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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발발과 재미 한인의 독립운동(6회)


3·1운동 직후 대한인국민회의 독립운동

대내외의 활동과 일본물화배척운동

3・1운동으로 미주 한인사회의 독립운동 열기는 크게 고조되었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의 역할과 비중은 급격히 증대되어 한인사회의 중심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독립의연 모금활동과 선전활동에 박차를 가한 모든 일이 중앙총회를 중심으로 추진된 것이다. 3·1운동 직후 중앙총회장 안창호는 해외 한인의 대동단결과 조직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원동 파견을 계획하고 마침내 4월 1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상해로 갔다. 그의 빈자리는 중앙총회 부회장 백일규가 대신해 9월 15일 새 중앙총회장 윤병구가 선출된 10월 2일까지 중앙총회장 임시대리로 활동했다.

백일규는 1919년 4월 4일 15차 임시위원회를 시작으로 중앙총회장 임시대리직을 수행했다. 가장 먼저 그는 필라델피아에서 이승만과 정한경이 서재필과 함께 거행하는 ‘제1차 한인회의’ 파견 대표로 민찬호와 윤병구를 선정해 파견했다. 당초 민찬호와 함께 이대위가 선정되었으나 사무 일이 많다는 이유로 윤병구로 대체하였다.

현순이 상하이에서 3월 29일자 전보로 ‘대한국민공화국 정부’ 수립 사실을 하와이지방총회를 통해 알리자, 이 사실을 전해들은 중앙총회는 4월 5일자 전보로 미국・영국・프랑스・이태리의 4국 정부의 수반과 대사에게 임정 수립 사실을 알렸다. 상하이로부터 3・1독립선언서 원문을 받은 직후에는 “각하께서는 세계의 자유와 공의를 주창하는바 우리는 우리 민족을 대표하여 우리 민족의 명의로 청원하나이다. 한국독립단은 임시정부를 조직하였는데 그 정부의 내각들은 다 고등한 학식과 능력이 있는 인물이라. 만일 독립을 승인하면 능히 공화정부를 유지하여 갈 수 있습니다.” 라는 내용으로 임정 수립 사실을 통지하였다

중앙총회가 각국에 임정 수립 사실을 알리면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공화정 체제의 임시정부 수립 사실 외에 임정의 내각이 고등한 학식과 능력을 갖춘 인물들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한국인들은 능히 독립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점을 내세우려 했다.

중앙총회는 임시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경축일을 4월 15일로 정했다. 이에 따라 북미지역의 전 지방회는 이 날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경축일로 거행했다. 중앙총회는 하와이지방총회의 󰡔국민보󰡕 기자 승룡환이 󰡔일포시사(日布時事)󰡕에 한·중·일 3국의 협력으로 백인을 배척하자는 글을 실은 사실을 알고 4월 17일자로 하와이지방총회장 이종관에게 공문을 보내, 그의 주장은 우리 민족의 의사와 반대되고 외교 진행에 방해되므로 조사해서 시정하라는 조치를 명하였다. 일본과는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중앙총회는 1919년 4월 21일 회의에서 항일운동의 표시로 일본 물화(物貨)배척운동을 결의하고 공문 제205호(1919.4.25)를 배포해 전 미주 한인들에게 일본 물화배척운동을 전개하도록 조치했다. 일본 물화배척운동에는 매매, 노동, 사업, 개인 간의 교제, 그리고 식물과 일용품에 이르기까지 정신부터 행동까지 일본인과의 거래를 배척하는 강력한 항일활동이었다.

독립의연금 모금활동과 재정지원

3·1운동 이후 대한인국민회의 독립의연금 모금활동은 여러 활동 중 가장 역점을 둔 사업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종결 직후인 1918년 11월 24일 뉴욕과 파리에 한인 대표를 보내기로 하면서 시작된 ‘특별의연금’ 모금활동은 3·1운동 이후 ‘독립의연’, ‘21례’, ‘애국금’, ‘인구세’, ‘공채금’ 등의 명목으로 더욱 확대되었다. 모금활동은 총괄한 중앙총회는 제1기(1918.11.24.∼1919.12.15.)와 제2기(1919.12.16.∼1920.7.1.)로 나누어 결산보고를 했는데 먼저 제1기의 내용을 보면 총 수입금은 88,013.53달러이다. 총수입 중에는 미국인 7명이 낸 73달러와 중국인 화교 7,756.74달러를 포함한다. 제1기의 총지출은 84,045.42달러였다. 다음 제2기의 경우 총수입 26,873.52달러, 총지출 26,790.34달러였다. 제1, 2기를 합할 때 총수입은 114,997.02달러, 총지출 110,835.76달러, 잔액 4,051.26달러가 된다.

