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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발발과 재미 한인의 독립운동


8.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회의’ 개최

개최 배경과 준비

3·1운동 직후 한국 문제를 미국사회를 비롯해 전 세계로 선전하기 위한 홍보활동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대한인국민회뿐만 아니라 전체 재미 한인들에게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럴 때 선전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곳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유학생들이 결성한 북미대한인유학생연맹이었다. 북미대한인유학생연맹은 파리강화회의(1919.1∼6) 기간 동안 한국 사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영문 잡지를 3월 1호부터 5월 3호까지 발행하였다. 발행 비용은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가 지원해 주었다. 그런데 서재필이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설립한 후 이 영문 잡지는 6월부터 KOREA REVIEW라는 새 이름으로 발행되면서 중단되었다.

영문 잡지 발행을 통해 선전활동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재미 유학생들에 의해 추진되는 동안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선정된 이승만·정한경은 서재필과 협의해 3·1운동 직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추진하였다. 당초 이승만과 정한경은 중앙총회장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3.22)에서 서재필과 함께 뉴욕에서 신문기자들을 대상으로 선전활동을 추진할 생각이었다. 이런 계획이 변경되어 나타난 것이 ‘제1차 한인회의’(The First Korean Congress, 일명 ‘한인자유대회’)이다. 계획을 변경한 요인은 필라델피아에서 활동 중인 서재필의 영향력 때문으로 생각된다.

당초 대회 청첩장에는 ‘대한인총대표회의’라 했으나 대회 결과를 정리하면서 ‘제1차 한인회의’라 정했다. 미국독립운동 당시 1774∼1775년 필라델피아에 두 차례 소집되었던 식민지 ‘대륙회의(The Continental Congress)’를 본뜬 것이다.

‘제1차 한인회의’는 3·1운동 직후 미주 한인들이 처음으로 3·1운동에 대한 공식 입장을 표명한 대회로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필라델피아시내 리틀극장에서 개최되었다. 대회 목적은 일제의 불법적인 식민통치와 식민지 한국의 실상을 알리고 3·1운동으로 나타난 한국의 독립과 새로운 독립국가 건설의 열망을 전 미국사회에 전파하기 위함이었다.

대회 추진

‘제1차 한인회의’는 급하게 준비되었다. 그런데다 한인들이 아주 적은 미국 동부지역에 개최되는 지리적 요인 때문에 많은 한인들이 참석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대회는 매우 성공적인이었다. 3일 동안 연 참가자 수가 약 150명 정도인 것은 당시 하와이와 멕시코를 제외하고 북미 한인의 수가 겨우 1,600여 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할 때 결코 적지 않았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미국 중·동부지역 한인유학생들인데 처음부터 북미대한인유학생연맹은 이 대회에 적극적이었다.

필라델피아에서 대회를 개최하게 된 것 중 하나가 그 곳에 사회·경제적인 기반을 잘 갖추고 있던 서재필 때문이어서 그가 이번 대회에 미친 영향력은 아주 컸다. 그는 실질적인 대회 기획이나 운영을 총괄하였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진행시키기 위해 필요한 연사 초청이나 장소 선정, 미국 독립관으로의 시가행진과 이에 필요한 필라델피아시측의 협조 등을 준비했다. 그리고 대회 의장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회의를 주재했다.

‘제1차 한인회의’는 서재필·이승만·정한경 외에 임병직·김현구·‘장기한’(장택상으로 보기도 함)이 간사로, 천세헌이 서기로 활동하였고 영어속기를 위해 미국인 리글씨가 고용되었다. 그 외 윤병구 · 민찬호 · 김현구 · 임병직 · 장택상 · 조병옥 · 유일한 · 김노디 · 민규식 · 천세헌· 임초 등이 참석했다.

‘제1차 한인회의’는 한인들만을 위한 대회가 아니었다. 대회를 기획한 서재필은 이번 대회를 한·미인 연합에 의한 국제대회로 만들려 했다. 그리하여 한인들 외에 종교계, 교육계, 언론계 등 미국의 각 방면에서 활동 중인 미국인들을 대회 주빈으로 초청했다. 이들 미국인들은 성경봉독, 기도, 축사, 강연, 증언 등의 순서를 맡아 대회 참가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대회 진행은 간간히 우리말도 담았으나 주로 영어로 진행되었고 대회 결과물은 영어로 󰡔First Korean Congress󰡕란 책자로 발간해 미국사회에 널리 홍보했다.

‘제1차 한인회의’의 내용과 영향

‘제1차 한인회의’는 오전에는 주로 초청 연사의 강연을 듣는 것으로 하고 오후에는 주제별로 작성한 결의문 및 호소문을 발표하고 토의하는 순서를 가졌다. 각 주제별 결의문 및 호소문의 작성 · 발표는 미리 선정된 기초위원을 통해 하도록 했는데 이 일은 대회의 핵심 활동이었다. 작성한 6개의 결의문과 호소문은 ①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내는 결의문」, ② 「워싱턴의 미국 적십자본부에 보내는 호소문」, ③ 「미국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 ④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 ⑤ 「일본의 지각 있는 국민들에게 보내는 결의문」, ⑥ 「미국 대통령과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청원서」 등이다.

각 결의문과 호소문에 나타난 일관된 관점은 한국의 독립과 독립된 한국을 민주주의와 기독교정신에 바탕을 둔 미국식 공화제의 근대국가 건설이었다. ‘제1차 한인회의’에서 제기된 한국인의 독립 열망은 필라델피아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다. 이는 3·1운동 때부터 촉발된 미국 언론의 친한 동정 보도를 더욱 확대시키는데 기여하였다.

‘제1차 한인회의’가 끝난 후 참석자들은 필라델피아시 당국이 제공한 악대부의 협조를 받아 한·미의 국기를 양손에 들고 리틀극장부터 독립기념관까지 시가행진을 했다.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에 도착한 참석자들은 대회 직전 임시정부의 ‘국무경’으로 선임된 이승만의 3·1독립선언문 낭독과 만세삼창, 기념촬영 등을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제1차 한인회의’의 영향은 미주 한인사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독립경축일로 이어졌다. 북미의 경우 4월 15일을 대대적인 독립경축일로 거행하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번 대회가 미친 가장 큰 영향은 전 미국을 향해 선전외교활동을 본격화 한 점이다. 대회 직후 필라델피아에 서재필이 한국통신부를 조직하였고 곧이어 한국친우회를 결성하면서 3·1운동으로 거세게 불타오른 미주 한인의 독립운동 열기는 이제 전 미국으로 확산되었다.

사진: 태극기를 앞 세우고 필라델피아 시내를 행진하고 있는 대회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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