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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새, 년도를  맞으면서


<신년 단상>

2018년의 새해를 맞은지가 엇그제만 같은데 크리스마스도 저물었고, 또 다른 년도가 시작되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다가오는 2019년은 60년, 혹자는 600년만에 다가오는 ‘황금 돼지띠’라고하여 이 해 보다는 더 찬란한 꿈도 키워봅니다. 세월이란 행과 불행을 교란시키는 마술쟁이라고 생각됩니다.

세월이란 누구에겐가는 ‘일각이 여삼추’ 같고, 또 저를 비롯한 누구엔가는 세월에 등 떠밀려 먹기싫은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이곳저곳에 숨어있던 복병들이 꼬리가 꼬리를 물고 쳐 들어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가는 아쉬움이 가슴에 잔잔한 슬픔이 밀려오곤 합니다.

80평생의 발자취를 돌아봅니다.

영원히 살것 처럼 불꽃튀는 정열로 앞만 보고 달려 왔어도 언제나 영혼과 세정에 목말라 무엇하나 확고한 자리매김 없어 부끄럽고 세상에 대한 미련이 무엇인지? 왜 그토록? 아직도 과욕에 찬 욕심? 을 버리지 못해 한도 매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를, 거역할 수 없어 자고깨면 한 발자국 두 발자국씩 무덤을 향해 가야하는 황혼 마루턱에 이르고 보니, 왠지 모든 것이 허탈하고 가슴만 저며 옵니다.

과연 삶이란 무엇인가요?

응아! 하고 세상을 향하여 첫 울음을 토하면서 태어나서, 깊고 가느다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삶을 마감하기까지 어느누구나 한 번쯤은 산다는것이 무엇이며 내, 자아 존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다는 것, 과연 산다는 것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요?

혹자는 산다는 것은 기다림이라고 합니다. 그 기다림의 여정이 얼마인가를 기약되지 않은채, 부귀와 영화 , 명예와 권력이라고하는 야망의 욕망을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어리석음을 배우는 연속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법칙의 실채를 알면서도 그럴싸하게 무지개 같이 펼쳐져 있는 현실에 도전하며, 그 두배가 넘는 고통과 좌절을,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하며 당연하게 받아드린다고 합니다.

또 혹자는 ‘생과 사’ 라고 하는 씨앗을 가슴에 품고 망서리다가 놓치는 일, 거기에 슬픔과 외로움을 번민하는 아픔의 파도를 타는 영원한 영혼의 흐름이라고도 했습니다.

좌절하고 통분하고 뾰죽한 수도 없는 시계를 휘청거리며 걸으면서도 생존이라고하는 절실한 현실을 배우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씩 다가오는 어둠 넘어에 그 것을 순종의 미덕으로 삼으며 때로는 긴긴 한숨을 몰아쉬기도 하면서 그것이 산다는 것이라고 자위도 한곤합니다.

어찌 그 것 뿐이겠습니까? 산다는것도 우리가 공존하기위하여 도덕과 윤리라고 하는 평풍을 둘러싼 일상생활들, 만나고 헤어지고 얻는 다는 기쁨과 잃는다는 허무, 쓰리고 시린 아픔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앙금처럼 고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그 앙금을 체에 거를 시간조차도 없이 시간이라고하는 가난에 허덕이곤 합니다.

주어진 삶, 그것이 운명이라고 하면서 불가항력적인 힘에 눌려 자신을 꾀 마추어 가면서 순응하며 때로는 자연의 섭리를 거부하기도 하면서 다듬어가는 삶, 내일 또 내일또 내일이라고 하는 세월이라고 하는 거센 물결에 등을 떠밀려 서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숨 가삐 헐떡이며 걷고 또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먼 거리인지, 또 얼마나 가까운 거리인지도 누구도 모르는채, 빤짝이다 사라져가는 아침 이슬처럼 짧게, 렇게 끝내는 빈손으로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더없는 허무와 헛헛함에 버릇처럼 긴-긴- 한숨을 몰아쉬는 이것이 삶이란 곡 산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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