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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슬렘 할아버지


<수 필>

오늘은 터번 쓴 할아버지를 만나면 악수라도 해야지. 집으로 Gym을 가려면 큰 길을 만난다. 제법 큰 길이고 차도 많이 다닌다. 1년여 전부터 이곳에 모슬렘 할아버지가 이사 온 것 같다. 차를 타고 가다가 만나면 나는 열심히 손을 흔드는데 그냥 지나치곤 했다. 본 것 같지 않아 다소 아쉬웠는데 수개월 전 우연히 내가 손을 흔드는 것을 보았다.

눈이 마주친 것이다. 그도 어색했지만 손을 흔들었다.

그야말로 교감이 된 것이다. 그 후부터 그 지역을 지나가면 두리번 그 할아버지를 찾게 되었다. 첫 교감후 두번 눈이 마주쳤는데 그도 반가운듯 마구 손을 흔든다. 참 기분 좋았다. 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이방인이지만 소통을 했다는 것은 반가운 일 아니겠나. 그렇게 지내다 보니 꼭 만나고 싶었다. 만날 일이 별로 없는 모슬렘에 대한 호기심도 매우 컸다. 지난 주말 오후 다소 게으른 시간이었는데 마침 그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자동차를 근처에 적당히 세우고 그분에게 다가갔다. 반가운 듯 나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어르신 대하듯 정중히 인사를 드렸다. 물론 악수도 했다. 내가 잡은 그의 손은 무척 거칠었고 이마에 파인 주름도 깊었다.

얼굴과 손에서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가름할 수 있었다.

나는 허리가 좀 아파서 옆에 있는 짜른 나무토막 위에 앉고 그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어디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왔다면서 코리언이냐고 되물었다. 직감적으로 코리언을 알아보니 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하는 영어는 나보다 한 수가 위라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가족이 있느냐고 물으니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대학교수라고 했다. 이 쪼글쪼글한 할아버지에게 교수 아들이 있다니. 상당한 흥미를 느끼게 했다.

당신이 교육열이 대단한 것 같다고 하니 그렇다고 했다.

자기 태어난 곳은 깡촌 중에 깡촌인데 아버지는 소작을 했고 가족은 거의 노예처럼 일만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못 배웠지만 자식들에게는 교육기회를 주려고 일에서 빼주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고 하면서 몹시 그립다는 말도 숨기지 않았다. 하여든 그는 그런 오지에서 교육열이 높은 아버지를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고 회상했다.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다 보니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 파키스탄 깡촌에서 영어를 했다니 그런대로 교육을 잘 받은 것이다. 그는 미국을 미워하는 모슬렘과는 달리 어려서 부터 미국을 많이 동경했다. 우연히 미국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자식교육도 잘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자신도 자식 교육열에 올인하다 보니 교수 아들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을 했느냐 하니 웃으면서 대단한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정부의 도움을 받느냐고 하니 자신은 미국정부의 어떤 보조를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아들이 자신의 ‘은퇴자금’이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이 자기 고장의 풍습이라고 했다. 한국도 그런 풍습이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희석 되었다고 하니 왜 그런 좋은 풍습이 없어지느냐고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이다. 한국 어르신들 가운데 자식과 함께 살면서 생을 마감하고 싶어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자신의 뜻 대로 할 수는 없다. 그는 이어서 자식도 자기가 보살필테니 절대 정부의 보조를 받으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식이 자기의 ‘은퇴자금’이라는 것이다. 나이는 70이 넘고 혼갖 세상풍파를 다 겪은 시골노인이지만 그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너는 남쪽에서 왔느냐고 또 물었다. 고개를 끄덕그떡하자 북쪽은 독재자 가족이 정치를 하기 때문에 나쁜 나라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런걸 아느냐고 하니 자기는 정치에 관심이 많으며 한국이 분단국가라서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이어갔다. 독재정치를 하면 나쁜나라라는 그의 단순한 주장은 매우 간단명료했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민주주의를 하면 좋은 정부가 나오지만 독재정치를 하면 나쁜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다는 뜻 아니겠나. 나는 이 할아버지와 가급적 한국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너희 나라는 어떻게 유지 하느냐고 물으니 법이 없고 종교만 있는 곳의 생활은 무척 고단하다고 했다. 종교가 정치를 지배하고 정치가 종교를 지배하다 보니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라는 뜻이다.

불행한 곳에 태어났다는 푸념도 했지만 그래도 종교에 익숙하다 보니 많은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는 오늘 한국사람과 처음 악수를 했다고 말하면서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늘 한번 말하고 싶었던 이 할아버지는 주관도 뚜렸했고 생활신조도 단단했다. 나는 너와 이야기해서 기쁘고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니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다시 악수를 청했다. 나는 늘 미스터리로 생각했던 모슬렘을 만나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알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후련할 수 없었다. 이 분을 통해서 다시 배운 것은 “사람은 결코 만나서 이야기 하기전에 남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쉽게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키스타니스와 코리언의 만남은 서로를 알게하고 느끼게 했다. 나는 그에게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뒤로 하고 헤어졌다. 뒤돌아 보니 오랜지 색갈의 터번을 쓴 할아버지의 뒷보습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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