 후손들 만이라도 배우고 익히며 사색하도록 학교들을 세우고 소를 팔아서 진학케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새로운 학문을 위해 16년이상을 소비했으나, 사색의 깊이로 따지면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조상들과 다를바가 없는것 같다. 의문이나 생각도 없이 교과서 그대로를 건성으로 외워서 선생님의 앵무새가 된 탓인지 모른다. 과거에 대하여 의심하고 질문하며 미래를 사색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창조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조선조 500년간 군신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지어 천번이나 거듭한 역모 반전들을 아무런 반문도 생각도 없이 학습하다가, 1980년대의 우리들 더러는 북한의 김씨왕조를 선망하는 ‘주사파’가 되었다. 세습정권에 매력을 품은 그들은 ‘전대협’이라는 조직체를 만들어 성취한 것이 ‘촛불혁명’이 아닌가 싶다. 혁명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조선의 양반들이 수탈 권세를 위해 두 얼굴로 서로 헐뜯고 비방하며 모책을 만들어간 역모문화의 계속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개혁된 혁명가들이 없었을 뿐더러, 조선조 마지막 영의정 김홍집의 개혁(1894-5)이나 박정희의 군사혁명(1961)과는 달리 새로운 개혁도 변화도 있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의 빈곤으로 이성이 흐려지고 사상이 결여되면 인류역사에서 한 번도 실현되지 못한 평화협정이라는 환상에 빠져들어 어느날 다시 망국의 수치를 당하게된다. 그렇게 ‘머리검은 짐승’으로 추락하여 배은망덕하다가 댓글조작으로 구걸하는 신세가 될까 염려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우리 함께 정신을 가다듬자고 외치는 것이다. (저자: One Dollar A Day, 1999).


Hyundae News USA   (415)515-1163  hdnewsusa@gmail.com   P.O. Box 4161 Oakland CA 94614-4161
                                                                                                                           ©Hyundae News US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