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吉祥의 湯


나는 연전에 서울 성북구에 있는 '길상사'에 대해서 작은 글을 쓴 적이 있다. 백석(백기행)의 애인이었던 자야(김영한)가 자신이 운영하던 대원각 요정을 법정스님을 통하여 불교에 기증함으로서 요정 자리가 길상사로 바뀌게 된 사연을 짚어본 내용이었다.

앞에 긴이야기가 있지만 다 생략하고 길상사라는 이름에 대한 이야기만 하자면 - - - -

법정스님은 막대한 재산을 기증한 김영한이라는 여인에게 '길상화'란 법명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길상화가 시주해서 탄생한 절이니 그래서 '길상사'가 되었다는 말이다.

나는 이 법명에 들어간 길할 길자와 상서러울 상이라는 글자를 좋아한다. 무슨 좋은 일이 곧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우리는 '대자연'이라는 호텔에 도착하였다. 버스에서 내려 체크인 하러 들어가려는데 문간에 온천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서있다.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군데군데 섞여있는 한자로 대강 그 뜻을 짐작하곤 했는데 이 입간판에서 안내하는 온천의 이름이 '길상의 탕'이라고 돼있다.

물론 한국의 길상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겠지만 공교롭게도 한자가 갖는 의미가 하나는 사찰의 이름으로, 다른 하나는 온천의 이름으로 표현된게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사찰에서는 '길상'이 복을 비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가져다 주는 의미라면 온천에서는 육체의 휴식과 피로의 회복이 위안을 준다는 의미일까.

탈의실에서 유카타를 벗고 샤워를 한 후 벌거벗은채로 야외 욕조까지 갔다. 물론 외부와의 시선은 차단됐지만 맨몸으로 대자연의 품속으로 스며들어가는 순간은 부끄럽고, 어색하고, 허전하고 - - - - 하여튼 좀 생소했다.

산비탈에 자리잡은 탈의실 창밖으로 수많은 파이프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는 것이 보인다. 어디선가부터 쏟아져 나오는 온천물은 사람들 손에 의해서 마치 '분재'처럼 다듬어진 후 끊임 없이 욕조로 흘러들어왔고 또 넘쳐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어제 오늘이 아니라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 수 없는 아주 먼- 옛날부터 있어온 물길이었다.

온천! 참으로 묘한 곳이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지하수가 용암지대를 통과하면서 데워진 후 어디론가 스며들다가 땅위로 솟아오르는 곳. 도대체 이 땅 밑 구조는 어떻게 돼 있는 것일까.

그렇게 흘러나온 물들이 모여서 만든 물줄기는 제법 큰 흐름으로 모이더니 작은 소와 폭포를 만들면서 계곡 틈으로 빠져 내려가고 있었다.

'음수사원'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는 나는 '욕수사원'이라는 말을 내 나름대로 만들어 보았다. 목욕을 할 때는 그 물이 어디서부터 발원했는가를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한 번 쯤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노천탕에서 우리는 아무 거리낌 없이 나체로 활보하며 '익숙하지 않은 해방감'을 느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탕의 구조는 7-8명이 둘러 앉기에 적당한 크기였는데 유황을 포함하고 있다는 저 물들은 우리의 피부를 한 번 슬쩍 어루만진 후 아무 미련도 없이 자기의 갈길을 가고 있었다.

일행들이 히히낙락하며 목욕의 쾌감을 느끼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땅 밑의 그림(?)을 상상하며 시간가는줄 모르겠다.

우리가 묵은 방은 7층이었는데 창밖의 계곡물 소리가 끊임 없이 방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그 물소리는 마치 자장가처럼 여행에 지친 나그네의 숙면을 도와주는듯 했다.

이튿날 새벽, 나는 계단을 타고 한참 내려가야하는 계곡 근처까지 가 보았다. 제법 웅장한 굉음을 내며 물줄기가 흘러간다. 녹색의 산림과 짝으로 이루어진 계곡은 구름과 안개를 품으면서 천천이, 그러나 소리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물이 흘러가는 곳은 어딜까. 가장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가는 여정은 끝이 없으리. 밤낮으로 흘러가는 물을 배웅하면서 생각한다.

'유수부쟁선'

그들은 절대로 선두를 다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세상은 선두를 다투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 여기서 잠시 인생의 쉼표를 찍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

내일 새벽 동이 터올 무렵, 유황이 녹아있는 미끈거리는 온천물로 한 번 더 목욕을 하리라.

길상의 탕!

서울에 있는 길상사에는 아름다운 사랑의 이야기가 스며 있듯이 여기서 목욕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아름다운 이름의 온천탕에서 내 인생의 '길상'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사족:

기실 김영한이 기생수업을 받는 동안 스승이었던 하규일 선생이 그녀에게 지어준 기명은 '진향'이었다는데 이는 '진수무향'에서 따왔다고 한다. 참된 물은 향기가 없다. 온천물에 몸을 담그면서 진수무향을 생각했다면 너무 나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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