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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서도...


프롤로그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려서부터 무엇이 되겠다는 꿈을 안고 그 목표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다 보니 어느새 유명인인 돼 있더라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삶을 살라고 세뇌(?)받아왔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1940년대 중국 국공 내전 당시 푸퀘이(福貴)는 도박으로 룽얼(龍二)에게 전재산을 날리고 길거리로 쫒겨난다.

하루 아침에 알거지로 전락한 그는 구걸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었다.

어느 날, 파산 당시 임신한 상태에서 어린 딸과 가출했던 아내 지아전(家珍)이 아들을 낳아 가지고 돌아온다. 이에 마음을 잡은 푸퀘이는 도박장에서 배운 인형극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새 출발을 한다. 이 즈음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으로 혼란한 상태에서 본의 아니게 국민당으로 끌려갔다가 전쟁이 끝나고 귀가한다.

도박으로 푸퀘이의 재산을 몽땅 차지한 룽얼은 공산당 치하에서 지주 계급으로 지탄을 받아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숙청된다.

반면 푸퀘이는 무산 계급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연상케 한다.

1950년대, 모택동의 대 약진 운동으로 그나마 있던 재산은 공출되고 공동식사등으로 혹사 당하는 와중에 아들 요우칭(慶回)이 사고로 사망하는 아픔을 겪는다.

1960-1970년대, 환난 중에 열병을 앓아 실어증에 걸렸던 딸 펑시아(鳳霞)가 공산당 간부 완얼시(万二喜)와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푸퀘이 부부는 공산당원으로 정부의 시책에 순종(?)하며 나름대로 안정된 생활을 한다.

딸 펑시아가 문화대혁명의 혼란기에 출산 도중 홍위병들에 의해 사망하는 불행을 겪지만 다행이도 펑시아의 아들 만터우(외손자)를 얻게 된다.

노년의 푸퀘이 부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후 공산당 간부 사위(완얼시)와 함께 만터우를 데리고 식사를 하면서 손자의 미래는 좀 더 좋은 세상이 될 거라는 꿈을 꾼다.

위화(余華)의 소설 훠저(活着 Life Times)를 장예모(張藝謨) 감독이 공리(鞏悧)와 갈우(葛優)를 내세워 만든 '인생(人生 To live)'이라는 영화의 대략 줄거리다.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공산체제의 고발과 그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얼마나 학대 받는가를 고발하는 내용이지만 나는 푸퀘이의 인생을 점검하며 한 사람의 삶이 타의에 의해서 혹은 체제에 의해서 얼마나 많이 굴곡지게 되는가를 본다.

루마니아의 요한 모리츠는 미국행을 결정했다가 수잔나와 결혼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 마을에 남았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의 유태인 박해 정책에 따라 요한은 유태인으로 몰려 수용소에 끌려가 강제 노역에 동원된다.

다른 유태인들과 헝가리로 탈출한 그는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독일에 노무자로 팔려가 또 다시 강제 노역에 시달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거기서 골상학을 숭배하는 독일 인류학자에게 발견되어 게르만인이라는 인증을 받고 독일인으로 변신(?)한 그는 강제 수용소의 경비대에서 근무하게 된다. (자유의지에 의한 변신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게르만인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던 요한은 귀향하여 가족을 만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프랑스로 탈출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가 독일 병사였다는 이유로 포로 수용소에 감금된다.

전쟁이 끝나고 아내 수잔나와 극적으로 상봉하지만 냉전 체제 아래서 연합군 포로로 장기 복역을 하다가 마침내 풀려난다.

가정을 위해 미군 병사로 지원하여 증명사진을 찍게 됐을 때 사진사는 강압적으로 웃으라고 외친다.

'웃어! 웃으라구! 옳지 됐어! 그렇게 - - - -'

그 순간 요한 모리츠가 울다 웃다를 반복하며 짓는 묘한 표정은 사람들의 뇌리에 오랜 동안 깊히 각인됐다.

안소니 퀸이 주연한,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25시'의 대략 줄거리다.

영화는 전쟁 중에 꽃피운 사랑 이야기로 돼 있지만 사실 이 원작은 타인에 의해서, 혹은 체제에 의해서 꿈도 희망도 건질 수 없는 한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가혹하게 유린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에필로그

미국 생활이 어언 40년을 넘어섰다.

이북에서 태어나 부모님을 따라 월남하여 한국에서 살아온 30년 보다 10년이나 더 되는 세월을 미국에서 살았다.

친손주 외손주 해서 모두 다섯이나 된다.

그 동안 미국 시민권도 땄으니 법적으로는 미국 시민이 됐고 한국에 갈 때는 미국 여권을 가지고 외국인 출구로 나가야한다.

그러나 많은 시간 나는 한국 사람과 어울리며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뉴스를 시청하며 한국 말로 글을 쓰고 있다.

외손자 만터우를 데리고 식사를 하면서 푸퀘이가 꿈꾸던 손자의 미래에 희망을 걸듯, 요한 모리츠가 미군에 입대하기 위해 증명사진을 찍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듯, 나는 요즘 가끔 내가 과연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살아왔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가 있다.

그럭저럭 열심히 살았으니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지만서도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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