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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탄자니아


지난달 27일 금요일 저녁 발레호시 자매도시연합회 주최로 연례 디너 및 옥션 행사가 열렸다.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도시로 인종 구성 비율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평가 받는 도시가 바로 발레호시이다. 알라미다 카운티 내 헤이워드시도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발레호시는 역사성을 가진 도시이다. 1852년 멕시코가 캘리포니아를 통치할 때 발레호는 주도(州都) 였다. 당시 장군의 이름을 따서 발레호(Vallejo)라고 지명했고, 장군의 부인의 이름이 바로 인접한 베니시아(Benicia)시의 이름이다. 이런 전통의 발레호시가 한때 지방정부 부도(Bankruptcy)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적이 있었다. 2008년 급격한 경기침체에 따른 발빠른 구조조정을 미적거리다가 시정부가 적자에 빠지고 경제적 파탄을 겪어야 했다.

그후 시 공무원의 임금을 조정하고 경기가 나아지면서 대부분의 빚을 청산해 본연의 제자리로 돌아 왔다. 현재 발레호시는 주택가격이 상당히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인구가 몰리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발레호시가 해마다 자매도사연합회 주최는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기금모금 파티를 하고 있다. 작년에는 충북 진천군 자매도시 위원회가 주관이 되어 행사를 치렀다. 진천군에선 부군수를 포한한 일행이 방문해 행사가 큰 성황을 이루었다. SF총영사관에서도 영사를 보내 행사를 축하했다. 올해는 6개 자매도시(노르웨이, 일본, 이탈리아, 필리핀 탄자니아, 한국) 가운데 하나인 아프리카 탄자니아 자매도시위원회에서 주최 했다.

많은 종족대결과 빈곤으로 불안한 아프리카 대륙 가운데 가장 안정된 나라중에 하나가 바로 탄자니아이다. 탄자니아를 생각하면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 킬리만자로를 연상하게 된다. 그래서 탄자니아는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 하지만 그렇게 무덥지 않아 유럽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나라이기도 하다. 밀려 오는 유럽 관광객 덕분에 일찍 서구화 되고 경제도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그런 탄자니아 정부가 이번 발레호시 행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미스 탄자니아와 공연단을 문화사절단으로 보냈다. 아프리카 미인을 선보일 만큼 발레호시의 연례 행사에 비중을 크게 두어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아니겠나.

발레호시 시장을 비롯하여 커뮤니티 지도자들을 만나면 한국과 한국인에 상당히 호감이다. 이런 호감를 받는 이면에는 윌리암 김 태권도 관장과 부인이며 전 연합회 회장을 역임한 올란다 김의 희생과 봉사가 커뮤니티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 이 부부는 확실히 발레호시 커뮤니티의 상당부분 주주로 활동하고 있다. 태권도를 통해 많은 학생과 어른들을 가르치다 보다 제자도 많고 누구와도 친근하다. 그래도 두 부부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와 희생적인 봉사활동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한인 누구나 발레호시 커뮤니티에 가면 이 부부 때문에 친근한 도시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동포 한가정이 이렇게 한국인의 이미지를 바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 부부의 헌신에 감사할 뿐이다.

먼고 먼 북한의 비핵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공화당 중간선거 지원 집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원원장을 연인관계로 비유했다. 이날 대통령은 북한에서 전사한 미군의 유해가 돌아온 것까지 자신의 치적으로 꼽았다.

그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급기야 자신과 김정은 그 동안 거친말을 주고 받으면서 “어느덧 사랑에까지 빠졌다”는 말을 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트럼프의 뚱단지 같은 말을 듣고 진짜 트럼프가 북한의 비핵화를 임기중에 끝마칠 수 있을까하는 의심을 더하게 되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일반 독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50년에 일어난 6.25한국전쟁이 일진일퇴를 거듭할 때 더글라스 맥아더 총사령관은 당시 대통령 트루먼에게 원자폭탄 사용을 요청했다. 북한과 중국에 동시에 투하해야 희생자가 많이 나는 전쟁을 종식 시킬 수 있다고 보고했다. 미국정치권과 국론은 크게 분열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여론이 강해지면서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총사령관을 퇴역시키면서 없었던 일로 했다. 당시 북한 수뇌부들은 원자탄에 대한 공포감을 갖기 시작했고, 김일성도 그런 무기를 가져야 미국으로 부터 북한을 방어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한국전쟁 종전과 함께 시작되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1953년에 정전이 되었으니 김씨 3대가 집권하면서 핵무기 개발은 거의 생존권 수준으로 대를 이어온 것이다. 70여 년에 걸쳐 이어온 개발한 핵무기를 이제 북한이 20~60개를 손아귀에 넣었는데 트럼프의 경제 압력 때문에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매우 순진한 생각이다. 북한은 김씨 가문의 유언으로 전해진 핵무기를 포기하는 것이 매우 쉽지 않다. 그야말로 북한 지도자부터 주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제시한다면 몰라도 경제원조를 해주는 조건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는 전직 한국 대통령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다.

북한과 핵무기 개발을 자신들의 집권 수단으로 이용했던 것이다. 10년 또는 20년 후 한국 국민이 치러야할 값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집권 수단 또는 집권 연장의 방법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 북한은 대남 적화통일 정책을 이미 70년여 일관되게 지속하고 있다. 북한의 정책은 일관되게 진행되는 반면에 한국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우왕좌왕했던 것이다. 북한의 눈에는 한국의 대북정책을 아이들의 소꼽장난 정도로 보았을지도 모른다.

남북한 회담을 볼때마다 느끼는 것은 북한이 꼭 “갑”처럼 으시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한국을 “을’로 본지 오래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까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는 코믹한 소리를 해대니 정말 북한의 비핵화가 될지 갈수록 의문이 더 간다. <hdnewsus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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