제1기와 2기의 전체 지출 내역을 보면 임시정부에 46,454.06달러를 지원했고 구미위원부에 2,000달러, 파리의 김규식 외교비로 4,000달러, 안창호·정인과·황진남 3인의 원동(상하이)대표 휴대금 3,000달러, 필라델피아통신부 8,100달러 등이다. 이로 보면 중앙총회는 전체 수입 중 40%를 임시정부에 지원하였다.

중앙총회가 밝힌 의연자 명단을 보면 외국인(백인과 중국인 화교)을 제외하고 총 1,391명이다. 이는 제1기만을 기준한 것인데 제2기의 경우 제1기 납부자와 중복되어 1기로만 한정한 수치이다. 이 수 안에는 일부 하와이 한인의 이름도 보이는데 이는 중앙총회로 직접 의연금을 보낸 사람임을 의미하겠다.

한편 하와이의 경우 대한인국민회 하와이지방총회가 독자적으로 모금활동을 전개했다. 하와이지방총회가 정리한 재정결산서(1919.3.∼10.31)를 보면 총 2,907명이 의연한 가운데 총수입이 35,034.05달러이고 총지출은 34,565.49달러이다. 지출 내역을 보면 워싱턴DC에서 구미위원부를 설립해 활동 중인 이승만에게 22,000달러, 파리의 김규식에게 2,000달러, 중앙총회에 1,500달러, 상하이의 현순에게 1,360달러 등이다. 전체 수입 중 약 63%를 이승만에게 집중적으로 보냈다. 이로 보아 하와이지방총회는 이승만의 외교활동비를 지원하기 위해 독립의연금 모금을 추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밖에 이승만이 주도한 구미위원부가 독자적으로 모금한 실적도 있지만 다음 회에서 밝히고자 한다.

이상의 모금활동과 실적을 볼 때 멕시코를 포함한 1919년도 전 미주 한인 약 8,500명 가운데 약 4,298명이 참가했다. 거의 절반 이상이 되는 수치이다. 이 가운데는 성인 남녀는 물론이고 어린 학생과 아이들까지 포함한다. 예컨대 안창호 집안의 경우 15살 장남 안필립이 3달러, 차남 필선이 1달러, 6세의 장녀 수산이 1달러를 의연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한인들의 평균 임금이 하와이의 경우 농장 노동자가 40∼60달러이고 북미의 경우 광산이나 철도 노동자가 70∼90달러 전후를 벌었다.

당시 1달러의 가치는 오늘날의 시세로 환산할 경우 약 30배 전후가 되는데 중앙총회의 총수입 114,997달러는 오늘날의 시세로 약 350만달러 정도다. 북미 한인 전체 인구가 약 2,500여 명이고 한인들의 평균 수입이 대체로 영세해 넉넉하지 못한 생활이었음을 감안할 때 얼마나 큰 금액을 의연하였는지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앙총회에서 밝힌 3·1운동 시기 미주 한인사회 최대의 의연자는 김종림(3,345달러), 신광희(1,245달러), 임준기(1,220달러), 김승길(1,010달러)인데 모두 쌀농장 경영자들이다. 이들 모두 상하이 임시정부로부터 의연 공로자로 표창받았다.

1919년 4월 상하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이 임시정부를 새로 수립하고 정비하는데 전념할 때 필요한 막대한 금액은 바로 미주, 즉 북미의 한인들로부터 나왔음을 중앙총회의 재정결산을 볼 때 충분히 입증된다. 그만큼 3.1운동 직후 미주 한인들의 독립운동 열성은 독립의연금 모금활동을 통해 크게 분출되고 있었다.

사진 하와이지방총회에서 발행한 독립의연금 증서(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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