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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린당한 5.18 기념식


일어나서는 안 될 어처구니 없는 해괴한 일이 38주년 민주화운동 기념식 및 추모식(이하 기념식) 행사 직전에 일어났다. 지난 18일 오전 11시 기념식이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SF한인회 이사회가 자물쇠로 잠그고 한 분이 강당의 입구를 가로 막고 있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강승구 회장이 회관 입구 자물쇠를 뜯고 들어 가려고 했는데 누군가가 경찰을 불러 왔으나 자신들은 이런 문제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 몸싸움으로 번질 것 같은 고성과 육두문자가 오가던 중 행사 공동 주최자인 호남향우회 관계자들이 오면서 양측에 타협안을 제시해 회관 입장이 가능해졌다. 기념식 참석자들이 강당에 들어 가는데 한 이사가 다시 입구를 막으면서 기자는 들어갈 수 없다는 뚱딴지 같은 연출을 해 고성이 오가며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행사가 시작 되기 전 일부 한인들은 총영사관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리니 그쪽으로 가자고 해서 떠났다. 결국 숭고한 5.18 기념식과 추모식은 이런 볼쌍사나운 과정을 거치면서 두곳에서 같은 시간에 열렸다. 과거 보수정권하에서 기념식 조차 힘들었는데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총영사관도 공동 주최로 참여할 만큼 오픈 행사로 준비 되었는데 한인회 분규로 인해 반쪽 기념식의 작태를 보인 것이다. 군사정권하에서 민주주의를 지킨 광주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화합을 다짐하는 행사를 이렇게 유린한 그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다. 한인회관은 모든 동포들의 재산인데 한인회가 회관에 있어 관리를 맡고 있을 뿐인데 마치 자기 재산처럼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이제 한인회 내분은 당사자들의 문제를 넘어 한인사회의 짐이 되고 있다. 한인사회를 위하여 봉사해야할 단체가 반대로 동포들의 걱정거리가 된 것이다. 참으로 한인사회의 불행이다. 이사회가 강승구 회장의 행사 공동 주최를 물리적으로 막기 위해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강당내 장인환 전명운 의사는 이런 추태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총영사관은 사전에 이런 불상사 발생 가능성도 예측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최소한 한인회관에서 함께 치를 수 있도록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적극적인 노력을 기우렸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총영사관이 한인사회의 내분에 불간섭을 원칙으로 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지만 차원이 다른 5.18 기념식과 추모식을 안일하게 대처해 반쪽이 나도록 방치한 것은 아닌지 매우 아쉽다. 한인회 분규가 수습되지 않으면 앞으로 한국의날 개최와 차기 회장 선거를 앞두고 또 다시 험한 꼴을 볼것은 불보듯 뻔한 일 아니겠나.

무책임한 안락사 지난주 지구촌 노인들에게 매우 슬픈 소식이 전해졌다. 올해 104세 호주의 한 과학자가 ‘행복치 않은 삶은 무의미 하다’며 안락사를 택한 것이다. 올해 104세인 이 고학자는 안락사가 허용되는 스위스로 가족들과 함께 갔다. 그곳에서 자신의 마지막 소원대로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환희의 송가'를 들으며 숨을 거뒀다. 100세 시대의 희망에 부풀어 있는 노인들에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주었다. 인간의 수명이 얼마까지 연장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연장된들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반문에 직면하게 된다. 이 104세 노인은 5년여 전까지만 해도 논문을 쓰고 과학지에 발표할 정도로 역동적인 삶을 유지 했었다. 지난 5년 시력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더 사는 것이 스스로의 삶에 어떤가치가 있겠냐는 회의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미국사회 기준으로 노인이라면 적어도 65세 이상을 의미한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인 것이다. 백세 시대라면 적어도 30년 이상 삶을 이어 가야 하는데 그 나이까지 무슨 기대가 있을지 불안하고 외면하고 싶은 질문 아니겠나. 또한 생명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도 사회 윤리에 대한 도전이다. 기독교에선 생명을 주는 것도 하나님이고 거두어 가는 것도 하나님이라고 한다. 안락사처럼 스스로 목숨을 거둔다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에게 인간에서 평안한 인생의 말로를 제공할 수 있나. 사람마다 다르고 사람에 따라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그렇치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104세 과학자의 안락사는 미래 노인사회에 적지 않은 회의와 의문을 줄 것이다. 안락사를 택한 노인은 불치병으로 고생하지도 않았지만 삶의 가치를 행복에 두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그러면 의미 있는 행복한 삶을 사는 노인들이 얼마나 될까. 안락사한 과학자처럼 행복하지 않아 생명을 스스로 거둔다면 생명을 이어 가야할 사람이 몇 명이나 남겠나. 그래도 여유 있는 삶을 살았을 것으로 생각되는 과학자가 ‘행복치 않은 삶은 무의미 하다’며 안락사를 택한 것은 다소 무책임하지 않느냐는 생각도 든다.

물론 생사를 결정하는데 하루 밤을 지새는 고민만 했겠나. 이 과학자보다 더 어려운 삶을 하루 하루 이어가는 지구촌의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 그의 죽음은 그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절망적인 메세지를 남겼다는 생각이 든다. 갈수록 삶도 어려워지고 모르는 병도 늘어 나는데 어떻게 자신을 추스려야 할지 대책이 서지 않는다. 얼굴의 주름은 치료할 수 있어도 마음의 주름은 치료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하루 하루 스스로 행복한 삶을 꾸려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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