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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6월이 오면


한반도의 6월은 신록과 희망의 계절이나 우리 민족에게는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되는 6.25라는 동족끼리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달이다. 소련점령군의 지령으로 1945년 만들어진 북괴는 분단된 한반도의 적화통일을 목적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남침함으로서, 미국을 비롯한 UN 16개 회원국과 130만 중공군이 대립한 세계적인 전쟁으로 이어져 3년간 계속 되었다. 1953년 참전 군 사령관(UN.북조선,중공)셋이 어렵게 합의한 협정으로 간신히 휴전되어 65년이 흘렀지만 김씨 왕조의 ‘남조선 해방’을 위한 암투공세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6.25전쟁은 300만의 인명을 빼앗아 갔다고 한다. 한국은 시민 100만의 사망, 학살, 납치등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이 외국으로 입양됨으로서 한때 세계적인 고아 수출국이 되었었다. 연합군의 사망자 및 손실(15만), 중공군(90만)과 인민군(52만)을 포함한 무수한 젊은이들의 죽음으로, 대한민국은 국토 1Km2당 군인 18.4명과 민간인 10명의 목숨과 맞바꾼 지구상에서 가장 비싸게 공산주의로부터 구해낸 나라이다.

그 참담했던 전쟁을 수 십년이 지나고 수 세기가 속절없이 흐른다 해도 무엇으로 어떻게 잊을수가 있겠는가? 그 눈물 깊은 상처들을 잊을수가 없어서 참전국마다 기념탑을 만들어 한국전쟁의 그 비참했던 모습을 상기하면서 죽어간 그 많은 젊은 영혼들을 달래고 있다. 미국의 워싱톤에 건축된 한국전쟁 기념탑에는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만나본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하여 5만이 죽고 10만이 다쳤다’는 명문이 쓰여 있다고 한다.

한반도의 6월이 주는 다른 하나의 아픔은 2002년 6월 13일 경기도의 한 지방도로에서 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두 여학생이다. 세계 제1위에 있는 한국의 그 많은 교통사고와는 다르게, 그 장갑차사고는 촛불집회를 전국에 확산시켜 제16대 대통령선거에 이용되었고, 2008년에는 광우병을 빙자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반미시위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한국의 촛불은, 주전 6세기 이집트의 한 바벨론 요새를 밝힌것과는 다르게 반정부 야간집회의 문화행사로 사용되다가 드디어 2017년에는 촛불혁명을 발산시켜 제18대 대통령을 탄핵한 후 친북 좌익정부를 교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한반도에 6월이 오면 나에게는 제2의 6.25가 도발될것만 같은 느낌이 생긴다. 그 첫째 이유는 미북정상회담이 성사된다해도 김씨왕조가 세습체제를 위해 개발한 그 생명줄과 같은

핵을 어떻게 완전히 폐기될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트럼프행정부까지 속일수 있는, 과거 25년간 사용한 ‘저팔계(猪八戒)식 외교’(태영호, 3층 서기실의 암호, 2018)외에 더 새롭고 보다 간사한 속임수가 있겠는가? 그들이 어떻게 ‘남한의 민족해방’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미 국회가 결정한 미군을 한반도로부터 철수 시킬 수 있겠는가?

두번째로는 북조선의 세습체제를 선망하는 엘리트들이 남한의 친북 친중정부의 각부처와 교육기관에까지 깊이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1980년대 좌파들이 꿈꾸는 평등과 민족통일 등에 매혹된 학도들로서 김씨왕조의 주체사상과 행동지침에 연마된 ‘주사파’ 들이라고 한다. 개인의 자유와 사유권을 박탈하여 나라를 그 거지꼴로 만들어도, 백성들을 굶어 죽이거나 투옥하여 참형을 거듭해도, 심지어는 고모부를 총살하거나 이복형을 독살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해도 그 폭군집단을 믿고 받드는 그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마치 바깥세상의 물정과 현실에는 관심이 전무한 사이비종교의 광(狂)신도들 처럼 맹목적이다.

세번째 이유는 평화에 대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환상(幻想)때문이다. 그들은 ‘한반도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것’이라는4.27 판문점 선언문 그대로를, 전(2000, 2007)에도 믿었던것 처럼 근거도 없고 또 가능하지도 않은 가짜 평화쇼에 남녀노소가 환호성을 쳤다. 그러한 환상은 남북간의 밀담이 거듭될수록 더 확산되어 ‘남조선의 해방이 없이는 평화는 없다’는 김씨왕조의 속셈을 완전히 잃게 만들것이다. 이렇게 김씨폭정체제를 정상적인 나라로 인정하는 날, 대한민국의 서울은 베트남의 사이공처럼 지도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잃게될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6월이 오면 평화의 환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태극기 뱃지를 가슴에 달고, 차분하게 모여 앉아 모윤숙의 시(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를 정숙하게 몇 구절이라도 더듬어 볼 것이다.

…바람이어! 저 이름 모를 새들이어! 지나가는 어느 길목에서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다오, 나를위해 울지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내 사랑하는 소녀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륵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소녀여!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너 만은 이 땅에서 싸워야 이긴다. 이땅에서 죽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그리고 나는 6.25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는 우리 모두 근신하며 절제하여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 제2의 6.25가 도발되지 않도록 굳게 무장하자고 제안해 볼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를 만들고 수호하는 전쟁은 평화를 위한 불가결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저자: 고향을 떠난 사람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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