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의 원조는 고려인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을 오복 중에서도 으뜸이라 하여 누구나 장수하기를 원한다.

부모가 오래 살면 지은 은덕이 크다고 하여 자손들은 가문의 영광인 장수를 마을 어른들에게 자랑시키고 싶어 큰잔치를 배푸던 시대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장수하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남에게 폐를 주는 죄악이라고 생각하는 노인들도 많다. 정말 장수가 죄악일까. 사람의 수명이 길어 지다보니 나도치매나, 불치의 병에 걸려 심신이 미약해져 식물 인간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걱정하는 이도 많다. 나 역시 적당히 살다 죽어야 할텐데 하는 걱정이 들 때도 많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기를 80대 죽으면 재수가 좋고, 90대에 죽으면 재수가 없고, 100세에 죽으면 억세게 재수 없다고 하는 농담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60~70세에 죽으면 지금 처럼 의술이 좋은 세상에 어떻게 건강 관리를 했길래 80도 못 살고 죽었느냐고 하며 죽은 사람을 나무랜다.

그렇다면 사람이 얼마나 살다 죽어야 잘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 대답은 지역과 인종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 정의를 유엔 보건기구에서 만들어 놓은 인간이 삶의 기준을 바탕으로 그 해답을 찾아 보고자 한다

유엔 보고서에 의하면 인간의 삶의 기준을 자신의 마음대로 가고 올 수 있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있고, 또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먹을 수 있을 때까지가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치가 있는 때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그 반대되는 상태를 가정하여 결과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자신의 마음대로 가고 올 수 없고 행동도 타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지고 사물에 대한 인지 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기계나 약물에 의존하여 생명을 유지한다면 그 삶을 무어라 말할 것이며 또 과연 삶의 의미가 있다고 보겠는가.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식물인간으로서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원치 않으니 의식이 없을 때는 안락사 시켜달라고 유언서를 쓰는 환자들의 숫자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 오랫동안 약물에 의존하여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도 일종의 인권침해라고 볼 수도 있다. 인간이 생존권이 있다면 죽을 권리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 여러나라에서는 점차 안락사를 인정하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유럽 몇 나라에서는 간편하게 안락사 시킨다고 광고까지 하며 지원자를 불러드린다고 한다. 미국도 요즘은 안락사 규정이 완화되어 오레건 주 같은데서는 의사 2명의 서명만 있으면 안락사시키기 때문에 안락사 말이 나오면 안락사의 원조는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부모가 늙고 병들면 산에다 버렸다고 한다.

고려장은 고려말 공민왕 때 오랜 가믐과 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이 자식이 부모를 산에다 버렸다는 설. 다른 한편으로는 노망 (치매) 난 부모를 자식이 돌볼 수 없어 농사 일 나갈 때 지개에 앉혀놓고 가 산에 파놓은 구덩이 속에 가두어 두었다가 올때 같이 집에 왔는데 간혹 자식이 그대로 두고 와 부모가 죽었다고 하여 고려장이라고도 한다. 어찌되었든 우리 조상들은 먹을 것이 없어 자식이 부모를 산에사 버려서 죽였다는 오늘 날 안락사는 의미가 똑같지 않은가. 다르다면 자식이 죽이느냐 의사가 죽이냐가 다를 뿐이다. 그런 점으로 볼 때 우리 조상들은 이미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측하고 현대판 안락사를 실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때로는 나는 언제 안락사를 시켜달라고 유언할까를 생각하는 때가 많다. 나의 안락사 시점은 이런 글을 쓸 수 없을 때까지라고 쓰겠다. 독자는 안락사 시점을 어디에 두는가 한번 생각해 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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